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스트리트 코너에 있는 작은 술집은 평범한 재즈 바였다. 그곳에 사람들이 모이는 건 순전히 흡연이 허용되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비흡연자임에도 그 바에 줄기차게 갔다. 바로 그 옆에 코인세탁소가 있고, 대체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평균 이상으로 잘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멍청하고 제멋대로인데다가 바텐더에게 팁을 줄 때마다 눈동자를 굴리며 시간을 끌었다. 근처에 이슬람 사원이 있어 터키 이주민들이 많이 오갔고, 중앙역과 가까워 다국적 방랑자들이 모였다 흩어짐을 반복했다. 나는 늘 아이라인과 눈썹을 숯처럼 짙게 그리고 이곳에 나타났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특히 바텐더 파비안은 눈썹을 그리고 오지 않는 나를 전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지만, 달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사람을 조심하세요. 한 번도 웃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
에서 1.5미터가량 떨어진 자리에 앉은 패트릭이 턱으로 파비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웃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은 있어요. 모두 각자의 처지가 있을 뿐이라고요.”
나는 파비안이 대체 왜 그런 의심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대체로 과묵하게 침묵 속에 머물곤 할 뿐,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 없기 때문이다. 종종 사적인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그건 바텐더 업무의 일부 아닌가.
“그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야생과 교류한다고 합니다. 아무도 실체를 본적 없지만, 난 알아요. 그에게서 곰의 똥냄새가 지독합니다. 나는 증거 수집을 위해 이곳에 온다오. 언젠가 분명 그 현장을 직접 덮칠 겁니다. 두고 보라고.”
패트릭은 내 귀쪽으로 자세를 숙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패트릭은 구시가지 테아터 스트리트 13번지에서 구두 수선공으로 일한다. 오후 3시가 되면,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은 이곳으로 곧장 달려와 창문을 정중하게 두드린다. 그때마다 패트릭은 직접 만든 수제 사탕을 한줌 쥐어주므로 그는 이 마을에서 평판이 좋은 편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묵직한 밀도가 있었지만, 흔들리는 눈빛만큼은 의심을 피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이 무엇이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믿지 않았고, 패트릭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잡으려는 듯 슈납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내가 본 것을 아무도 믿지 못할 거예요! 제가 곰을 봤습니다. 검고 컸어요!”
막 술집의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 온 토마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크게 말을 쏟아냈다.
“정말이에요? 이 지역에서 곰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만 직접 봤다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어땠나요?”
나는 제일 먼저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토마스를 향해 한 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곰은 유령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어요. 심지어 내가 곰의 털을 뽑는 순간에도 말이죠. 곰의 털은 칠흑처럼 어둡고 거칠었어요. 곰의 털로 만든 붓으로 글을 쓰면 그 글은 스스로 힘을 지니게 됩니다.”
토마스가 진지하게 말했다. 토마스는 고대의 시조새인 크로나비스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다. 크로나비스는 머리는 공룡, 몸은 시조새 형태로 몸이 거대해 닭처럼 멀리 날지 못한다. 나는 종종 크로나비스의 주둥이를 실로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날카로운 발톱을 바싹 자르는 토마스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토마스는 집착적인 면이 있지만,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을 가장 먼저 알리기때문에 종종 나는 그를 기다린다. 아니, 그의 말을 기다린다.
“어떤 힘이요?”
내가 물었다.
“침묵을 되찾는 힘이요.”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그에게서 축축한 숲 비린내가 났다.
나도 그런 적 있다. 나를 비롯해 아무도 믿지 못할, 아주 시적인 순간 말이다. 그것은 고도 1,200미터 지점에 있는 작은 오두막 산장에서다. 야생화와 너도밤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검은 목재 산장 주변엔 온갖 산새와 풀벌레가 목청을 높이며 고요를 가득 채웠다. 연두색 밀밭 위로 핑크색과 보랏빛 황혼이 내려앉고, 구름이 자작하게 흩어질 때 숲속에서 예기치 못한 움직임을 느꼈다. 키가 1미터는 훌쩍 넘은 사슴이었다. 갈색과 흰색이 뒤섞인 작고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며 바둑알처럼 새카만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들여다보고, 서로에게 위안을 주었으며, 서로를 안전하게 보내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다.
“임신을 계획 중이라면 최소 6개월 전부터 마시지 않는 것이...”
파비안이 마른 수건으로 위스키 잔을 세밀하게 닦으며 내게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합니다. 당신이 의사도 아니고요.”
나는 최대한 불편한 얼굴을 숨기며 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그저…”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잔을 계속해서 닦았다.
“당신이 짐작한다고 해서 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전에 타인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죠.”
나는 파비안에게 조금은 훈계하는 말투로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보통의 기쁨을 누리길 바랄 뿐입니다. 당신은 자격이 있으니까요. 평범한 삶 속에서 투명한 기쁨을 갖기를 바라요.”
파비안이 말했다. 나는 그가 진심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기에 조금 미안해졌다. 아이를 갖는 것이 보통의 기쁨이라면, 나는 그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는 평범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인가.
술집의 일상은 여느 날처럼 무심하게 흘렀다. 노르웨이에서 고래 콧물을 낚는 사람이 다녀갔고, 광물을 수집하는 괴짜가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다. 매달 두 번째 화요일마다 문을 닫았고, 지난주에는 스탠딩 코미디 대회가 열려 미디어에 장소가 소개되었다.
52일이 지난 초겨울 무렵, 길에서 만난 토마스에게서 파비안이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몬테 제네로소로 중산간에 있는 곰 서식지인데, 6만 년 전 그곳에 수백 마리의 곰이 겨울잠을 잤다고 했다. 현재 곰의 무리는 사라졌고, 이탈리아와 스위스 경계선에서 등산객이 곰의 습격을 받았다는 뉴스가 가끔 들리던 곳이다. 그곳은 소규모 투어가 열릴만큼 지역의 숨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파비안은 왜 동굴로 들어가 스스로 곰이 되기로 결정한 것일까. 나는 왜 그의 침묵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귀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하다. 나는 파비안이 만들어 준 칵테일을 생각한다. 술잔 가득 넣어 준 럼을. 보통의 기쁨을. 침묵과 침묵 사이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