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 시간보다 10분이나 일찍 눈을 떴다.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수니타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 다음 복도에 있는 작은 세면대로 향했다. 세면대 거울에 걸린 작은 등 아래에만 빛이 그림자처럼 흔들렸다. 눈곱을 떼고, 치약을 묻혀 나온 칫솔로 이빨을 닦았다. 신성한 일출을 목격하는 날이니 신체를 정갈히 하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 나와 같은 목적으로 일찍 일어난 프랑스 여행자가 굳게 다문 입술로 억지 미소 지으며 무언의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의 한쪽 손에 1.5L 에비앙 물병이 들려 있었다. 그는 세면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을 위로 치켜뜨고 마치 큰 사고를 목격한 것처럼 고개를 여러 번 크게 저었다. 그는 에비앙 물로 이빨을 여러 번 헹군 다음 말했다.
“당신 이 물을 쓴 건가요?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로 이빨을 닦아선 절대 안 돼요.”
“왜죠? 난 세수까지 했는 걸…”
“맙소사. 얘기 못 들었어요? 이 물을 마신 일본 여행가가 온몸의 수분을 다 쏟아내고 정신을 잃고는 영영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고요. 옆 객실의 앤턴이 말하길, 이 물을 마시면 식도가 녹아내리고 피가 시멘트처럼 굳는다고 했어요.”
그는 이 끔찍한 이야기를 쏟아내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빛 너머로 사라졌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은 강가에서 끌어 올린 것으로, 떠다니는 쓰레기만 건져낸 독극물과 다름없으며, 수질 점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바라나시 사람들의 높은 사망률과 큰 연관이 있다고 했다. 문득 이토록 더러운 물을 향해 먼 길을 찾아오는 힌두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나는 빨리 죽길 원하지 않았으므로(그것도 고통스럽게), 몸을 정갈히 하는 것을 대충 끝내고 나갈 채비를 했다. 다행히 수니타는 세수와 칫솔질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어제 미리 얘기를 나눈 푸자가 배와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자는 한국말이 유창한 열다섯 살 소년이었는데, 말수가 적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미소를 지녔다. 또한 모두의 신뢰를 빠르게 얻는 놀라운 능력도 있었다. 푸자의 네 살 된 여동생을 뱃머리에 앉힌 다음 수니타와 내게 손을 내밀어 배 안으로 이끌었다. 에비앙으로 이빨을 닦던 프랑스 여행자 커플과 홀로 여행 중인 일본인 청년, 두꺼운 숄을 목에 칭칭 두르고 잿빛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동양 여성이 함께 배에 올랐다. 여성은 말이 없고, 우리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 먼 곳만 바라보았다. 얼굴의 반은 족히 가리는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쓴 탓에 비밀스럽게 보였다.
낡고 작은 배의 반쪽이 물에 가라앉았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구명조끼를 찾아보았지만, 비슷한 것 하나 눈에 들지 않았다. 그래, 내가 이 물에 빠지면 푸자가 구해 줄 것이다. 저렇게 맑은 눈빛을 가진 소년이 나를 모른척할 리 없다. 혹은 산다고 할지라도 이 독극물에 몸이 닿은이상 난 오래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리라. 강가는 삶과 죽음을 모두 품고 있었다. 나는 푸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 보냈다. 위기에 빠지면 구해줄 만한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라면서.
푸자가 힘차게 노를 젓자, 나룻배가 천천히 움직였다. 새벽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검은 강가의 물결이 부드럽게 너울거렸다. 푸자는 대체로 미소 짓고 있었지만, 종종 힘겨운 표정으로 노를 당겼다. 부두에는 마른 몸에 샛노란 천을 두른 사두들이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좌선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마에 찍은 붉은 빈디는 선명하게 빛났다. 다른 한쪽에는 목욕하는 사내들이 보였다. 파자마를 수면에 여러 번 친 다음 그것으로 어깨를 때리고 다시 몸을 비비기를 반복했다. 새하얀 거품이 물길을 따라 강 안쪽으로 흘렀다.
짙은 하늘은 분홍빛과 옥색으로 옅게 변하고 수평선처럼 옆으로 긴 구름이 수면에 빗금처럼 비쳤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프랑스 커플은 멀리 분홍빛으로 물드는 풍경을 바라보며 서로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했고, 일본인 청년은 후지산 록 페스티벌에서 경험한 엄청난 홍수에 대해 떠들어대다가 우리가 반응이 없자 푸자의 여동생 볼을 장난스럽게 건드리며 웃었다. 선글라스를 낀 동양 여성은 계속 말이 없었다.
푸자는 보리수 잎사귀에 작은 촛불을 얹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자 소중한 염원을 촛불에 띄워 강가의 먼 곳으로 흘려보냈다. 나는 수니타와 싸우지 않고 남은 여행이 안전하기를 기도했다. 수니타는 눈을 감고 오래 기도했는데, 끝내 그 내용이 무엇인지 내게 말하지 않았다. 강가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흐르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강가를 따라 흐르고 있는 우리의 존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무인 섬이 보였다. 푸자는 그곳이 이승을 떠나 영혼이 닿는 저승의 땅이라 말했다. 운무가 거치자 모든 풍경이 선명해졌다. 은빛 수면은 짙은 남색으로 변하고 활기차고 미지근한 공기가 코끝에 걸렸다. 철썩! 그때였다. 팔뚝만 한 크기의 등줄기가 나룻배 옆으로 높게 올라왔다가 다시 물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철썩! 물결이 크게 요동치고 내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봤어요? 봤어요? 크어요. 엄청! 저기요!”
이번에는 팔뚝보다 굵었다. 태양에 반사된 그것은 처음에는 검은색처럼 보였다가, 핑크빛으로, 그다음에는 무지갯빛으로 갈라졌다. 역광으로 비치는 강렬한 햇살 때문에 일정하게 반복되는 물의 파동만 겨우 들려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면 위로 차올라 부드럽게 물속으로 미끄러졌고, 네 번째에 영원히 사라졌다. 죽음처럼 고요해진 침묵을 깬 건 푸자였다.
“강가의 돌고래예요. 영혼을 실어 나르는 중이죠. 여러분은 운이 좋아요. 그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든요.”
우리는 모두 흥분한 상태로 각자의 언어를 사용해 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청난 여행 에피소드가 생겼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서로의 감상을 말하느라 분주했다. 그때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흐느낌은 점점 커져 강가의 무인 섬에 부딪히고 물결을 따라 바라나시 전체에 메아리쳤다. 선글라스를 벗은 채 강물을 응시하던 동양 여성 눈에 눈물이 샘물처럼 넘쳐흐르고 있었다.
“제 딸이에요. 제 딸이에요… 내 딸.. 내 딸아. 내 딸 은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