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탐사를 떠난 지 사흘이 흘렀다. 맥없는 시간이 지날수록 ‘we live in an ocean’이라고 쓰인 푸른색 보트에는 각기 다른 말을 품은 눈빛이 굴러다녔다. 탐사 가이드에게 불만을 지닌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고요하게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배에는 고래를 만나는 데 평생을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목적이 희미한 여행자였다. 그저 이 광활한 바다에 거대한 생명이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 별무리같은 전율이 혈관을 타고 미끄러졌다.
먹구름 사이 날 선 햇살이 떨어지는 자리에 검은 새들이 모여들었다. 고래…다! 선장은 신속하게 모터를 끄고 보트 난간에 올라 망원경으로 먼 곳을 한참 응시했다. 선장은 새들이 모인 방향으로 팔꿈치를 힘차게 돌리며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보트에 있는 사람 모두 마치 말을 잃어버린 것처럼 몸을 난간에 밀착하고 일제히 침묵했다. 5초.. 10초… 15초… 깊고 무수한 침묵이 흐르고 곧이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떠다녔다. 고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초에 고래가 없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고래가 여기 있다. ‘
보트는 뱃머리를 바꾸며 엔진을 여러 번 멈췄지만, 먹구름만 좇았다. 빗줄기가 거세지고, 너울이 제법 심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몇몇은 마음을 내려놓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고래가 부끄러운가 봅니다.” 선장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보트에는 나처럼 목적 없는 여행자를 비롯해 환경운동가, 진화생물학자, 남극 연구가, 프리다이버 등 다양한 직업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육지로 향하는 바닷길에서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프리다이버 : 프리다이버들을 이끌고 카이코우라 해저 협곡에 갔을 때였어요. 때마침 고래 산란기였거든요. 다이버들은 고래 입 안에 갇히거나 꼬리에 받혀 공중 부양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나는 고래 목구멍은 인간이 들어가기에 너무 좁다고 말해주었죠. 다이버들이 흩어지고, 바다에 홀로 떠 있을 때였어요. 미세하고 강력한 울림이 온 바다를 휘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요. 고요하던 물결이 사정없이 떨리고, 몸은 해초처럼 물결에 휩싸여 방향을 잃었어요. 마치 땅속 산맥에 지진을 일어난 것 같았죠. 놀란 다이버들이 수면 위로 하나 둘 떠올랐고, 우리는 영문을 몰라 사정없이 두리번거렸어요. 한참 후에 그것이 향유고래가 수심 1,500미터에서 입술을 세게 다무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향유고래가 입술을 세게 다물면 몸속에 있는 수많은 공기주머니가 터지면서 두개골 사이로 소리를 뿜어냅니다. 철컥! 철컥! 붕붕! 그 진동이 어찌나 큰지, 마치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나는 향유고래가 실은 인간을 통째로 삼킬 만큼 커다란 목구멍을 가지고 있다고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인간을 삼켜봤자 바로 내뱉어버렸을 테고 말이다. 더욱이 심해의 향유고래를 마주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향유고래는 다이버(혹은 먹이)의 위치와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소리를 보내고 메아리가 돌아오기 기다렸을 것이다. 온 우주를 통틀어 향유고래만큼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
남극 연구가 : 전 남극에 서식하는 살프와 고래와의 관계를 연구합니다. 멍게를 닮은 작은 투명체 살프는 꼬리물기 하며 온 바다를 떠다닙니다. 만지면 끈적거리고 쉽게 부서져 지구 콧물, 젤리볼, 외계인 등으로 불리죠. 고래가 바다의 최강 포식자라면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살프는 척삭동물의 원형에 가까워요. 살프는 쇠사슬처럼 모여 다니다가 스스로 성을 결정해 번식하고, 또 바다로 떨어져 나가 다른 친구들과 가족을 이룹니다. 열심히 플랑크톤을 먹어 바다를 청소하고, 매일 엄청난 양의 똥과 시체가 바닥에 가라앉아요. 바다에 엄청난 유기농 탄소를 가져다주죠. 고래 사체처럼요.
환경 운동가 : 매년 10월이면 활동가들과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에 모여 대형 화물 선박의 길을 막는 일을 합니다. 바다는 혹등고래의 집이니까요. 인류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요. 혹등고래는 흥이 많은 뛰어난 음악가예요. 심지어 반복적인 리듬의 후크송을 즐겨 부르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동료에게 종일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따라 부르거나 교환하기도 해요. 그런데 점점 노래를 안 부르기 시작했어요. 200km 떨어진 곳에서 화물 선박 소음을 내자 노래 부르기를 중단했어요. 언젠가는 노래하는 법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진화생물학자 : 저는 뉴질랜드 북섬 타라나키만에 사는 대왕고래의 감각을 연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는 천재예요. 온몸으로 들어오는 감각을 통합해 가장 적확한 판단을 내리죠. 눈으로 보는 정보뿐만 아니라 냄새와 소리, 수천 마리의 작은 바다 생명체들이 가시와 아가미를 뻐끔거릴 때마다 흔들리는 물의 느낌도 알아차립니다. 대왕고래는 느낌의 협력으로 마음의 결정을 내려요.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대왕고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데 당신은 왜 고래를 보려고 하나요?”
선장이 나를 향해 물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브라이언 오스틴 사진가가 촬영한 고래 사진을 본 적 있습니다. 사진 속 고래는 깊고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사진가를 바라보았듯이...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의 따뜻하고 슬픈 눈을 마주하며 온몸의 세포가 진동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이전 시대부터 이 별에 살아왔고, 땅에서 살다가 스스로 바다를 선택해 깊은 물로 들어갔어요. 고래의 눈을 직접 마주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 여기 있는 이유요..."
육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선장이 흥분한 소리로 크게 외쳤다.
“고래다!” “북동쪽 2시 방향!”
엄마 고래가 짙푸른 바다를 박차고 하얀 포물선을 그리며 점프하자, 뒤이어 새끼 고래가 귀엽게 점프하며 뒤따랐다. 고래는 안전하고 먹이가 많은 라군에 들어와 새끼를 낳고 양육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태양을 바라보는 미어캣처럼 꼿꼿이 서서 푸른 지평선의 검은 움직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비가 그쳤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