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기차역 매표소 대기 줄의 차례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매표원은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저 고정된 몸뚱어리에 목만 흐느적거리는 오뚜기처럼 고개를 양쪽으로 나풀거리다가 사라졌다. 나는 영문을 몰라 멍하게 굳어버렸고, 스텔라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피우다가 수십 명의 인도인에게 둘러싸여 구경거리가 되었다. 우린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길에서 이미 1시간 넘게 서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뭄바이로 가는 기차는 정확히 5분 후에 기차 플랫폼으로 들어설 것이다. 우리는 망연자실했다. “망했어.” 스텔라가 말했다. 그때 마른 몸피에 콧수염을 귀까지 기른 한 남자가 어깨를 두드리더니 자신을 사마디라고 정중하게 소개했다. “그 여자는 종종 똥을 싸러 집에 갑니다. 그리고 기차는 2시간 후에 올 거예요.” 그가 말했다. “2시간 후라고요? 진짜요?” 주저앉아 있던 스텔라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여기는 인도잖아요. 사람들의 염원대로 시간이 흐른답니다.” 그가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턱이 가리키는 방향에 매표원이 있었다. 그녀는 돌아왔다. 똥을 싸고 돌아왔다.
기차 안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도 꾹 참고 그저 기다려야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마른 강아지가 어슬렁거리고, 원숭이가 철로에 떨어진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검은 비둘기가 소리를 몰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시큼한 짠 내가 축축하게 떠다녔다. 나는 자주 고개를 돌렸다.
사마디의 말처럼 약 2시간 후에 기차가 도착했다. 뭄바이로 향하는 기차가 맞는지 여러 차례 큰 소리로 물으면서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믿을 수 없었다. 18칸 되는 기차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선 채로 눌려있었다. 활짝 열린 문짝에는 반쯤 튀어나온 몸들이 애처롭게 매달려 흔들거렸다. 몇몇은 위태롭게 기차 칸 위에 엎드려 있었는데, 그나마 안전한 곳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텔라와 나는 서로를 절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우리는 서서히 출발하는 기차를 보내지도, 잡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열린 문짝에 매달린 몸통 사이를 뚫고 하얀 손바닥이 툭 튀어나왔다. “내 손을 잡아요!” 알 수 없는 소리에 스텔라가 먼저 손을 덥석 잡았고, 뒤이어 기차를 쫓아 달리던 내가 손을 부여잡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사마디였다.
우리는 생각할 겨릉 없이 기차에 올랐기 때문에 이 숨 막히는 인파 속에서 오열할 지경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기차 바닥에 발바닥을 지지할 곳이 없었기에 내 몸은 사람들 몸 사이에 거의 둥둥 떠 있었다. 어떤 손이 나타나 17kg 넘는 내 배낭을 덜어주었고, 어떤 손은 내 등을 밀어 2층 침대칸으로 밀어 올렸다. 한 손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작은 손은 내 귓등을 잡고 속삭였다. 아무 말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2층 침대칸에 기대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운동화를 벗기려는 손은 애써 뿌리쳤다. 깔창 아래 비상금 5000루피를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벗겨진 운동화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아니타! 수니타!” 사마디가 우리를 번갈아 올려 보며 말했다.
“우리는 아니타, 수니타가 아니야, 사마디.”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당신은 아니타, 친구는 수니타 하시오!” 사마디가 천진하게 말했다.
“뭄바이로 가는 기차가 맞지?” 스텔라가 무시한 채 물었다.
“이 기차는 산치로 갑니다.” 사마디가 단호하게 말했다.
“산치? 그게 어디지? 그럼 뭄바이는요?” 내가 힘 없이 물었다.
“아니타, 수니타는 산치로 가요.” 사마디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더 물어볼 기운도 없어서 운동화만 꼭 껴안았다. 덜컹거리는 낡은 기차 안에서 우리는 같은 침대칸에 앉은 한 가족의 도시락을 얻어먹고, 두 다리가 없는 장애를 지닌 어린 소년이 내는 짜이를 30루피에 사서 마셨으며, 알 수 없는 현란한 손짓과 함께 대중을 웃기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따라 웃기도 했다. 사마디가 건네는 손을 잡고 어느 기차역에서 내렸을 때 선명한 노을이 마을 전체를 붉게 흩뿌리고 있었다. 노을을 뒤로하고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논둑 빼곡히 연둣빛 벼가 찬란하게 흔들리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나와 스텔라는 서로를 마주 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대여섯 집이 띄엄띄엄 흩어진 작은 마을 한가운데에 황금빛 스투파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아니타! 수니타! 빨리 이리 와서 블랙티를 마셔요, 특별히 설탕을 잔뜩 넣었다고. 허허.” 나이 지긋한 노인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말했다.
“네, 가요!” 수니타가 뛰어 내려가며 말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