취리히행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예상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목적 대부분은 여행이었다. 알프스 가이드북을 들여다보거나, 동행자와 이번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일을 감내해야 했는지 큰 소리로 강조하거나, 들뜬 표정으로 대기 중인 비행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게이트 앞이 북적거렸다. 나는 내 좌석 옆자리 주인이 상식적이기를, 내게도 반쯤 권리가 있는 의자 팔걸이를 독점으로 빼앗기지 않기를, 더불어 장거리 비행 내내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강제 소환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3개의 나란한 좌석 중 복도 자리에 앉았고, 내 옆자리에 젊은 커플이 앉았다. 우려한 대로 나의 팔걸이는 옆좌석 남성에게 점령당했다. 그는 허벅지 끝까지 살이 드러난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근육질 다리 전체에 꼬불거리는 털이 수북하게 덮여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타인의 몸을 마주하며 13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보다 더 괴로운 건 그의 끊임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파트너에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여행을 경험했는지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치타의 교미를 목격하고, 알래스카 숙소에 무스가 들어와 팝콘을 훔쳐 먹고 갔다는 이야기, 델리 기차역에서 경찰과 함께 강도를 제압했다거나 바르샤바 공항에서 브래드 피트 사인을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급기야 주변의 모든 사람은 하던 말을 줄이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어떤 사람은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려 귀를 들이대기까지 했다. 언뜻 귀의 크기가 커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더욱 신이 났다.
“태국 남부에 있는 코사이라는 섬은 해뜨기 전 로컬의 나룻배로만 들어갈 수 있어요. 뱃길이 없는 데다가 원주민이 새벽에만 바닷일을 하기 때문이죠. 만조에 도착하면 바다 한가운데에 내려 한참을 걸어 들어가 해요. 원숭이들의 환영을 받고 사다리가 놓인 높은 담벼락 2개를 넘으면 히피들의 마을에 도착합니다. 약 30개의 방갈로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에는 세계 각지에서 흘러든 청년들이 살고 있었어요. 식당과 펍, 잡화점이 있고 심지어 세탁소와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었죠. 코로나 시기에 본국으로 떠나지 못한 이들이 정착하며 마을을 만든 거예요. 아무도 간섭하지 않은 덕분인데, 그들 대부분은 원주민을 따라 새벽에 잠깐 고기를 잡고, 주로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붉은 잎사귀를 종일 씹어댑니다. 그리고 뜨거운 한낮이 지나면, 한 시간을 등산해 산 꼭대기에서 줄타기를 해요. 이쪽 산에서 저쪽 산에서요. 고드름처럼 흘러내린 기다린 종유석에 줄을 매달았죠. 저는 무사히 줄을 타고 건너온 이들을 안아주는 사람이었어요. 그들은 때로 어린아이처럼 울거나, 손뼉을 치며 기쁨에 몸부림쳤죠. 제가 목격한 가장 순수한 기쁨 중 하나예요.“
”그것 참 믿기 어려운 이야기네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니까요. 진실은 오직 경험한 사람들의 침묵 사이에 있죠. 근데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아니 내가 당신을 알고 있나요?” 남자가 나를 의뭉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글쎄요, 제가 히피는 아닙니다만… 그 섬에 가보고 싶군요,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고 있나요?” 내가 말했다.
“코로나가 끝나자, 원주민은 뱃삯을 받고 육지의 이방인을 불러들이기 시작했어요. 히피들은 벽을 더 높게 세우고 방어했지만, 원주민들은 두꺼비를 이용해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죠. 결국 그들은 모두 빼앗겼어요. 애초에 땅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그건 정말 잔인했어요…” 남자는 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생각에 잠겼다.
“천국이었어요. 우리들은 느긋하게 일어나 함께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먹고 서로를 돌보며 하루를 보냈죠. 종일 자연의 소리를 듣고, 악기를 연주하고, 밤새 사랑을 하고 춤을 추었어요. 우리는 자연 그 자체였어요.” 그의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렇다면 원주민은 왜 히피들을 내쫓은 거죠? 원주민 삶을 위협한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물었다.
“그들이 신성시하는 두꺼비를 죽인 건 우연이었어요. 히피들은 멜론만 한 크기의 두꺼비가 밤낮으로 날아오는 것이 견딜 수 없었거든요. 코사이 두꺼비 독은 무척 치명적이어서 살짝 닿기만 해도 혈관으로 독이 퍼지고 순식간에 판막이 굳어져 버려요. 히피들은 두꺼비를 죽이고, 두꺼비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여성이 힘 없이 말했다.
“끔찍하군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여성의 목소리에는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원숭이 배웅을 받으며 파도를 거스르는 여성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해안가에서는 원주민이 두꺼비 독을 묻힌 화살촉으로 그녀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였다.
“당신들은 너무 건방져.” 화살을 쏘며 내가 말했다.
* 보이지 않는 이야기 _ 원주민의 목소리 편
코사이섬 원주민의 근심은 날로 쌓여갔다. 히피들은 똥을 너무 많이 쌌고, 코사이에서 랄라레이로 넘어가는 신성한 동굴에서 남녀가 헐벗고 뒹구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종종 홀딱 벗은 채로 하네스를 착용하고 석회암 절벽을 기어올랐는데, 그럴 때면 동네 아낙들의 3일간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물고기를 잡지 않고 히피들을 육지로 실어 나르며 푼돈을 버는 원주민이 늘어났으며, 아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잎사귀를 채취하는 일에만 관심 있었다. 히피들의 삶은 평화로웠지만, 원주민의 삶은 망가지고 있었다. 섬의 어른들은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습득한 자연의 법칙을 이용해 히피들을 내보내기로 합의했다. 이상, 그들이 내게 두꺼비 독을 채취해달라고 부탁한 이유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