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점의 산문시 딜리버리입니다. 매주 수요일 보내드려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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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점입니다.
매일 피부에 닿는 바람의 온기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여름과 가을 경계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데, 짙은 새벽에는 이불을 끌어당길만큼 선선하네요. 모두 간절기 감기 조심하시길 바래요. 이번주에는 산문시 배달 대신 두 번째 번외 편 <보이지 않는 여행들 ost vol. 2> 음악 리스트를 보내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여행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생각하며 고른 음악인데요. 지난 첫 번째 리스트가 메인 리스트라면 이번엔 스핀 오프 정도 되겠습니다. 곡 사이의 연결성이 좀 떨어지거든요 ㅎㅎ 사적 취향을 담은 음악이고, 짙은 가을의 호숫가에서 마음을 나누는 도반들과 함께 들으며 수다 떨고 싶은 곡들입니다. 아, 정말 음감회를 함께 작당해보아도 좋겠는데요?
본문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로 연결됩니다.
모두의 평온한 가을을 바라며 따뜻한 명절 보내시길:)
2023년 9월 27일 수요일 우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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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보이지 않는 여행들> OST vol.2
_ 다시 가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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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뉴트롤즈 New Trolls <adagio(shadow)>
허세로 음악을 들었던 시절에도 ‘찐’ 감응을 주는 뮤지션이 있었어요. 아직도 라디오에서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었을 때의 생경한 감동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도대체 이게 뭐지? 이 음악 정말 뭐지?’ 하며 스피커 앞에서 얼음이 되었던 순간을요. 프로그레시브록은 제게 무척 낯선 장르였는데, 이 노래를 듣고 새로운 록 음악에 관해 귀가 트인 것 같아요. 아, 이런 음악도 록이구나. 록이 클래식을 만나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구나. 이 노래는 1970년대에 활동한 전설적인 이탈리아 록 밴드 뉴트롤즈의 걸작 [CONCERTO GROSSO PER 1] 음반에 수록된 두 번째 곡이에요. 이 음반의 모든 곡이 환상적인데, 화려한 현악 오케스트라의 격정적 멜로디, 보컬리스트 목소리의 상승과 하강이 무척 영적인 순간을 만듭니다. 특히 ‘아다지오’는 서정적 멜로디와 시적 가사로 가장 대중적 사랑을 받았답니다. 본래부터 뉴트롤즈가 이런 음악을 한 것은 아니고, 영화음악가 Luis Enriquez Bacalov와 제작자 Bardotti의 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음반을 처음부터 듣고 있으면, 장엄한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기분이 듭니다. 라이브 공연 음반을 들어야 해요…. 미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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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핸드 투 어스 Hand to Earth <Water Song>
‘핸드 투 어스’는 고유한 색깔로 독보적 재즈 씬을 만들고 있는 보컬리스트 써니킴(김윤선)이 호주에서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에요. 써니킴(보컬, 전자음), 아비바 엔딘( 클라리넷, 창작 악기), 피터 나이트(트럼펫, 전자악기)와 함께 호주 원주민 다니엘 월프레드(소리, 전통 악기)와 데이비드 월프레드(디저리두, 전통 악기) 이렇게 네 명으로 이루어졌죠. 써니킴의 팬으로서 핸드 투 어스 공연을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며칠 전 종로의 반쥴 스테이지에서 드디어 만났답니다! 다니엘과 데이비드의 마을은 멜버른에서 무려 5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 7시간을 차량으로 더 가야 하는 (그중 2시간은 비포장도로..). 멀고 먼 곳이라고 해요. 그토록 먼 여행길을 온 그들의 음악을 직접 만나게 되었으니 전 행운아입니다.
