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물에 달걀을 5분간 더 끊이면 딱 먹기 좋은 반숙 노른자가 된다. 윗부분을 톡톡 쳐서 껍질을 벗긴 후 숟가락으로 세 번 퍼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반쯤 죽은 식물에 햇빛을 내어주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튼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라디오 dj의 과장된 목소리를 흘려보내고 화장실에서 몸을 가볍게 한 후 가장 편한 운동화를 신으면 산책 준비를 마친 것이다. 평지는 찾아볼 수 없고, 인도와 차도의 경계가 없으며, 단층으로 된 상점이 달라붙은 이 마을은 산책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가까운 공원은 온갖 벌레에게 잠식당해 정글이 되었고, 건조한 시로코 바람이 건물을 점점 덮는 중이다. 상점 주인들을 제외하면 이곳에 ‘살기 위해’ 머무는 이는 거의 없다. 폐허가 된 유적을 보러 잠시 들른 여행자가 어슬렁거리고, 기력 없는 노인들이 그림자를 따라 움직인다. 사람들은 대체로 도시의 유일한 상점 거리로 나와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침묵의 시간을 보내다 연기처럼 흩어진다.
여자는 수 개월째 계속 울고 있다. 울음에 취해 잠이 드는 시간을 제외하고, 여자의 하루는 울음으로 시작해 울음으로 끝난다. 울음에 지쳐 잠든다. 울음은 통곡에 가까운데, 그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그저 딸의 굽은 등을 쓸어내리며 고통이 끝나거나 잦아지기만을 기다린다. 절망적 기다림이다. 여자가 울 때마다 고통스러운 얼굴을 지었으므로, 거리의 모든 사람은 동일한 리듬에 맞춰 고통스럽다. 나는 울고 있는 그를 지나칠 때마다 그것이 정말 슬픔에 의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여자는 수 세대에 걸친 조상의 슬픔을 다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위트 몽크’라는 간판은 몽키mongkey의 ‘g’와 ‘ey’가 사라져 ‘monk’ 몽크(스님)이 되었다. 한때 마을 최고의 레스토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여주인 럭키 아주머니는 장난감 같은 작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담배를 연속 태운다. 그 옆에서 젊은 청년이 내게 잎담배를 말아 판매한다. 아들인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서로 닮은 구석이 하나 없다. 럭키 아주머니의 요리 중 단연 최고는 새우 토마토 파스타다. 그의 조리 시간에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화려한 수타 퍼포먼스를 보면 입을 벌리고 한 없이 기다리게 된다. 꾸덕꾸덕한 면발은 농밀하게 쫄깃하면서도 메밀처럼 잘 끊어져 후루룩 잘 넘어간다. 매콤한 토마토소스가 알차게 스민 새우가 너무 맛있는 나머지 개수를 세며 아껴 먹는다. 사실 이곳에서 메뉴 선정에서 실패할 일은 거의 없지만, 럭키 아주머니는 이제 요리하지 않는다. 나는 피우지 않는 잎담배를 1달러에 구입한다. 럭키 아주머니가 가볍게 눈인사를 보낸다.
노인은 사라진 사람들이 버리고 간 물건을 판다. 거리의 유일한 골동품 가게이지만, 이곳으로 골동품을 가져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버리고 간 물건을 찾으러 온 이도 없다. 그중에는 더듬이가 유난히 큼지막한 고대 삼엽충 화석이 있고, 빙하가 녹으면서 지면 위로 솟은 산악인의 낡은 장갑도 있다. 백학의 박제 눈과 베를린 장벽의 부서진 벽돌, 황금박쥐 똥이나 멸종 식물처럼 희귀하지만 쓸모 없는 물건도 보인다. 나는 매번 새로 들어 온 물건이 있는지 묻고, 빈 주머니로 그곳을 지나친다. 노인은 가게 안으로 들어 온 늑대거미를 돌본다. 거미의 움직임을 종일 쳐다보는 일이 보통의 시간이다. 거미는 앞 집게발을 드럼 스틱처럼 땅을 두드리고 튕기며 춤춘다. 솜털이 빼곡한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인다. 노인은 늑대거미 춤의 유일한 관객이다.
도시의 마지막 개가 죽었다. 주인은 그의 개가 역병이 들었다고 오랜 시간 동안 짙은 어둠에 가두었다. 주인은 그의 강아지가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충성한다고 종일 욕을 해댔다. 가여운 강아지는 어둠 속에 새어드는 빛을 쫓아 움직였고, 빛의 조각을 따라 종일 맥없는 점프를 반복했다. 강아지는 흔들리는 빛을 쫓다 사팔뜨기가 되었다가, 어둠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마른 흙을 1m가량 파내어 땅속에 묻었다. 도시의 마지막 개는 끝내 빛에 이르지 못하고 영원한 어둠이 되었다. 욕할 상대가 사라진 주인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물고기처럼 눈을 감지 않는다. 산책을 시작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가는 길목까지 사내는 내내 눈을 뜨고 있다. 마치 어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한 찰나에도 눈을 감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보통의 날, 그는 눈을 감지 않는 여자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두 눈이 머물렀다. 내가 산책을 다녀왔을 땐 여자의 배가 불러 있었다.
도시를 산책한다. 곧 도시와 함께 폭삭 주저앉을 사람들을 지나치면서 말이다. 그중 몇 사람은 이미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중 한 사람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