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점의 산문시 딜리버리입니다. 매주 수요일 보내드려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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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점입니다.
일주일간 무탈하게 잘 지내셨나요? 탄생과 소생의 계절은 벅차오르고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강릉 산불로 마음이 무겁기도 한데요, 아무쪼록 평온한 안밖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주에는 산문시가 아닌 번외편으로 음악 리스트를 전해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여행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하여 고른 저의 사적 취향 리스트 8곡입니다. 부제를 달자면 ‘의아할 때 듣는 음악’ 혹은 ‘Ready to Respond’ 입니다. 음악 마니아는 아니지만, 종종 리스트를 공유하려 해요. 좋아하는 음악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과 닮아있으니까요.
본문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로 연결됩니다. (다른 플랫폼은 사용법을 모른…)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듣고, 봄처럼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상태가 되어 볼까요?
2023년 4월 12일 금요일 우점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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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보이지 않는 여행들> OST vol.1
_ 의아할 때 듣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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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이치 사카모토 坂本龙一+ [async] - <fullmoon>
우연히 그의 앨범 [async]를 들었을 때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전 음반과 느낌이 무척 달랐기 때문이죠. 암 진단 후 처음으로 발매한 7년 만의 정규 음반이어서일까요? 음반 제목인 ‘async’는 asynchronous communication의 약어로 ‘비동기 통신’, 일정한 속도로 보내지 않는 데이터 전송 방법이에요. 이름처럼 음반 전반에 리듬보다는 악기의 진동이나 두드림소리, 비나 소음처럼 주변 자연의 소리들이 비정형으로 등장해요. 그가 평소 관심이 있던 우주의식과 양자이론이 연결되는 것 같고요. 그의 세계관과 평생의 음악적 탐구가 압축되어 있는 음악이라 생각들어요-
fullmoon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언어의 낭송이 모아지고 흩어지고 겹쳐집니다. 이탈리아 영화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영화 <마지막 사랑>의 처음과 엔딩시퀀스에서 시인 폴 보울스의 시 낭송이 흐르는데, 당시 음악을 맡은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 시에 큰 감응을 받았다고 해요. 세계 여러 예술가 친구들이 자국의 언어로 낭송에 참여했고, 이탈리아어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낭송합니다. 그가 암 진단을 받은 후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한 음반이라는 점에서 시의 내용이 의미 있게 다가오네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 모든 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당신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다섯 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_ 폴 보울스, 만월<Full Moon>
숲을 보존하는 환경 단체 모어 트리스More Trees의 활동가답게 그는 쉴 때 뒷마당의 나무를 바라보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도 멋진 자연을 듣고 그 속에서 평온하게 쉬고 있기를 바래요. 언젠간 만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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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코 파스토리우스 [Jaco Pastorius] - Kuru / Speak Like a Child
너무 귀엽고 섹시해요. 베이스기타라는 악기가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니, 모두 자코 파스토리우스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본명이 ‘존 프랜시스 앤소니 파스토리우스 3세 John Francis Anthony Pastorius III.’ 라니 정말, 이름도 왕족처럼 화려하죠. 실은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밴드부에도 기웃거렸었는데요(믿기 어려우시겠지만요), 바로 자코 파스토리우스 때문에 베이스기타를 치고 싶었답니다. 뮤지컬 무대 오프닝처럼 장대하게 문을 여는 이 곡은 러닝타임만 무려 7분에 달해요. 그러나 베이스기타의 매혹적인 비트를 따라가다보면 시간이 사라집니다. 재즈와 하드록, 오페라, 아프리칸 비트를 아우르는 통합된 연주의 향연이 7분 내내 이어지는데요, 정말 라이브 공연으로 보지 못한 세대인 것이 억울해요. 1951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연주와 독보적 카리스마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지만, 술과 마약으로 늘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그것이 원인이 되어 죽음으로 이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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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드레데우스 Madredeus [O Espírito da Paz] - <O Mar>
