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새 탐험가의 실종이 확실해졌을 때 우리는 3개 루트로 그의 행적을 좇기로 했다. 숲에서 야생동물 영역을 잘 파악하고 있는 다야크족 마쑤이가 진두지휘하고, 그의 어린 쌍둥이 형제가 보조로 합류했다. 애초에 새를 관찰하기 위해 모인 우리 무리는 총 다섯 명이었는데, 대부분 코뿔새 탐험가의 실종을 믿지 않았다. 실종이 아니라 탐험가 스스로 코뿔새가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가 이곳으로 오는 경비행기에서 코뿔새로 살았던 이전의 삶에 관해 내내 떠들어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어찌 됐든 나는 대사관에 소식을 전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벌써 한국에서는 코뿔새 탐험가의 실종을 진지하고 의뭉스러운 사건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으니까. 더불어 코뿔새가 된 그를 목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땅한 장비가 없던 나는 산악 마을의 유일한 옷 가게에 들러 신상 나이키 운동화와 실크 셔츠, 언더아머 레깅스를 모두 등산 장비와 맞교환해야 했다. 그들이 진열하고 있는 장비들이란, 10년은 족히 사용한 다음 산 아래로 던져버린 것 같았지만.
첫 번째 날, 정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창백한 제비꽃밭이 나타났을 땐 천국 같았다. 곧이어 키 높은 양치식물이 길을 낼 수 없을 만큼 빼곡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그것이 나무고사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높이가 무려 15m는 되었는데 환상의 그물처럼 보였다. 나무고사리 숲을 지날 땐 조심해야 했다. 시야가 좁아져 까마득한 협곡 아래로 여러 번 떨어질 뻔했다. 수많은 난과 고사리들을 지나자 산딸기 숲에 이르렀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남동쪽인데,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순식간에 사라진 극락조를 무작정 쫓았다. 코뿔새 탐험가는 분명 이 환상적 자태의 깃털을 쫓았을 것이다. GPS는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끼 바위 군락이 나타난 건 3.2km나 더 가서다. 북쪽 봉우리에 이르렀을 때까지 코뿔새 탐험가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코뿔새 부리 모양을 닮은 큰 화강암 기둥들이 정상에 띄엄띄엄 박혀 있었다. 마쑤이는 정상은 신성한 곳이라고 말하며 바위 한 곳에 지그시 앉았다.
“정상에서는 야생동물의 마음을 얻습니다. 각자 고유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허락됩니다.”
두 번째 날, 위험 지대를 지나
북쪽 정상 루트가 실패로 돌아가자, 우리는 가장 위험한 길을 가기로 했다. 내가 코뿔새 탐험가라면 코뿔새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위험 지대로 향했을 테니까. Dangerous Area. 지도에 붉은색으로 선명하게 쓴 위험 지대는 길이만 약 10km에 달했다. 이곳에서 원숭이 무리를 두 번 만났다. 한 무리는 너무 거대하게 몸짓이 커서 곰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큰 몸짓으로 드높은 너도밤나무 꼭대기에서 몸을 비비고 있었다. 타르 수지에 뒤덮인 원숭이 중에 대장처럼 보이는 한 마리가 대담하게 다른 나무의 가지로 훌쩍 뛰어내렸다. 이어 나머지도 우물쭈물하다가 따라 뛰며 고요한 숲을 엄청나게 흔들었다. 양팔을 벌릴 땐 너비가 170cm는 거뜬히 넘어 보였다. 나는 대장 원숭이가 순식간에 내려와 내 목을 뒤틀고 제일 높은 가지에 거꾸로 매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쑤이의 쌍둥이 동생들마저 이곳을 두려워했다. 쉭쉭 거리며 이동하는 무리 아래 두려움에 휩싸인 채 한참을 있다가 마쑤이의 혓바당 튕기는 소리에 겨우 발을 떼기도 했다. 원숭이들은 나무 어딘가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사라진 후 같기도 했다. 우리는 그 위험한 지대를 아주 조심스럽게 건너갔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두 번째 무리는 멀리서도 가늠하기 쉬웠다.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고함원숭이의 엄청난 고음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오히려 마음을 놓이게 만들었다. 고함원숭이의 소리가 클수록 겁이 많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고환 크기가 작을 수록 수컷 소리가 크다. 종족 번식을 위해 소리라도 크게 질러대야하는 고함원숭이의 처지를 생각하니 조금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늘 시끄러운 소리로 아내를 윽박지르며 밥을 당당하게 요구하던 금은방 아저씨를 떠올렸다. 그 아저씨의 생식 기능까지 알 길 없지만 말이다. 고함원숭이의 고환 크기를 떠올리면 남사스럽지만, 그들은 참 귀여운 용모를 지녔다. 뭔가 억울하고 삐진 울상의 얼굴이라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고함원숭이가 고함을 지르며 나무 꼭대기 사이를 뛰어다니는 탓에 떨어지는 열매와 똥을 피하느라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왜 위험지대인지 알게 되었다.
