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 아카이브 협회 투어를 신청했다. 순심이 냄새를 복원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13년간 함께한 무릎냥 순심이가 떠난 지 이미 6년이 흘렀지만,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너무 큰 나머지 나는 작은 채취라도 얻기를 바랐다. 모래 화장실에서 찾아낸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감자똥과 떠나보낼 때 챙긴 꼬리털 몇 가닥을 가져갔다. 화학자가 설립한 협회는 냄새 분자를 추출해 아카이브하고, 냄새를 창조하기도 한다고. 가장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냄새 묘지였다. 정부가 묫자리를 금지하면서 사람들은 고인의 냄새를 보관하기 시작했다.
무심한 표정의 직원이 투어 명단을 확인하고, 건물에 관해 간단히 소개했다. 총 세 개의 층에 아카이브 룸, 실험실, 체험실이 각각 들어서 있고, 야외 묘지는 2025년까지 대기자로 가득 차 있었다. 소행성 베누의 냄새를 채취하는 정부 프로젝트 후원금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베누는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가장 높은 소행성이다. 베누의 냄새 분자 구조를 변형해 지구로 향하는 방향을 영구히 바꾼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나는 계좌번호가 적힌 전단을 받자마자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베누가 지구와 충돌한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층 아카이브 룸 ; 냄새 발굴은 추가 비용 있음
새하얀 벽면으로 둘러싸인 아카이브 룸에 납작한 얇은 서랍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냄새가 층층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대체로 의뢰인이 챙겨온 물건에서 채취하고, 형태가 없으면 의뢰인의 뇌파를 접속해 기억 속 냄새 분자를 재구성하는 식이다.
“우리 부부는 죄책감을 보관하고 싶어요. 우리는 큰 잘못을 저질렀고, 잊힐 때마다 냄새를 맡으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지 모르죠.” 쌍둥이처럼 꼭 닮은 부부가 동시에 말했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울 텐데요!” 내가 말했다.
“때로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부부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순심이 냄새가 부부의 죄책감 아래 보관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50년 전 죽은 아들의 냄새를 찾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 한강 변에 천막 치고 살았어요. 비가 엄청 많이 내리던 날인데 댐 문이 열려 폭삭 쓸어갔어요. 항아리에 넣어둔 돈이고, 짐이고 다 쓸리고 애들이랑 겨우 목숨 하나 건졌는데 막내가 속병 나서 제 명에 못 살고 갔어요. 그래가지고는 하나도 없어. 신발 한 짝도 안 남았다니까.” 여자의 얼굴에 익숙한 절망이 비쳤다.
“냄새 아카이브 협회에서는 망자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뇌파에서 끌어 온 냄새 분자 재조합을 통해 살아생전 지녔던 고유한 냄새를 완벽하게 재현합니다.” 투어 가이드는 홍보 슬로건 문구로 대답을 대신했다.
2층 실험실 ; 햅틱 시스템 연구소
2층은 냄새를 접촉 기술에 도입하는 실험실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골동품 가게처럼 사슴 박제, 말린 꽃, 해진 이불, 낡은 마네킹, 유리구슬 같은 쓸모 없어진 오래된 재료들이 쌓여 있고, 연구복 입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열심히 쓰다듬고 있었다.
“우리는 기억과 냄새를 물체에 접합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더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아 만질 수 없는 특정 질감을 손끝의 감각으로 불러옵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아픈 아이의 휜 척추입니다.” 투어 가이드가 불투명한 유리 박스에 손을 넣어 휘저으며 말했다.
“아이의 옷과 사진, 의뢰인의 기억을 조합해 완벽히 일치된 물성의 질감을 재현했지요. 아무것도 아닌 알루미늄 패널처럼 보이지만, 1만 가지 이상의 촉감이 저장할 수 있습니다. 실재 옷이나 털 등 흡사한 재료를 접촉 재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연구원이 반짝거리는 금속 막대기를 만지작거리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작은 조각에 수많은 사람의 그리움이 저장되고 있었다.