호주 원주민에게 노래는 조상의 조상, 엄마의 유산으로 전해지는 땅과 물의 지혜이자 돌봄이고 사랑입니다. 후손들은 노래를 통해 길의 방향을 찾고, 식물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잘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죠. 조상들이 전한 귀한 삶의 백과사전이 점점 침묵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슬퍼집니다. 음악을 듣는 내내 사라짐의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구전으로 전해진 노래 중 어떤 것은 수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합니다. <Water Song>은 물 안으로 들어가 몸과 정신을 정화하는 리추얼 전통에서 시작합니다. 실제로 데이비드와 다니엘은 그의 마을 라키에서 샤먼의 역할을 한다고 해요. 피터 나이트와 아비바 엔딘이 만드는 입체적 음향은 운무 내려앉은 숲속 계곡으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다니엘의 소리가 광활한 시공간을 휘젓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의 목소리는 그의 조상, 자신, 그리고 다음 세대 어린아이의 음성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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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쿠 비나야크람 Vikku Vinayakram <Honeymoon 5 Beats>
최근 참여한 춤 워크숍에서 이 노래만 나오면 시공간이 들썩거렸어요. 춤 추는 사람은 물론 춤을 바라보는 몸까지 그 파동 속으로 강렬하게 빠졌죠. 이 음악이 들리면 누구라도 엉덩이를 들썩거리지 않을 수 없을 거예요. 이유는 바로 남인도 고대 타악기인 가탐(ghatam)에 있습니다. 외관은 그저 흙으로 만든 물항아리처럼 보이는데,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타악기 중 하나입니다. 고운 진흙과 구리, 철을 함유해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고요. 비쿠 비나야크람은 현존하는 마스터 타악기 연주가로 ‘가탐의 신’으로 불립니다. 가탐은 무척 빠른 템포의 리듬을 반복적으로 소리내는데요, 패턴이 점점 강렬해지면 마치 최면에 드는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연주자는 자유로운 즉흥의 움직임과 소리를 내기도 해요. 악기를 공중으로 던지거나 빙그르르 돌리면서 다양한 음색도 만들죠. 러닝타임이 11분이 넘어요. 그 안에서 악기들의 무수한 변주,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한 편의 서사극처럼 장대하게 흘러갑니다. 자, 일단 춤 출 준비 하시고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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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데이빗 실리언 David Sylvian <The Song which gives the key to perfection>
처음엔 인도 구루의 노래인 줄 알았어요. 힌두 경전 '찬디의 길' 전체를 산스크리트어로 낭송하거든요. 노래이자 시이고, 기도인 셈이죠. 데이빗 실리언은 영국 출신의 록 뮤지션인데, 퍼포머라 불리기도 합니다. 초기 싱글 앨범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함께 협력한 음악도 많아요. 제목을 번역하면 ‘완벽의 열쇠로 이르는 노래’ 정도 될까요. 실리언이 노래하는 ‘찬디의 길’은 힌두교 경전 ‘데비 마하트미암’의 일부로, 원본은 13장으로 배열된 700개 구절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요. 힌두교 여신 데비를 경의하고 예배하는 내용이지요. 데비는 악에 맞서 선의 힘으로 승리를 이끌고 창조와 행복의 번영으로 나타난다는 궁극의 여신입니다. 어떤 끌림으로 자연스레 이 노래를 듣게 되었고, 마음이 불안하거나 의지할 무언가가 필요할 땐 자동적으로 재생 버튼을 누릅니다. 만트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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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데이빗 실리언 David Sylvian <Praise>(Pratah Smarami)
4번 노래가 마음에 닿았다면, 같은 음반에 있는 노래 <Praise>(Pratah Smarami)도 좋아할 거예요. ‘찬양’이라는 의미의 곡으로 실비언과 특별한 우정을 쌓은 인도 수행자 슈리 마(Shree Maa)의 아침 기도입니다. 그녀는 인도 히말라야의 깊은 산기슭에 머물며 깊은 침묵의 명상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거의 침묵하며 수행했습니다.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녀를 산의 여신, 강의 여신으로 불렀어요. 그녀가 ‘찬디의 길’을 낭송할 때, 사람들은 신성한 어머니가 이 땅에 실제로 나타났다고 믿었답니다.