세 번째 날, 이전의 생으로 돌아간 코뿔새 탐험가
나는 위험지대에서 늑대거미에게 물려 이틀간 고열에 시달렸다. 거미에게 물려 죽는 경우는 드물지만, 탈수와 두통이 이어졌기 때문에 구조팀에 계속 합류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마쑤이는 우리가 헛수고하는 것이라며 비용을 더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나 없이는 숲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코뿔새 탐험가를 찾지 못할 경우 혼자서 책임을 질까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에 하루 50달러를 더 주기로 했다. 먼 곳에서는 현지 사람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까지 산에서 실종될 수는 없으니까. 반면 코뿔새 탐험가의 생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틀이 지난 말간 날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바위가 지천이었으므로 내 무릎은 철근처럼 무겁고 산을 오르는 내내 지끈거렸다. 중산간 원시림을 겨우 통과하자 구멍 난 화산 바위가 날카롭게 툭 잘린 형태의 절벽이 겹겹이 솟구쳐 있었다. 쌍둥이 형제 중 형인 푼자르가 바위에 올라 로프를 고정해 내리면 나머지가 고정 로프에 의지해 올라가는 방식으로 수색을 이어갔다. 푼자르의 낡은 로프에는 중간중간 힘줄이 튀어나와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벽을 세 번 넘자 노란 복수초로 뒤덮인 초원이 펼쳐졌다. 초입에서 야크의 거대한 두개골을 발견했을 때 마쑤이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찾았어요! 여기에요!”
코뿔새 탐험가는 지상 30m 높이의 야자나무 구멍에서 발견되었다. 키 높은 나무에서 코뿔새 둥지 구멍을 발견한 푼자르가 대나무 줄기로 기둥에 사다리를 하나씩 만들며 힘겹게 올라갔다. 그는 코뿔새가 침과 똥, 잔 나뭇가지와 깃털을 뭉쳐 만든 단단한 구멍을 긁어냈고, 구멍 일부를 막고 있던 어미새 부리를 힘차게 밀어냈다. 구멍이 뚫렸다. 푼자르는 구멍 안을 한참 내려다본 다음 우리를 향해 무어라 말했지만, 거리가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는 혼자 땅으로 내려왔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코뿔새가 되었습니다. 그의 몸은 헐벗은 채로 새처럼 작아져 있었어요. 제 깃털을 뽑아 둥지를 만든 어미새는 그를 다른 아기 새와 함께 깃털 속으로 숨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 아이처럼 울부짖었는데, 그건 두려움과 공포의 진동이었어요. 코뿔새 한 마리를 죽이는 것은 숲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이미 코뿔새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데리고 나올 수 없습니다.”
나는 그가 둥지에서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대사관에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억지로라도 그를 꺼내 자초지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바로 실패로 끝났다. 그를 둥지 구멍에서 빼내자마자 실신과 포효를 반복하다가 까무러치고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짐작할 수 없었다. 아비 코뿔새가 나무 위를 빙빙 돌며 한참 동안 우리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