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들어간다고요?”
“그곳에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공룡 화석이 있다고 해서요. 그것은 거룩한 생명의..”
“시끄럽고. 당신이 그곳에 들어가는 건 자유이지만 흑염소를 조심해요. 그것들은 정말이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니까.”
“그게 무슨 문제죠?”
“당신까지 먹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객터미널에서 어슬렁거리던 낚시꾼이 건방지게 말했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올려 흑염소에게 공격당해 생긴 상처를 보여주었다. 세 가닥의 긴 흉터가 붉고 선명했다.
“흑염소가 이랬다고요?“ 난 믿을 수 없었다.
“그림자가 다가오면 이미 늦은 겁니다.” 낚시꾼은 무심하게 말했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몸피가 두껍고 꼬리꼬리한 냄새를 풀풀거렸다. 그는 지긋지긋한 표정으로 터미널 밖으로 나가더니 다음 타깃을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중간 섬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으므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렸다. 이 섬에는 고작 아홉 가구, 그러니까 총 열여섯 명이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민박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민어 잡는 여름 동안에 잠시 머문다고 했다. 항에 대기하던 경운기 혹은 봉고차가 여행객을 차례대로 싣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차에는 붉은색 글씨로 ‘흑염소 소탕 작전’이라 쓴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이곳에 도착했음을 자책하며 목기미해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날렵한 보더콜리 두 마리를 양쪽에 끼고 나를 유심히 보던 한 주민이 말을 건넸다.
“해가 지기 전에 큰마을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곳을 한국의 원시림이니, 갈라파고스니, 떠들면서 똥이나 잔뜩 싸고 나가는 백패커도 그쪽으로는 잘 가지 않아요. 코끼리를 만나면 안부 전해주시고.”
그는 자기 민박집이 큰마을의 유일한 오렌지색 지붕이니 찾기 쉬울 거라 덧붙이며 시동을 걸었다. 보더콜리는 나를 한심하게 보는 눈빛이었지만 함께 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공룡 똥에 킁킁거리고 코끼리 다리에 쉬 할 수 있도록.’
모호한 마음을 붙잡고 섬을 걸었다. 바람이 깎고 염분이 삼키고 파도가 눌러 만든 돌이 한쪽에는 아무렇게나 자른 가래떡을 막 쌓아 올린 듯하고, 그 반대편은 숟가락으로 파먹은 것 같은 형태의 기암이다. 용암이 뒤틀린 외딴 바위에는 불의 숨구멍이 기하학적으로 멈춰있다. 남쪽과 동쪽은 단단하고 서쪽 돌은 힘 없이 부서진다. 그사이에 힘줄 좋은 억새가 지천이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 덕분에 여름벌레의 공격은 덜하다. 동물의 빠른 호흡 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그것이 단번에 흑염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흑염소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미어캣처럼 목을 늘려 억새 너머의 이방인을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가파른 해벽 너머로 사라졌다.
‘뭐야, 귀엽기만 하잖아..’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씩씩하게 걸었다. 저 멀리 바다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코끼리 바위가 보였다. 자료에서 보았던 사진보다 다리가 훨씬 얇아져 있었다. 동쪽에서 보면 잿빛 코끼리인데 사팔눈을 뜨면 팔이 긴 킹콩을 닮았다. 아치형의 검은 다리에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났다. 들어오고, 나가고, 뭉치고, 흩어지고. 하얀 물길이 킹콩의 다리를 핥았다.
먼 곳에서 굴을 캐던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하고는 큰소리치며 다가왔다.
“곧 해가 집니다. 어여 어여 돌아가요!”
“저는 공룡 바위를 찾고 있어요.”
“곧 그들이 나타날 거예요.”
“흑염소.. 요?”
“그들은 무엇이든 먹어 치워요.”
“흑염소는 아무도 해치지 않아요! 그들은.. 귀여워요!”
“당신은 그들을 알고 있군! 한통속이야. 너희들은 뭘 빼앗으러 이곳에 자꾸 오는 거야? 허튼수작하면 살아서 이 섬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아주머니의 눈빛은 참다못한 분노와 허망한 공포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나는 한 대기업이 섬을 통째로 매입해 골프장 리조트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그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난 아니에요. 그저 공룡의 흔적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요.” 난 스스로가 애처롭기까지 했다.
“종종 당신 같은 인간들이 저 목섬으로 들어가서 돌을 쓰다듬더군. 물메기가 열리면 들어갈 수 있지.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엔 반드시 빠져나와야 해!”
이번에는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해가 지기 전에 꼭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민박집의 소문난 한상차림을 맛보고 싶은 마음까진 말하지 않았다. 코끼리바위에에서 목섬으로 향하는 북쪽 바닷길은 오직 썰물 때만 열린다. 사람의 목처럼 본섬에서 길게 뻗은 길을 지나면 바로 내가 그토록 찾던 공룡 화석이 있는 것이다.
목섬에서 목도한 기괴한 잿빛 바위는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했다. 수직으로 솟은 육중한 바위는 수만 년 동안 파도를 만나 그대로 파도가 되었다. 소금과 안개가 깎은 밑동은 마치 활 모양처럼 패여 있었는데, 용궁으로 가는 터널처럼 수평선을 향해 끝없이 이어졌다. 아, 이것이 공룡이구나! 이대로 공룡이 되었구나! 난 풍광에 압도되어 넋이 나간 채 물이 차오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니나니 벌이 애벌레를 입에 물고 낮게 날며 지나갔다. 밤이 온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목섬에서 캠핑하기로 했다. 물이 차오르지 않는 피칭 장소를 찾아야 했다. 해변에 있는 검은머리물떼새의 둥지를 조심스럽게 지났고 스물여섯 개 둥지가 매달린 베짜기새의 나무집에서 잠시 쉬었다. 마침내 무릎 높이의 모래 둔덕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흩어져 있는 마른 지대가 나타났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조명등을 켰다.
뿌억 뿌억 뿌으으으으으으웅우어어억!!!!!!!!!
지독한 어둠 속에서 마치 민어가 교미할 때처럼 괴팍한 부레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조명등은 어디론가 날라갔고, 길고 가는 어두움이 눈과 눈 사이를 찌르며 포효했다. 두루미처럼 생긴 작고 기다란 머리 뒤로 5층 건물만 한 거대한 몸집이 뒤뚱거렸다. 목에 비해 몸뚱어리가 하마처럼 거대해서 움직일 때마다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았다. 그건… 내가 낮에 보았던 공룡이었다! 육식 공룡 기가노토사우루스를 울버린처럼 큰 갈퀴손으로 사정없이 때려잡아 눕히던 테라지노사우루스였다.
테라지노사우루스는 모래 둔덕에 길고 가는 손톱을 깊숙이 넣어 개미를 끌어 올린 다음 사정 없이 혓바닥으로 쩝쩝대며 먹기 시작했다. 육중한 몸은 지평선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꺼지고 지진을 일으키고 달빛을 흔들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 테라지노사우루스는 1m가 넘는 긴 손톱으로 내 몸의 규격을 재고 혓바닥 털로 침을 골고루 묻힌 다음 가장 적당한 크기의 모랫구멍 속으로 나를 야무지게 쑤셔 넣었다.
내가 추락하는 동안 흑염소들은 억울하게 소탕될 것이다. 호흡이 점점 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