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토스로 가는 3일간의 여정 내내 바람이 불지 않았고, 비가 내렸다. 때때로 시야를 완전히 가릴 정도로 폭우가 내렸다. 오랜 시간 무더위로 고생했기 때문에, 서늘한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다만 통신이 먹통인 데다가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아 GPS를 수시로 확인해야 했고, 종일 머무는 먹구름 때문에 밤과 낮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공간의 골격이 보였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주위에 생명이라곤 칠흑 같은 그늘을 드리우는 키큰 나무뿐이었다. 땅바닥에 작은 열매들이 무수히 떨어져 핏물처럼 흥건했다.
안개로 자욱한 길을 뱅글뱅글 돌았기 때문에 내가 루토스 한가운데에 이미 이르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도시에는 공간을 이루는 어떤 요소도 눈에 띄지 않았다. 건물과 도로, 분수와 가로등은 하나의 실루엣처럼 희미하게 떠다니고, 어떤 형상도 불명확해 무엇이 진짜인지 환영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눈을 최대한 가늘게 뜨고 사방 두리번거렸다. 나는 괜찮아. 언제나 예측 불가한 순간에 여행의 기쁨이 피어나니까. 나는 혼잣말하며 깊고 견고하게 숨 쉬었다. 숨이 몸 안의 불안에 말을 걸듯이. 숨결이 내 안의 흔들림과 춤을 추듯이.
휙! 휙! 휙휙! 사람들이다!
도시에서 유령처럼 흐르는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두 눈과 팔다리가 달린 멀쩡한 인간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 미끄러지고 교차하고 나타나고 사라졌다. 손 뻗으면 바로 닿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손을 휘젓고 소리를 쳐도,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사람 좋게 인사를 건넸다가, 나중에는 욕을 던지며 몸서리쳤다. 어쩌면 성능 좋은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거나, 이방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지침을 받았거나, 혹은 실제로 시각 기능이 사라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서로에게도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서로가 각자의 시공간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상상했다. 이를테면, 루토스는 경계에 있는 도시이고, 사람들은 다른 세계의 네트워크 경로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 사이에 내가 있다. 혹은 갇혔다. 아무리 소리를 내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꿈속 한가운데에.
“당신은 내가 보입니까?”
안개 속에서 실루엣이 다가와 말했다. 몸은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지만, 빛과 거리에 따라 네발 달린 짐승처럼 보이기도 했다.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그의 동그란 눈동자뿐이었다. 공중에 눈이 붕붕 떠다니는 것처럼 두 눈동자만 또렷했다.
“당신의 동그란 눈이 보여요.”
나는 계속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를 명확하게 보려고 애썼다.
“그렇군요.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 도시는 보는 방식에 따라 각자의 시공간이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에게 당신은 보이지 않아요.”
실루엣은 동그란 두 눈을 껌뻑거리며 말했다. 동그란 동공이 확장했다가 다시 서서히 작아졌다.
“곧 안개가 걷힐 거예요. 빛이 떨어지면 모든 눈이 서로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옵니다. 그러기 전에 도시를 떠나는 게 좋을 겁니다.”
실루엣이 뒷걸음질하며 말했다. 그는 조금 불안해 보였다.
“왜죠? 서로를 볼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내가 말했다.
“아니요. 오직 둥근 눈동자만 연민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서로를 볼 수 있게 되면 서로를 죽일 겁니다.”
실루엣은 안개 속으로 떠나기 전 도시에 사는 다양한 눈동자의 사람들에 관해 말해 주었다.
실루엣에 따르면 루토스에는 다양한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눈은 안개 속에 있을 때 거의 시력이 없는 상태이지만 빛이 강하게 들어오면 눈동자가 135배나 커진다. 어떤 사람은 고양이처럼 세로로 긴 눈을 지녔는데, 좌우의 뇌에서 각각 받아들인 정보로 가까운 상대의 거리를 파악한다. 세로 눈동자를 만나면 최대한 먼 거리로 도망쳐야 한다. 가로로 긴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면 먼 거리로 도망가도 소용없다. 그들의 눈은 가로로 빛을 최대한 끌어들이고, 360도 수평의 공간을 내다본다. 그들의 눈은 머리 양쪽 옆에 붙어 있는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도 눈동자가 회전하며 수평에 머문다. 평평한 땅 위에 있다면 아무리 멀리 뛰어도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숨어 있는 사람을 기막히게 찾아내기도 하고.
작은 구멍이 박힌 길쭉한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은 움직임 없이 어딘가에 있다가, 빛이 드는 순간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순식간에 공격한다. 그들의 길쭉한 눈에 난 구멍 각각이 서로 다른 상을 망막에 투사하고, 입력된 정보를 통합해 전혀 움직이지 않고도 상대의 거리를 파악해 단번에 공격할 수 있다. 어떤 눈은 작은 점 하나처럼 보이지만 수천 개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눈은 다정하고 따뜻하게 보이지만 그것은 실재가 아니다. 수천 개의 겹눈 안에 있는 가짜 눈이기 때문이다. 눈동자의 속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가짜 눈동자에 이끌리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왜 다른 눈동자를 갖게 된 거죠?” 내가 물었다.
“그건… 도시의 지탱을 위한 도시의 결정이었습니다. 눈동자의 욕망이 도시를 계속 파괴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죠. 하지만 전 그때가 그립습니다. 욕망은 도시가 스스로 생존하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루토스는 점점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길을 잃을 거예요.”
실루엣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도시를 떠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내가 물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이 미친 눈동자의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눈동자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W 모양의 눈동자를 찾아 도움을 청하십시오. 모든 눈동자는 빛의 움직임에 의해 나타나고 반응하고 변형합니다. W 모양의 눈동자를 지닌 사람은 빛의 산란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눈동자 구조를 갖고 있어요. 도시의 출구를 찾아줄 겁니다.”
안개가 점점 옅어지며 실루엣의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졌다. 작고 평범한 체구의 형태가 드러났다. 그의 둥근 눈동자가 더욱 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빛이 떨어졌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