빔 벤더스 영화 <리스본 스토리>에는 신비롭고 미묘한 파두 밴드가 등장하는데요, 주인공 필립 빈터스가 밴드의 아름다운 가수, 테레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죠. 실제로 포루투갈 전통민요 파두 밴드인 마드레데우스에요. 당시 싱어이던 테레자 살게이루는 국민 가수라 불릴 정도로 포루투갈을 대표하는 가수이고요. 이 영화를 통해 파두라는 음악을 알게 되었고, 테레자의 아름다운 소리에 매료되었어요. 동시에 빔 벤더스가 너무 얄미웠어요. 남자 주인공이 너무 못생기고 음흉했거든요. ㅋ
영화에 등장했던 노래 alfama 가사를 한글 발음으로 적어 혼자 계속 연습하곤 했는데, 생각보다 언어가 어려워요. 그래도 한 번 배우고 싶은 언어가 포루투갈어에요. 보사노바 부르고 싶어서 ㅋㅋ 마드레데우스의 세 번째 음반에 수록된 오 마르O Mar를 들으며 노래가 시구나, 소리가 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바다를 의미하는 ‘오 마르’ 가사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간이 있어요. 제겐 꼭 ‘엄마’라고 부르는 것 같이 들렸어요. 마치 본래 우리가 태어난 근원을 향한 부름처럼. 엄마- 엄마-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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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올라퍼 아르날즈 Ólafur Arnalds [some kind of peace] - <Undone>
저는 시처럼 읊조리는 가사나 낭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Undone도 포크 뮤지션 Lhasa de Sela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조산의 이유가 아이를 빨리 낳으려는 엄마와, 뱃속에 더 안전하게 있고 싶어하는 아이의 긴장된 갈등에서 발생한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어요. 아, 아이는 엄마 뱃속에 더 있고 싶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목소리는 그 순간을 만나는 태아의 마음이에요. 탄생을 앞두고 아기는 외부의 엄청난 소음과 진동으로 인해 곧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이내 그것이 진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죠. 낭독과 함께 반복되는 멜로디는 희망적 빛을 느끼게 해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다가와 죽음을 생각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흘려보냈을 때 더 나은 참나가 되는 것처럼. 그래서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 같아요. 삶을 잘 살기 위해 죽음을 자주 생각한답니다. 정말 아침마다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올라퍼 아르날즈의 이 음반의 모든 수록곡을 사랑하는데, Zero의 뮤직비디오도 함께 나누고 싶어요. 밤의 숲에서 춤을 추는 두 움직임이 너무 아름답거든요. 마치 홀로 남은 존재가 새로운 존재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것 같죠. 춤을 추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아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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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로페이 Laufey [Everything I Know About Love] - <Slow Down>
지난 겨울엔 정말 몇 달간 로페이 음악만 들었어요. 아이슬란드 싱어송라이터인 그녀가 느린 재즈를 노래할 땐 ’아무도 그녀를 몰랐으면‘ ’아, 나만 듣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저 같은 사람 많았나봐요,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올라온 노래 피드가 전세계에 순식간에 퍼졌거든요. 기분이 별로이거나, 긍정 에너지가 필요할 땐 언제나 로페이 음악을 재생하고 sns를 구경합니다. 아이슬란드 특유의 이국적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의 라이프스타일도 기분을 좋게 하거든요. 클래식 음악가인 중국 태생의 어머니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 같아요. 첼로를 공부한 그녀의 맑은 저음의 재지한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싱그러워집니다. Slow Down은 너무 빨리 가는 시간에 관한 가사인데, 공감을 하기에는 그녀 나이가 겨우 23세... 저야말로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시간아, 천천히 가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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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Sandrayati, Damien Rice & JFDR <Song for Berta>
온두라스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Berta Cáceres)의 50번 째 생일을 축하하고 그녀의 삶을 기리기위한 곡이에요. 그녀는 온두라스 자연과 원주민 땅의 파괴에 대항해 오랜 투쟁을 하다가 2016년 무장침입자에 의해 암살되었어요. 심지어 살해 당시 다른 활동가들과 집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같은 달 다른 활동가 두 명이 살해되는 등 온두라스는 환경 운동가들의 가장 위험한 나라가 되었어요. 암살의 배후에는 댐 수력발전 회사가 있고요.