‘매일 아침이 끝나면 그녀는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리 집 전체에 울려 퍼졌고 정말 훌륭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집에 스튜디오가 있는데 그녀는 우리가 녹음할 수 있도록 매우 친절하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을 녹음했습니다. 매일 그 기도를 반복해 듣는 것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데이빗 실비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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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파 Sefa <Moemoea>
저는 때때로 어느 곳에서 감응을 받으면 그곳의 뿌리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하곤 합니다. (사실 너무 자주 감응을 받습니다만..)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전통 타악기 토에레(to’ere) 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랬어요. 대지와 몸, 바람을 하나의 파동으로 연결하는 묵직한 나무 악기는 울림통 형태와 크기에 따라 다양한 영역의 소리를 내는데, 정말 말문이 막힐 정도로 신비롭고 강렬합니다. 폴리네시아인의 영적이고 신성한 힘의 개념인 마나(Mana)가 우리를 수호하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에레의 강력한 울림이 시작되면, 타히티 깊숙한 원시림 너머 마나의 정령이 부유하는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거든요.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주섬, 타히티에서는 매년 헤이바(heiva)라는 전통춤 축제가 열리는데요, 그곳에서 이 토레에 오케스트라에 맞춰 아름다운 남녀가 전통춤인 오리 타히티 무대를 실컷 볼 수 있습니다. 전통 악기와 춤 등 폴리네시아 고유문화는 영국의 식민 정책으로 거의 한 세기 동안 말살 상태에 있다가 20세기 중반에서야 다시 부활하게 되었어요. 집안에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말로, 몸으로 배우며 전통을 이어 온 덕분이었죠. 토에레 밴드, 세파의 원시적 비트에 맞춰 그 유명한 엉덩이춤 오테아(Otea)를 함께 춰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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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톰 웨이츠 Tom waits <Innocent When You Dream>
웨인 왕 감독의 1995년 작 영화 <스모크>의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곡이에요. <스모크>는 정말 이상한 영화였어요. 종종 무의미해 보이고 연관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라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가 싶은데, 자꾸 기억 속에 맴돌았거든요. 미국 작가 폴 오스터가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영화로, 볼 때마다 매번 다른 인물의 서사가 마음에 깊은 무게를 남깁니다. 14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아침 8시에 가게 앞 풍경을 찍어 온 담뱃가게 주인 오기, 임신한 아내의 죽음으로 글쓰기를 중단한 소설가 폴의 대화를 중심으로 그들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나열됩니다. 오기는 성탄절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는 폴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데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오기의 이야기가 단편 영화처럼 복기 되고, 그때 톰 웨이츠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옵니다. 톰 웨이츠 특유의 거칠고 불균형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흑백 영상의 간극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저도 이 영화 본 지 오래되었는데, 다시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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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경숙 & 니나 코건 <Alone I Pass a Lonely Road>
첼리스트 박경숙과 러시아 피아니스트 니나 코건이 함께 연주한 음반 [러시안 로망스 Russian Romance]은 정말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데요, 제가 러시아 모스크바로 동행해 음반 녹음을 목격하고, 커버 사진을 촬영했기 때문이죠. 사연이 깁니다:) 니나 코건은 20세기 소련 클래식을 대표하는 중요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Leonid Kogan)의 딸입니다. 부모님이 모두 유명 음악인이었기에 딸인 니나 코건이 피아니스트가 된 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여요. 니나 코건은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의 반주자이자 소나타 파트너였다고 해요. 박경숙과 니나 코건은 모스코바에서 만나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함께 연주하고 녹음했습니다. 니나 코건이 악보를 한 장씩 한 장씩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합주를 이어가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히 기억납니다.
음반에 수록된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도 너무 아름답지만, 러시아 낭만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Michail Lermontov)의 시를 연주한 ‘Alone I Pass a Lonely Road(나 홀로 길을 가네)’, 푸시킨의 시에 곡을 붙인 ‘I Met you(당신을 사랑했습니다)’는 애잔하고 서정적인 러시아 로망스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커버 사진은 12월의 추운 겨울날, 모스크바 음악원 거리의 버스정류장에서 촬영한 것인데요, 영하 30도라는 극강의 추위 때문에 10분 만에 촬영을 끝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쉬움이 크지만 의미 있는 추억입니다. 올해 초 러시안 로망스 앨범이 아날로그 LP로 재발매 되었다는데, 어여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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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에서 전 곡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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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러 르귄의 말을 인용하자면, 달리아를 심었는데 가지가 튀어나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쓰기 위해 연재를 결심했어요. 단순히 이거에요. 우리는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침묵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거요. 저의 글이 조금이라도 좋았다면, 그것은 당신 안에 있던 무언가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서로 주의 깊게, 다정하게, 마음을 나누고 있음을 느껴요. 이 세상에 별처럼 무수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여행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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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덧붙여, 필명인 '우점'은 저의 할머니 이름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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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Jeom 우점
주간 산문시 <보이지 않는 여행들>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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