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작 코 수술을 받을 뿐인데,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지 뭡니까. 당신은 무슨 수술을 기다리는 거요?” 내 옆에 누워 마취 전문의를 기다리던 청년이 말했다.
“사람들은 내 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기운 없이 말했다.
“당신이 설마, 그…’구원의 똥’ 종족입니까?” 청년은 내 침대 쪽으로 몸을 휙 돌리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슈퍼 박테리아가 지구 인류의 반을 집어삼켰을 때도 슈퍼 항체 덕분에 멀쩡할 수 있었죠.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직 내 똥에만 관심이 있더군요. 그들의 장에 내 똥의 미생물을 주입해 저와 같은 면역 체계를 만들고자 했지요. 똥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고, 음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최상의 똥을 얻는 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일주일에 3번 채취를 하고 그중 가장 유익한 미생물이 많이 나온 것을 사람들 대장에 다시 집어 넣었어요. 대기인만 2천 명에 달합니다.” 나는 더 질문이 이어지지 않도록 친절하게 설명했다.
“아니 그렇다면 무슨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청년이 말했다.
“의사들은 내 똥 속 미생물이 충수의 협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냈거든요.” 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한때 나는 충수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인간의 진화 단계에서 퇴화한 작은 장기. 종종 쓸데없이 염증을 일으켜 장내 심각한 감염을 일으키는 골칫덩이라고 말이다. 1년 전 의료진들은 내 충수가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외부 환경에서 배양 할 수 있다면 인간 수명 연장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직후부터 나는 오랜 시간 설득당했다. 그사이 내 똥의 표본은 현재까지 스물네 번 수거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노르웨이 스발바르제도의 외딴섬에 있다.
나는 간혹 내 똥이 인간이 살 수 없는 북극의 산악지대에 보관되어 있다고 떠올릴 때마다 똥 속 미생물에게 일종의 애틋한 연대감을 느끼곤 한다. 내 똥은 북극점에서 무려 1,300km 떨어진 스피츠베르겐섬의 영하 80도의 저장고에 에티오피아 어린이 대변, 남미 원주민의 대변과 함께 냉동되어 있다. 저장고는 미래를 고민하는 자본가들의 투자금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이번엔 나의 충수를 원한다. 그들은 내 충수를 대장으로부터 절단해 특수 배양실의 내장 세포와 결합해 미생물을 사육할 계획이다. 그러니까 내 충수는 시험관 안에서 숨 쉬면서 유익균을 생산하는 영원한 노동의 운명에 놓였다.
마취 전문의가 가장 먼저 다가간 이는 아마존 원주민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분노와 두려움의 종착지가 침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 어떤 순간에 침묵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곧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페루 아마존 원주민은 도시인보다 장내 미생물이 3배나 되고, 멸종되지 않은 미생물처럼 무수한 유익균을 지닌 살아 있는 보물이다. 인체 저항력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현대인에게 그녀는 어떻게든 쟁취해야 할 생존의 도구인 셈이다.
“그는 페루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부족이에요. 얼마 전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잉태한 마지막 인류죠. 그녀가 어떤 수술을 받는지 알아요? 의사들은 곧 그녀의 질 속에 살아 있는 미생물을 다 긁어낼 거라고요. 정말 소름 끼쳐요.” 비중격만곡증 수술을 기다리는 청년이 말했다.
아마존 여성의 침대가 18번 수술실로 들어가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청년의 침대도 어디론가 미끄러졌다. 벽면에 걸린 모니터에서는 병원의 광고 영상이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영상의 소리를 들으려 했지만, 몸이 물속에 빠진 듯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몸은 늪에 서서히 빠지는 것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달아 준 마취 전문의가 나를 한동안 내려다보았음을 기억한다. 대충 내가 들은 소리의 내용은 이러하다.
"우리 병원은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현대 여성을 위해 특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 알려진 페루 아마존 원주민의 질 속 미생물을 다량 보유합니다. 국제적으로 인증된 최상급 미생물로 가득한 버블 통로로 아이를 통과시키는 신뢰 받는 정통 방식입니다. 아이가 엄마의 질을 통과해 세상에 나오는 과정과 동일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아이는 버블 통로를 통과하면서 미생물 샤워를 받게 됩니다. 이로써 면역 기능을 얻게 되고 지구 생존 능력이 평균 30% 증가합니다. 더불어 저희 병원은 면역 체계가 붕괴된 성인들을 위한 통로 미생물 샤워 테라피를 특별히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과정과 비용은 상담실 예약을 통해…"
사람들은 내 충수를 떼어갔다. 인류에게 그것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 됐다. ‘난 괜찮아. 도움이 되었다면 나는 즐거워.’ 유쾌하게 말하고 사라지리라. 이후 아무도 내가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침묵이 되었고, 어떤 이들은 내가 죽었다고 떠들어댔다. 인류 생존에 기여했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