그녀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데미언 라이스, 인도네시아 뮤지션 산드라야티, 그리고 아이슬랜드 뮤지션 JFDR이 함께 작업한 곡이에요. 오두막에서 여러 뮤지션 친구들과 함께 노래한 뮤직 비디오를 보면 저 뒤에 올라퍼 아스날즈도 있네요. 이 음악을 들으며 애도하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어요. 충분히 기리고 애도하고 돌봐야 억울한 마음이 줄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기억되고 입에 오르내릴수록 힘을 갖는 것처럼요. 그녀의 숨은 멈췄지만 그의 영혼은 여러 상태로, 형태로, 이 세상에 또다른 움직임을 새롭고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있다고 느껴요. 여러분 마음에도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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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요한 요한손 Jóhann Jóhannsson [Arrivial] soundtrack- <Heptapod B>
요한 요한손의 음악을 뭘로 이야기하면 좋을까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밤새 와인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수다 떨고 싶어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만 가지 있지만, 저를 시공간 초월한 세계로 순식간 데리고 간다는 점이 핵심인 것 같아요.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Arrival)>의 수록곡인 ’Heptapod B‘ 역시 시간의 개념을 초월한 먼 곳의 언어를 듣는 것 같은 상상을 줍니다. 빛의 언어가 있다면, 그 소리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감각이 있다면, 바로 이런 소리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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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프린스 앤 더 레볼루션 Prince & Revolution [Purple Rain] _ <Purple Rain>
라디오 DJ가 말했습니다. “‘한때 프린스라고 불리던 아티스트’가 부릅니다. 퍼플 레인” 1993년 프린스가 스스로 ‘당신들이 알던 프린스는 이제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를 틀 때, TAFK AP(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퍼플 레인은 1984년에 개봉한 프린스의 자전적 영화 <퍼플 레인>의 ost 곡으로 크게 히트했죠. 끈적한 울부짖음의 기타선 율을 들을 때마다, 저의 무심한 폐가 리드미컬하게 환희로 돌아서는 느낌을 받아요. 더욱이 그가 ‘퍼플 레인~ 퍼플 레인~’ 반복해 외칠 때에는 그가 자줏빛 비를 맞으며 반짝거리는 자수정이 박힌 전자기타를 튕기는 상상을 합니다. 반드시 조명은 역광이어야 하고, 그는 너무 섹시하죠. 하드록, 발라드, 리듬앤블루스, 가스펠까지 아우르는 엔딩 연주는 정말 별무리가 쏟아지는 풍경같습니다. 저는 그가 한때 프린스로 불리던 사람이 아닌, 진짜 프린스라는 것을 이 노래를 듣고 알게 되었어요. 왕자다 진짜. 류이치 사카모토와 마찬가지로 그가 동시대에 더는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슬픕니다. 왜 우리가 사랑한 이들은 과거형이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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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에서 전 곡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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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러 르귄의 말을 인용하자면, 달리아를 심었는데 가지가 튀어나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쓰기 위해 연재를 결심했어요. 단순히 이거에요. 우리는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침묵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거요. 저의 글이 조금이라도 좋았다면, 그것은 당신 안에 있던 무언가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서로 주의 깊게, 다정하게, 마음을 나누고 있음을 느껴요. 이 세상에 별처럼 무수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여행들을 위하여.
더불어 새로운 독자 여러분에게,
하단 링크 아이콘을 통해 그동안 발행한 글 전체를 읽을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이어요~
_ 덧붙여, 필명인 '우점'은 저의 할머니 이름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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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Jeom 우점
주간 산문시 <보이지 않는 여행들> 딜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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