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티 동굴, 일명 ‘바다의 입’ 진입로에는 낡은 철제 울타리가 둘리어 있었다. 안쪽에 걸쇠가 달려 있지만 문은 열려 있는 상태다. 문짝에는 ‘산양이 나가는 것을 살피시오’라고,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곳에 무리진 양들은 그늘 아래 주저앉아 도로를 막거나, 종종 소금 바위 언덕으로 흩어져 길을 잃는다. 목장주들은 양들의 방목 구역을 엄격하게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설치해 경계를 두었다. 나는 기울어진 철제 울타리 문을 통과해 흙먼지 길로 걷기 시작했다. 가이드북에는 이곳에서 사카티 동굴까지 약 90분이 걸린다고 쓰여 있었다. 맨들맨들한 노두가 그대로 드러난 황갈색 토양에는 땅과 한 몸처럼 보이는 마른 덩굴이 그물처럼 뻗어 있었다. 붉은 먼지가 흩날리는 뜨거운 땅을 걷는 내내 현기증이 났다.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바위 언덕에 드문드문 손바닥선인장 군락이 보였고, 무성하게 자란 야생 허브가 이글거렸다.
나지막한 언덕을 두 번 넘는 동안,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스의 수천 개 섬 중에서도 현지인도 잘 모르는 외딴섬에 들어와 양들의 언덕을 걷고 있는 이유 말이다.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미지의 땅에 끌렸거나, 혹은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을 좇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과거의 형벌 같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길을 걷는 동시에 길을 잃었고, 목적지는 점점 알 수 없었다. 태양이 산 고개를 일부 넘었을 때 어스름한 황금빛 노을이 낮고 길게 미끄러졌고, 먼 곳에서 일정한 간격의 종소리가 반복해 들렸다. 댕. 댕. 댕. 명확하고 질서 있는 소리. 흩어져 있던 양들이 지그재그로 난 경사면을 따라 줄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골짜기에 퍼지는 투명한 금속 울림을 따라 통통한 양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아, 나는 사카티 동굴을 가던 길이었지!’
백골의 산양 머리뼈가 발끝에 닿았다. 산양치고는 골격이 크고 뿔이 거대해 들소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리스 바위 산맥에 들소라니, 가당치 않다. 머리뼈 뿔에 그리스 국기 깃발이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하얀색과 파란색 줄무늬로 페인팅한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화살표 방향대로 시선을 옮기자 거대한 바다의 입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초목으로 둘러싸인 검은 눈동자처럼 보였다. 구멍을 중심으로 얕은 내리막길이 빙 둘러 있어 가까이 가면 그 안으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구멍은 어찌나 큰지, 그 경계에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이 브로콜리처럼 아담해 보였다. 그곳에서 한 시간을 더 걸어 사카티 동굴의 둥근 경계에 도착했다. 지름이 40m나 되는 거대한 구멍은 땅이 무너져 내린 석회암 동굴이다. 태양 광선이 들이치는 일부를 제외하고 검고 깊고 어두웠다. 동굴로 향하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매달아 놓은 고정 로프를 잡고 하강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사카티 동굴은 암벽 등반가들이 모이는 석회암 지대로 유명한 곳이었다. 때마침 등반을 마친 4인 가족이 로프를 잡고 동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안에 양 한 마리가 있어요.”
동굴을 빠져나오던 소녀가 내게 말했다. 난 소녀가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을 따라 동굴 안쪽을 살폈다. 붉은빛이 아른거리는 울퉁불퉁한 석회암 틈새에 작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양이었다. 양은 좁은 바위 틈새에 기대어 그대로 돌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다른 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닷속 동굴에서 길잃은 거북이가 수십 년을 어둠 속에서 외롭게 살다가 굶어 죽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양은 등반객이 주는 간식을 얻어먹는 것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도 양을 구출해 보려고 시도를 안 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양은 겁이 무척 많고, 너무 높은 곳에 서있어요. 우리 쪽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데에 실패했죠. 어둠이 깔리기 전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겁니다. 빛이 사라지면 저 양처럼 갇히게 될 거예요.”
등반가가 서둘러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동굴을 벗어나 점점이 사라졌다. 나는 이렇게 떠난다면 양에게 죽음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고정 로프를 잡고 바다의 입 안으로 내려갔다. 동굴 벽면을 발로 밀고 로프를 잡고 있는 손바닥 힘을 조절해가며 까마득한 입 속으로 주의 깊게 내려갔다. 발이 바닥에 닿았을 땐 이미 사방 어둠이었다. 야생에서 여러 번 야영했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건 처음이다. 작은 불꽃을 만들어 동굴을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빳빳하게 세워 양이 있던 바위 틈새를 살폈다. 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올려다볼수록 커져서 사람을 깔아뭉개는 요괴, 어둑시니를 떠올렸다. 어둑시니는 어둠 그 자체로, 공포심을 느낄수록 거대해지고 어둑시니가 원하는 만큼 키가 커진다. 반면 관심을 주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어둑시니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흔들리는 촛불 속에서 보이는 형상은 검은 볼레로를 입은 젊은 남자였다. 20센티미터는 족히 되는 콧수염이 달렸고, 숱 많은 검은 머리가 어깨에 닿았다. 허리띠에 있는 가죽 덮개에는 작은 칼이 꽂혀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남자는 어둡고 발그스레한 피부로 수줍게 미소짓고 있었다. 남자는 애나멜 머그통에 담긴 호박색 포도주를 작은 토기 잔에 따라 주었다. 근육질의 투박한 손으로 구운 달걀 한 개와 거품을 낸 레몬 수프를 차례로 건넸다. 새하얀 천 위에는 두껍게 자른 흑빵과 올리브 한 줌, 염소 치즈 조각이 놓여 있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황동색 종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제서야 그가 양을 돌보는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사카티 동굴로 향하던 길에서 만난 양들의 안내자였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간결하고 힘 있게 종을 흔들기 시작했다. 댕, 댕, 댕그르… 동굴의 깊은 숨통을 따라 소리의 진동이 동굴 전체를 깊고 크게 울렸다. 마치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감각과 비슷했다. 두 번 다시는 들을 수 없는 투명한 환희이자 어둠이 한 줄기 빛으로 전환되는 지극한 평온. 사내는 바질 묶음을 건네며 무어라 말했지만 나는 어떤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봐요. 방금 뭐라고 말했죠?”
사내가 말을 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눈을 떴다. 어둑시니 대신 얼굴 부분만 갈색 털이 난 하얀 양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처럼 수평선 모양의 눈이었다. 목에는 황동색 종이 매달려 있었고, 양이 움직일 때마다 진한 바질 향이 불었다. 댕그르, 댕그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