난 오랫동안 순심이 궁둥이 촉감을 그리워했다. 옥수수수염처럼 힘없고 끊어지던 늙은 고양이의 고운 털. 종아리를 비비며 품 안으로 부드럽게 파고들던 순한 나의 아이. 다시 순심이를 만질 수 있다면 이 그리움은 줄어들까, 더욱 강렬해질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산 자의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만 너를 안아보고 쓰다듬어 볼 수 있다면…
3층 체험실 ; 냄새를 처방해드립니다
냄새를 경험할 방법 3가지가 있었다. 특수 분사 장치를 갖춘 룸 타입을 선택하면 유리로 된 방 안에서 밀도 있는 냄새 샤워를 받는다. 8인까지 신청할 수 있어 가족이나 단체에 적합하다. 체어형에서는 일등석처럼 푹 꺼진 의자에 평형으로 누워 냄새를 맡는다. 돔 형태의 유리 커버가 의자를 감싸므로 냄새 유실 없이 경험한다. 시각 자료를 유리창에 띄우는 화면 서비스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마지막 월 타입은 벽에 설치한 원석 오브제에 코를 직접 맞대고 냄새를 맡는 것이다. 냄새는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월 타입 방식의 만족도는 크지 않다.
“일종의 아로마 테라피같은 것이죠. 충분한 사전 상담을 통해 현재 가장 필요한 냄새를 처방해드립니다. 뇌파를 연결하면, 회백질에 저장되어 있던 냄새 기억 분자 추출이 가능하거든요. 여러 형태로 재조합해 실재 물질로 만들어집니다.” 체험실의 연구원이 공간을 안내하며 설명했다.
“그 냄새가 내게 필요한지 어떻게 알죠? 위험하진 않나요?”
나는 밀폐된 공간에서 화학 가스로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말했다. 혹 뇌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꽁꽁 숨긴 망각이 흘러나온다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고통의 상흔으로 미끄러질지 모른다. 필요한 기억이라도 끔찍할 수 있고, 끔찍한 기억이라도 치유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다시 꺼낼 필요 없는 기억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자체 검역 시스템을 통해 위험 가능성이 있는 냄새를 미리 차단합니다. 체험 중 뇌압과 심전도를 실시간 측정해 신체에 무리가 발생하는지 계속 모니터링하고요. 그보다 냄새를 맡으러 간 사람들이 자꾸 사라져서 문제입니다. 이미 경찰이 와서 조사했지만, 마땅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 같더군요. 체험실의 CCTV 설치가 금지이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어쩌면 냄새 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르죠.” 연구원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나는 현장에서 냄새 처방을 신청하고 두툼한 사전 문답지를 작성했다. 대부분 정신 건강에 관한 질문이었고, 마지막 장에 맺음말이 있었다.
냄새는 구원입니다
내가 현장 신청한 체험은 월 타입이었다. 만족도가 제일 떨어진다는 리뷰를 읽었지만, 비용이 가장 저렴했다. 나는 코끝을 벽에 바짝 갖다 대고 힘껏 숨을 들이켜며 냄새를 뽑아 올렸다. 냄새는 코선반을 따라 뇌를 통과해 동공으로 흘러들었다. 벽을 집어삼킬 듯 킁킁거리다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앞을 헤아릴 수 없었고, 귀가 뜨거워졌으며, 목구멍이 타들어 갔다.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넘실거리는 눈물을 받으며,
“할머니야? 할머니야?” 불러댔다. 하염없이.
중학교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출입문에서부터 잣죽의 진득한 곡물 냄새가 퍼져 나오곤 했다. 복도를 잠식한 냄새를 쫓아 현관에 신발을 벗어 던지고 식탁으로 바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잣을 손수 갈아 압력밥솥에 은근하게 끓여 식탁에 자주 올렸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
나는 지금 비좁고 가난한 집에 비해 유난히 크던 식탁에 앉아 있다. 할머니가 압력밥솥에서 연노랑 잣죽을 옥빛 그릇에 담고 있고, 나는 할머니를 바라본다. 작고 얇은 등. 마른 손목. 쪼그라든 어깨. 그릇을 가득 채운 잣죽이 식탁 위에 오르고, 나는 말없이 한 숟가락 가득 떠먹는다. 눈물이 흔들린다. 할머니가 나를 지극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왜 이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