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겨우 지나갈 만한 좁고 막힌 골목길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이미 35분이 흘렀고,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신경질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와 수니타는 지난밤 묵은 게스트하우스를 찾느라 온 정신을 겨우 붙들고 있는 중이다.
사건은 이러하다.
델리 공항에서 바닥이 뚫린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릭샤꾼이 갑자기 우리를 버렸으므로) 릭샤를 두 번 갈아탔고, 마른 몸피의 흰 소들이 입구를 막고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한 번 꺾고, 두 블록을 지나 왼쪽으로 몸을 돌려 나온 골든템플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던 것이다. 우리는 샤하르라는 이름의 호텔 매니저 안내를 받아 그곳에서 유일하게 창이 난 트윈베드룸을 얻을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핫샤워’가 가능한 방을 얻어 만족스러웠고, 이틀간의 고단한 버스 여정을 끝낸 탓에 다음날 오전까지 13시간 내리 잠을 잤다. 객실 문을 두드린 것은 샤하르였다. 중정에 차린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는 숙박비에 모두 포함된 것이니 놓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스크램블 에그와 감자구이, 베이컨과 토마토 샐러드를 갖춘 제법 훌륭한 조식이었다. 샤하르는 인도인 중에서도 유난히 검은 피부를 지녀서 말을 할 때마다 큰 눈의 흰자와 새하얀 이빨이 도드라졌다. 우리가 질문을 할 때마다 진지하게 골몰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늘 그럴싸한 해결법으로 우리를 놀래켰다. 우리는 티셔츠와 반바지, 양말 따위를 대충 빨아 야외 중정을 가로지르는 분홍색 빨래줄에 널고, 간단한 채비를 하고 숙소를 빠져 나왔다. 델리는 대도시였으므로, 걸을수록 현기증이 났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무수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지나치는 것 같았다. 델리의 검은 공기 속을 한나절 헤집고 다니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마침내 사달이 났다. 우리 중 누구도 숙소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마음에 소용돌이가 쳤다.
나: 저 골목이 확실해. 저 입구에서 작은 꼬맹이가 나한테 돌을 던지며 욕한 것 기억나지?”
수니타: 욕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아? 그 아이는 도망가는 도중에 소똥을 밟았지.
나: 문제는 태도니까. 거기 소똥 조심해!
수니타: 똥을 줍는 아이들이 많네.
나: 그건 좋은 연료가 되니까.
수니타: 갈릭난을 먹고 싶군.
다만, 숙소를 찾는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방향을 잃고 소똥으로 꺾었다가 갈릭난을 떠올리며 토기에 내는 짜이를 석 잔이나 들이켜는 것이다. 델리 구시가지의 골목은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힘들 정도로 미로 같았는데,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미로를 빠져나오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손으로 펌프를 퍼 올리는 아이들이 물을 우리 쪽으로 튕기며 장난을 치는 것이 반복되었다. 그제야 우리가 같은 골목을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원히 이 미로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때 검은 테 안경을 쓴 단발 사내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본인을 프랑스에서 온 피에르라고 소개한 그는 델리 기차역에서 구시가지까지 오는데 릭샤꾼에게 무려 100달러를 지불했다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피에르 : 바보 같은 거 알아요. 릭샤꾼은 나를 이 골목에 내려주고 100불이나 챙겨 사라졌다고요.
나 : 글쎄요… 바보 같진 않습니다만, 숙소 이름이 골든템플인가요?
피에르 : 기억나지 않아요. 나는 골목에서 빠져나가려던 참이었어요.
수니타 : 100불이라니 말도 안 돼요!
피에르 : 맞아요, 정말 바보 같죠. 난 단지 라비 샹카르를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요.
나 : 라비 샹카르가 누군데요?
피에르 : 시타르 연주자를 몰라요? 비틀스 <No.9>음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음악가라고!
피에르의 영어가 불분명하게 들렸기 때문에 더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피에르는 마르세유에서 기타를 전공한 음악가로 인도 타악기에 마음을 빼앗겨 혼자 인도에 왔다. 그는 여행에는 전혀 관심 없고, 오직 시타르 장인의 아쉬람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나와 수니타 그리고 피에르는 각자의 목적을 품고 골목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함께 탐색하기로 했다. 우리의 의심은 돌처럼 단단해져 길에서는 그 어떤 인도인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오직 기억과 소리에 이끌려 우리만의 지도를 그려나갔다. 날이 저물었고, 배가 고팠다. 골목에는 인공등 하나 놓여있지 않았으므로 공포심이 밀려왔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수니타 : 이 골목에서 하룻밤 보낼 곳을 찾아야겠어요.
피에르 : 불이 켜져 있는 집으로 가봅시다.
나 : 홍차 냄새가 나요.
피에르 : 인도에서는 먼 곳에서 온 손님에게 홍차를 내는 관습이 있죠.
서너 살 돼 보이는 아이들 둘과 붉은색 사리를 입은 아내, 그리고 터번을 두른 남자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식구가 겨우 누울 수 있을 비좁은 공간에 빛이라곤 찻물 끓이는 낡은 버너와 천장에 매달린 미약한 전등불이 전부였다. 나는 온갖 과도한 몸짓으로 우리가 골목에서 길을 잃었고, 하룻밤 보낼 곳을 찾고 있다고 설명하느라 애썼다. 그는 그저 투명한 미소를 지으며 홍차를 대접할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가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아내는 주전자에 우린 홍차를 큰 컵이 넘치도록 가득가득 담아주었다. 검고 진한 차에서 포도향이 났다. 우리의 언어는 전혀 달랐지만, 나는 그가 산에서 소금을 채취하는 사람이며 아이들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 집에 왔음을 겨우 알아냈다. 우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 사이에서 거의 앉은 채로 잠에 들었다. 아이들은 종종 까르륵거리며 옆구리를 찔러댔고, 나는 갑자기 안전한 평온함을 느꼈다. 피에르는 낮에 새똥을 맞은 것에 관해 말하다가 잠이 들었고, 수니타는 머리를 바닥에 기대자마자 코를 골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사내는 없었고, 아내는 다시 찻물을 끓이며 찻잔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동굴 같은 시커먼 돌바닥에 낡고 때 묻은 담요 몇 개만 놓인 공간이 자세히 보였다. 안전하고 따뜻하게 이방인을 품은 환대의 동굴.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차를 나누어 마시며 자주 미소 지었다. 검고 진한 차에서 이번에는 누룽지향이 났다. 차를 마신 다음 감사의 포옹을 여러 번 나눈 뒤 아이들과 엉터리 작별 노래를 부르며 집을 나왔다. 아내의 눈이 반짝거렸다.
피에르 : 아니타, 수니타! 여기가 너희들이 말한 골든템플 게스트하우스 아니야?
수니타 : 맙소사! 어떻게 된 일이야?
아니타 : 아니 진짜야? 이게 어제 우리가 그렇게 종일 찾아 헤매던…?!!
우리가 그토록 찾던 골든템플 게스트하우스는 홍차를 내어 준 집에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골목 끝에 있었다. 숙소 문 앞에 서 있던 샤하르는 지난 밤에 왜 들어오지 않았느냐며, 빨래가 다 말라서 방에 넣어두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밖을 나서던 샤하르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우리에게 뛰어오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오늘 우리 숙소 중정에서 라비 샹카르의 공연이 있어. 사실 여긴 그의 아쉬람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