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알래스카 북극권은 사방이 설원이었다. 호방한 웃음의 부시파일럿 돈 로스는 7월에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는 인사를 던지고는 함께 타고 온 헬기에 올라 먼 점이 되었다. 그가 마치 단 한 순간도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은 것처럼 떠났기 때문에 황막한 얼음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노르웨이 출신의 닐라스 투올리아가 동행하지 않았다면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미족 후예인 그는 노르웨이에서도 극지에 속하는 함메르페스트에서 온 작가였다. 작가들이란 대부분 호기심 넘치지만, 떠먹여 주는 정보로 모든 것을 안다고 떠드는 경향이 있기때문에 대체로 신뢰하지 않는다. 나역시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고. 허풍이 많은 작가를 종종 보았기에 내가 그의 안위를 챙겨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노르웨이인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구입한 이유다. 기차역에서 파는 얇은 여행책 중 하나였는데, 그 책에 따르면 노르웨이인은 타인을 잘 신뢰하지 않고 소통에 문제가 있으며 반대로 행동하는 기질이 있다. 툰드라 그리즐리에게 먹힐 뻔했던 지난해를 떠올리면, 어쨌거나 혼자보다 둘이 낫다.
우리는 카리부의 봄철 이동을 목격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카리부는 봄과 여름 사이 천 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를 이동해 북극으로 향한다. 베이스캠프 남쪽에는 로키산맥 최북단에 걸친 브룩스산맥이, 북쪽에는 끝없는 얼음의 땅이 북극까지 이어져 있다. 한겨울에는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지만, 초여름의 건조한 찬바람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기후 위기 영향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이곳에 석유 개발을 허용하면서 수만 년 이어온 카리부 행렬이 위협받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석유 시추를 중단시켰지만, 올해 선거를 앞두고 다시 프로젝트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우리는 카리부 행렬이 아닌 길 잃은 카리부 무리를 만날지도 모른다. 카리부가 이끼로 배를 채우고 물을 마시는 포쿠파인 계곡 상류에 텐트를 치고 광활한 툰드라의 바람을 좇아 언 땅을 매일 가로질렀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서로의 시야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에스키모 마을은 브룩스산맥을 넘어 2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하루는 들판에서 그리즐리의 똥을 발견했다. 끝 없는 설원에서 곰은 쉽게 눈에 띄는 편이지만, 한치의 긴장도 놓칠 수 없었다. 닐라스는 며칠 전 검은 늑대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툰드라 바다에 떨어진 소심한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난 뒤통수에 귀가 달린 사람처럼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야생동물 소리를 알아차리는 데 하루 대부분을 보냈고, 닐라스는 종종 팔뚝만 한 물고기를 잡아 왔다. 난 버너에 물을 올려 근사한 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노르웨이인과 잘 지내려면, 커피 한 잔을 내어주고 대화를 시도하라는 조언이 책에 쓰여있었다.
닐라스가 먼저 말했다.
“우리가 자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자연의 일부잖아요. 이미 자연 아닌가요?”
“그건 대단한 착각이에요. 인간이란 존재할수록 자연을 해칠 뿐이죠. 자연은 그들만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건 모르겠고, 당신이나 나나 그들을 기록하러 온 거잖습니까? 우리는 카리부를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고요. 심지어 난 내 똥도 눈에 띄지 않도록 땅속 깊게 파묻었는걸요!”
“우리는 그저 그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 기이하고 오묘하며 꽤 쓸모 있는 노르웨이인에 관해서는 언젠가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닐라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엄청난 광야가 우리를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눈보라와 배고픔은 반복되었고, 툰드라 초원에도 꽃은 피어나기 시작했다. 블리자드가 심하던 새벽 날, 발굽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카메라를 집어 들고 미친 사람처럼 눈보라를 거슬러 뛰어나갔다. 눈인지, 얼음인지 알 수 없는 반짝이는 덩어리가 얼굴을 뜨겁게 때려 눈을 뜰 수조차 없던, 한 발자욱도 뗄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온몸을 사선으로 휘감던, 늑대와 곰과 사향소가 한자리에 뒤섞여 강풍을 전면으로 받고 있던, 그 찬란한 검은 수평선의 생동하는 발굽 소리를 나는 귀 기울이며 서 있었다. 눈보라에서 늑대와 마주친 건 그 찰나였다. 닐라스가 공중으로 총을 쏘면서 풍경은 순식간에 부서졌지만.
“늑대는 나를 보고 있었어요.”
“당신은 운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곳에 혼자 온 것도 정상은 아니지만, 눈보라 속을 가는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나는 갈기갈기 찢긴 당신의 사체를 목격하고 싶진 않습니다. 제발!”
“늑대는 나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야생동물과 교감한다는 말을 하려거든 당장 그만둬요. 당신 같은 인간들 때문에 동물을 잡아 평생 가두는 거라고! 그들은 자기 존재를 위해 숨 쉴 뿐입니다.”
6월이 되었을 때 나는 돈 로스의 헬기를 다시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평선 끝에서 카리부 행렬을 조금 목격하였지만, 수만 마리가 함께 이동하는 장면은 계속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툰드라는 너무나 광활하여, 그들은 이미 1,400킬로미터의 여행을 마치고 북극에 이르렀을지도 몰랐다. 그늘 하나 없는 툰드라에서 이글거리는 태양 빛을 종일 맞으며 발굽 소리를 기다리는 날이 이어졌다. 닐라스는 종종 사라졌는데, 내가 어딘가를 향해 전력 질주하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나를 뒤따라 달려오곤 했다. 노르웨이인은 경쟁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달리기에 동참한다. 이것 역시 <노르웨이인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방법> 책에서 얻은 지혜다.
7월의 평범한 저녁, 옅은 분홍과 연둣빛으로 물든 하늘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구름을 휘젓던 백야의 어떤 순간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심장의 박동인지, 땅의 움직임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카리부 떼였다. 거대한 카리부 떼가 검은 구름을 몰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몰아쳤다. 카리부 새끼들은 행렬 안쪽에 모여 있었고, 육중한 왕관을 쓴 수컷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망원 렌즈를 들고 가까이 달려갔지만 무리는 점점 멀어졌다. 수풀에 가려진 그들은 벌 떼처럼 한 덩어리처럼 너울거렸다. 나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관두고 카리부 수만 마리가 만드는 파도의 움직임을 강렬하게 응시했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한 번 들어 온 숨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 발끝까지 온 신경을 타고 빠르게 미끄러지다 막히고 뚫리고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육중한 말발굽 모양의 뿔을 세운 카리부 한 마리가 눈앞에 서 있었다. 카리부는 고개를 날렵하게 돌려 나를 바라보고 황금빛 눈을 껌뻑거렸다. 5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이내 앞다리를 박차며 땅을 흔들고, 공기 소리를 세차게 뿜어댔다.
“흐르르그름프-흐르르그름프-흐르르그름프-”
카리부 머리에 달려있던 거대한 뿔이 후드득 떨어졌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서로가 그곳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저 멀리 닐라스가 검은 행렬을 바라보며 춤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책에는 노르웨이인의 춤에 관한 설명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노르웨이인이 춤을 춘다면 그것은 분명 엄청난 사건일 것이다.
우리 모두 거기에 있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