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는 여름날, 나는 오랫동안 활동해 온 광물 여행가 모임에 참여했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이었다. 모임 이름은 ‘라피스라줄리’. 하늘과 청색의 어원이 깃든 광물 이름으로, 고대인들은 이 돌을 몸에 지니면 악의 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광물 여행가 네 명이 모였고, 모임의 수장인 알렉스는 먼저 라피스라줄리를 깊고 견고하게 만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라피스라줄리의 짙고 푸른 모서리를 쓰다듬고 돌 가까이 다가가 귀 기울였다. 돌이 있던 공간으로 이동해 무수한 시간의 물결을 듣고, 원자의 성실한 움직임을 감각했다. 라피스라줄리로 만든 심장을 미라의 가슴에 넣었던 것처럼, 마치 하나의 거룩한 의식 같았다. 리추얼이 끝나자 원형으로 둘러앉아 진지하게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이야기 속 돌이 내 이름이 된다.
오늘 나는 쿰마키비다.
“안녕하세요, 저는 쿰마키비입니다. 나는 대지에 잠겨 있는 거대한 노두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기묘한 돌입니다. 길이가 7미터, 무게만 5톤에 이르지만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1만 년 넘는 시간 동안 인간들은 내게 끊임없이 도전해 왔어요. 나를 넘어뜨리는 자에게 큰 포상을 내리겠다고 하고, 아랫마을에서는 나의 심장을 뽑아오는 자에게 왕권을 누리게끔 해준다고 했죠. 사람들은 내가 위태롭게 서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힘을 합치면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땅, 하늘과 완벽한 무게로 맞닿아 있거든요. 사람들의 욕망으로 많은 머저리가 죽음을 맞이했고, 그때부터 인간들은 나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미족들은 북쪽 거인족이 나를 바위에 균형 있게 세움으로써 지진을 멈추게 했다고 믿었지만, 나도 나의 기원을 기억하지 못해요. 분명한 건 자연히 그러하였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나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굴러떨어질 거예요. 아무도 고통받지 않길 바라죠. 아마도 그날이 가까이 온 것 같네요.”
“나는 돌알을 낳는 바위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향해 엄마라고 부르고, 신이시여 외치며 통곡합니다. 나는 본래 별 볼 일 없는 흔한 바위 절벽으로 이름이 없었어요. 나는 길이 20미터, 높이 6미터 크기의 작고 평범한 절벽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내가 돌을 낳는 것을 알아차리면서부터 나는 이른바 ‘알을 낳는 바위’로 불렸습니다. 나쁘진 않았어요. 내게 이름이 생긴 다음부터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수시로 찾아와 나를 쓰다듬고 말을 건넸으니까요. 내 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둥그런 암석이 나있는데, 돌알은 30년에 한 번씩 절벽에서 떨어집니다. 지름 20~40센티미터로 작지 않아요. 한 번은 272킬로그램에 달하는 큰 돌을 낳았는데, 돌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던 사람에게 떨어져 그만 그가 즉사하고 말았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돌 하나에 수많은 비밀과 염원을 심었어요. 비밀은 절벽 깊숙이 뿌리내리고 내 몸 전체에 견고하게 박혀 그대로 고유한 문양이 되었죠. 나이테가 생긴 돌의 탄생을 사람들은 기다렸습니다. 무려 30년을! 30년이 지나 돌알이 절벽 밖으로 태어날 때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노래를 부르며 본인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고대하며 감격했습니다. 내 알은 여러 동네로 퍼져 신이 되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나는 돌이 아닙니다. 스스로 돌이 되기로 결정한 주체적 생명체죠. 나는 수심 3000미터의 칠흑 같은 심해에 삽니다. 그냥 심해가 아니에요. 나는 심해의 뜨거운 숨구멍 주변에 삽니다. 지구의 가장 중심에서 뻗어 나온 숨길에서 100도에 가까운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그곳이 나의 집입니다. 숨구멍에서는 망간, 구리, 코발트 등의 금속 물질이 솟구칩니다. 나는 물속에 쌓인 이 광물들로 갑옷을 만들었습니다. 생선비늘처럼 촘촘하게 겹겹이 몸을 둘렀죠. 내 몸의 반은 견고한 돌이고, 반은 본래 모습인 고동입니다. 인간들은 나를 비늘발고둥이라고 부르더군요. 나는 돌의 크기를 키울 수도 있고, 비늘 형태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나는 오래 평온했습니다. 인간들이 심해 카메라로 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무척 흥분해 아주 무례한 태도로 나를 한참 탐색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도망갔지만, 카메라 렌즈는 나의 구석구석을 촬영했어요. 내 몸에 붙은 광물이 큰 돈이 된다나요. 특히 뜨거운 숨구멍에 쌓인 망간 단괴나 심해 표면의 광물은 전 세계 인간들이 노리는 것 중 하나입니다. 나는 열수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채광이 두렵습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하와이 화산의 여신, 펠레의 머리카락입니다. 그러니까 내 몸은 본래 화산이고, 황금빛 가는 머리카락이 몸 이곳저곳 자라나 있습니다. 내가 용암이 되어 폭발할 때 머리카락처럼 얇은 가닥으로 그대로 굳어 화산 유리가 되었죠. 인간들은 종종 나를 해초로 착각해 손으로 덥석 잡다가 다치곤 합니다. 나는 얇고 뾰족하며, 때때로 잘 부서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하다가는 피부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가끔 내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안테나나 전신주처럼 높은 곳에 있는 까닭은 바람이 나를 실어 나르기 때문입니다. 햇빛이 비치면 인간의 금발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합니다. 나는 바람에 날려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다른 돌들처럼 땅에 뿌리 내리고 싶습니다. 나는 돌이지만, 한 번도 돌이 된 적 없고, 영원한 돌이 되고 싶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