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에 곰팡이가 솟아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복숭아를 알아차린 균사는 표면에 닿은 복숭아 엉덩이부터 신속하게 스며들었다. 먼저 아기새 깃털처럼 작은 솜털로 주변을 에워쌌고, 선명하게 검은 몸이 바늘처럼 튀어올랐다. 복숭아는 균사에게 잡아 먹히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여러 몸의 형태로 복숭아를 정복하는 균사의 움직임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랫마을에 사는 페르난도를 부를까 고민했다. 그는 식물의 소리를 채집하는 데에 열정적인 음악가다. 허리춤에 주렁주렁 케이블을 달고 다니면서 버섯이나 나뭇잎, 나무나 흙 속에 흐르는 소리를 듣고, 그것의 주파수를 조합한다. 반복하는 소리의 패턴에 가깝기 때문에 음악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나는 페르난도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들에게 저작권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의 소리에 빚지고 있는 셈이니까. 내가 집안의 모든 균사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귓등을 세게 흔들다가 베개에 파고들어 잠이 들었는데, 유령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균사가 복숭아 하나를 모두 집어삼켰을 때 나는 페르난도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간혹 이런 분이 찾아옵니다. 앞자리에 앉은 동료의 목소리만 너무 크게 들려 괴롭다든지, 창 너머 멀리 지저귀는 멧새의 소리가 계속 귓속에 머문다든지, 정원에서 메뚜기가 점프하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뇌를 울린다든지.”
L박사가 말했다. 돌발성 난청 질환 명의로 유명한 그는 눈을 마주치치 않고 말했기 때문에 신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안경 코받침대에서 균사가 자라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원인이 뭔가요?”
페르난도가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이런 증상이 찾아오지 않아서 무척 시무룩해 보였다.
“원인은 모릅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이 소리를 불렀다’라고 말합니다. 그 소리가 들린 것은 특정 주파수에 반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L박사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균사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움직임은 신속하고 빨랐다.
“제 마음이 균사를 불렀다는 말인가요? 저는 이렇게 괴로운데요? 치료 방법이 있어요? 나을 수 있는 건가요?”
내가 귓등을 세게 양쪽으로 흔들며 계속 말했다.
“모든 흐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 연구 중이지만, 실험 단계의 치료법이 있긴 합니다. 총 4개의 소리 테라피룸을 통과하면서 소리를 듣는 몸의 패턴을 재정렬하는 것이죠. 그 경험 속에서 마음의 주파수와 일치하는 소리를 깨닫게 됩니다. 해보겠어요?”
L박사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그리고 박사님 안경을 제대로 세척하는 것이 좋겠어요. 균사에 잡아 먹힐 수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견고하게 끄덕이며 덧붙였다.
첫 번째 방
모든 방은 암흑에 가까웠으므로 나는 더 청각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그것은 뇌로 바로 전해지는 소리가 아니라 먼 곳에서 발끝으로 이어진 진동이었으며, 미세한 전류가 몸의 혈관을 타고 지나가는 것처럼 저릿하게 길을 냈다. 지구상의 가장 낮은 음이 바람의 흐름을 타고 몸을 강렬하게 휘저었다. 노동과 가난, 소멸과 상실이고, 죽음에 가까운 소리이자 다시 박차고 오르는 소리다. 망자를 에워싼 흐느낌이 들리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의 지껄임이 이어지고, 통곡과 비명으로 끝났다. 그 모든 것이 멈췄을 땐 뼈가 녹아드는 것처럼 사무치는 슬픔이 밀려왔다. 나는 통곡했다. 내 머리칼을 뜯어 허공에 던졌다.
두 번째 방
기진맥진한 몸으로 진입한 두 번째 방은 온통 새하얀색이었다. 간혹 물총새처럼 ‘슉~ 슉~’ 하며 하얀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고, 나지막한 계곡을 따라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를 쓰다듬고, 아이가 까르륵거리며 엄마를 부르고, 강아지가 낑낑대며 엄마 젖을 무는 소리가 뒤섞였다. 소리들은 옅은 그림자를 만들며 리드미컬하게 마음을 휘감고, 장기를 만지고, 세포막을 안았다. 가슴 깊숙이 묵직하게 박힌 슬픔이 뚫리고 녹고 사라졌다. 이토록 가볍고 말간 소리가 내 깊은 우물 속 고통을 치유했다. 난 주저앉아 웃었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웃음소리였다.
세 번째 방
둥근 원형으로 앉은 사람들은 각자 작은 악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고요한 침묵 속에 한참을 그대로 존재하다가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어가고 나가고, 다시 어떤 소리가 들어가고 나가고, 동시에 다른 소리가 조율되고 튕겨 나갔다. 어떤 순간 모든 악기의 소리가 일정한 리듬과 질서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었을 때, 공간은 경계가 사라지고 전체가 활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었다. 마음과 마음 사이의 주파수가 온전한 하나가 된 지극한 순간. 그 순간은 소멸하고 다시 소리가 들어가고 나갔다. 사람들의 표정은 내내 평온했으며, 나는 배가 불렀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네 번째 방
견고한 숨소리가 공간 전체에 가득하다. 그 안에는 온 세계와 조상이 있었다. 대왕고래가 듣는 크릴새우의 물결 소리, 사시나무의 균류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소리, 충수에서 자란 마이크로바이옴이 산소 방울을 터뜨리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빠른 진드기의 회전 소리, 위기에 처한 개미가 공동체와 통신하는 소리, 해파리가 밤바다에서 춤추는 소리, 문어가 바위를 탐색하는 촉수 소리… 생명력 가득한 변화와 역동의 숨을 인지하고 함께 호흡하고 또 떠나보냈다. 소리라는 감각, 관념이 모두 사라진 상태. 그것은 소리를 초월한 세계였다.
나는 소리에서 해방되었다. 혹은 그것은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