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여행자 방문이 없었다는 마을의 이름은 바트라코톡신이다. 이곳에 처음 돌을 쌓아 마을의 경계를 만든 청년, 베라트룸이 손수 이름 지었다. 피부에 치명적 독을 지닌 ‘독화살개구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이곳은 마을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데, 폐허 돌탑이 이곳에 솟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이웃 마을 바우치는 230km나 떨어져 있고, 바우치 사람들은 바트라코톡신의 울타리에 눈에 보이지 않는 치명적 독이 발라져 있다고 믿는다. 바우치에서 만난 한 노인은 바트라코톡신 안으로 멀쩡히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돌탑 안에 머무르라고 말했다. 그는 물 한 병을 손에 쥐어 주고는 바트라코톡신에는 독이 지천이니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그곳에서 돌아온 이들 중 보통의 삶을 사는 유일한 생존자였다. 하지만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의 소리를 듣지 마시오. 그것이 그들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일세.”
노인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트라코톡신 사람을 말하는 건가요? 그들을 왜 피해야 하죠? 베라트룸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바우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바트라코톡신에 들어갔다가 멀쩡하게 나온 사람은 없다. 마을의 소문들은 아래와 같다.
한 청년은 좁고 어두운 방 안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했어요. 그는 그를 방 밖으로 꺼내려는 사람들을 향해 침을 뱉고 물건을 집어 던졌죠. 그는 그 안에서 결국 굶어 죽었어요 / 불쌍한 샌드라. 샌드라가 그곳에 갔었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눈이 하나 달린 아이를 낳자마자 실신해 정신을 잃었죠. 아이는 사람들의 증오를 먹고 자랐고, 결국 불을 질러 온 가족이 타죽었지요. / 피스커는 사냥 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사격 솜씨가 좋았어요. 그곳에서 하얀 영양을 죽이고 동료들과 바비큐 파티를 했는데, 모두 대발작을 하는 바람에 몇몇은 숨이 넘어가고, 몇몇은 미쳐버렸어요.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사람이 있었는데, 마치 함께 춤을 추는 의식 같았대요. 그런데도 건장한 피스커는 꽤 오래 살아 있었는데… 불곰이 나타났어요. 공룡이라 믿을 만큼 그림자가 거대했다고 해요. 피스커는 그제야 발작을 멈출 수 있었죠…
도시를 지탱하는 소문을 밟고, 울타리라 부르는 경계선을 넘어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백악기 대멸종을 겪고 난 한참 후의 숲처럼 작은 포유류와 곤충들이 키 작은 나무사이로 빼곡했다. 마을을 잇는 길에는 온갖 이끼와 지의류가 이불처럼 포근하게 뒤덮어 발바닥이 편안했다. 사방에서 물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붉고 푸르고 노란 꽃잎 안에서 호박벌이 몸을 구르며 샤워하고, 폭신한 땅에는 늑대의 것으로 보이는 배설물이 찐득거렸다. 새들은 이방인의 출현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면서도, 나뭇가지를 잘라 던지며 경계하기 바빴다. 오색창연한 앵무새가 사람 귀 모양의 자갈 위에서 깃털을 활짝 펴고 일광욕하고 있었다. 그 아래 산토끼가 부지런히 점프하며 지나갔다. 맑고 화창한 말간 날이었다.
‘뭐야, 천국이잖아.’
원시림 같은 깊은 숲 한가운데에 굴뚝처럼 솟은 돌탑에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출입문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창이 안과 밖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는데, 이 구멍을 통해 돌탑 안 사람들의 눈빛이 슬쩍슬쩍 보였다. 과거에 존재했을(혹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던) 도시는 식물에 의해 형태가 사라지고, 이곳을 선택한 사람들은 돌탑 안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돌탑에 붙은 뒤틀린 나뭇가지를 발판 삼아 탑 꼭대기 뚫린 구멍으로 들어가야 했다. 어둠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밤이 몸의 움직임을 완전히 가리자, 공간을 부수는 굉음이 메아리쳤다. 소리는 강렬하고 오래 이어져 공간 전체를 잠식했다. 밀려오는 공포를 뒤로 하고 탑 안으로 미끄러졌다. 눈을 떴을 땐 구멍 안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사히 들어왔군요.”
회색 수염이 허리춤까지 길게 난 노인이 바닥에 떨어진 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숨쉬기가 어려웠고, 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물에서 짭조름한 네잎클로버 맛이 났다. 노인의 바짝 마른 몸피와 가는 발목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가냘파 보였다. 나는 그가 베라트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나 : 당신이 이 도시를 만든 베라트룸이군요.
베라트룸(이하 베) : 그렇습니다. 어둠이 도시를 잠식하기 전에 돌탑 안으로 들어와서 다행입니다. 지금은 그들의 시간이니까요.
나 : 누굴 말하는 거죠? 이 도시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베 :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 : 나는 여행자일 뿐입니다. 이 섬에서 멀쩡하게 나온 사람이 없다는 걸 들었지만 나는 믿지 않아요. 나는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베 : 당신은 관찰자군요.
나 : 내게 관찰은 삶의 기술입니다. 진실에 다가가게 해주죠. 질문에 답하자면, 진실을 찾기 위해서 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당신들은 왜 탑 안으로 들어 간거죠? 그들은 누구인가요? 사람인가요?
베 : 그들은 억울함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탑에 들어온 것은 아니에요. 인간이 존재할수록 그것의 형태는 점점 거대해졌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땅을 내어주고, 땅 속에 우리들의 귀를 심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라도 원하는 대로 형태를 바꿀 수 있고, 말하고 싶은 만큼 쏟아낼 수 있습니다.
나 : 억울함은 바깥에 있지 않아요.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다고요.
베 : 그것은 자라날수록 스스로 형태를 지닌 존재가 되었어요. 그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간을 줌으로써 속죄하는 중입니다. 대신 우리는 그들이 있던 공간으로 왔어요. 돌탑은 점점 작아지는 중입니다. 공간에도 평등이 필요합니다.
나 :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군요! 그렇다면 이곳에 왔던 사람들은 왜 병들어 가는 거죠?
베 : 인간들은 노력할수록 실수하는 존재니까요. 하나의 억울함이 스며들면, 우리는 수천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돌탑 구멍으로 들어올 때 들었던 것이 억울하게 죽은 암사자의 울부짖음 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자의 포효소리는 8km 넘게 뻗어 나가고, 고통의 진동은 땅에 박힌 귀에 스며들어 길고 견고하게 대지에 뿌리내린다. 억울함이 스민 땅은 온 생명과 함께 통곡하고, 바트라코톡신 사람들은 이방인을 재물 삼아 속죄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에게 인간은 억울함의 형태를 키우는 어리석은 존재다. 이 도시에 관해 알게 될수록 서서히 내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은 입안에서 헛돌고, 속이 어지러웠다. 나는 그들이 준 음료가 로코초를 달인 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운영 특정 종인 로코초를 먹으면 멍하니 바라보거나, 극도의 불안을 보이거나,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거나, 폭력적으로 행동한다. 나는 그제야 바우치 사람들이 보인 이상 행동의 원인을 이해했다. 나는 죽거나, 미치거나, 스스로 갇힐 것이다. 나는 억울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베라트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인간들이 너무 많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