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늑대의 집은 나란히 붙어 있는 건물 3채 중 맨 마지막 모서리에 있었는데, 완만하게 경사진 암벽에 지지대를 세워 만든 구조였다. 친절한 늑대 가족은 고맙게도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을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바닥 널빤지 사이로 샛바람이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움직이느라 거의 끼니를 하지 못했으므로 무척 허기진 상태였다. 배를 부비고 쓰러지며 너무 배고파 죽을 지경이라는 시늉을 했고, 친절한 늑대의 엄마는 까르륵거리며 그 몸짓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온 가족이 앞장서 우리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눈앞에 살집 없이 목이 길고 가냘픈 흰 닭들이 꾸벅거리고 있었다.
‘맙소사, 나는 허기를 빌미로 저 산닭의 운명을 결정할 자격이 없다. 적어도 파차푸차레가 내려다보고 있는 신성한 땅에서는…’
“That Chicken.”
수니타가 산닭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절도 있게 말했다.
내가 침묵하는 것으로 동조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는 목적지가 분명하고, 뭐라도 먹어야 했으며, 그들의 친절을 거절해서는 안 되었다. 마지막 구원일지도 모르니까. 그나마 닭의 눈동자를 보지 못한 것이 다행스러웠다. 우리는 부산스러운 소리에서 탈출해 공동 부엌으로 향했다. 벽 한가운데 걸린 작은 조명등 아래에만 겨우 빛이 흔들리고 있어 공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식탁 가운데에 놓인 작은 촛불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분주하던 소리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무리 급해도 두부를 일찍 뒤집으면 안 돼. 한 면이 단단히 부쳐지면, 그때 한 번에 뒤집는 거야. 그러니까 딱 한 번. 그래야 두부가 부서지지 않고 균일하게 부쳐지거든. 재래식 된장만 푼 국물에 두부 부침을 넣고 팔팔 끓여. 그게 다였어. 근데 어찌나 맛있는지…”
수니타는 자취 생활을 하며 습득한 ‘두부 부침 된장찌개’ 레시피를 중얼거리며 잠시 행복한 상상에 잠기는 듯했다. 두부에 찹쌀가루를 입히면 식감이 더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친구네 집에 갔는데 세련된 친구 엄마가 피자를 만드는 거야. 세상에 피자를 집에서 만든다니 상상이나 돼? 나는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피자를 만들어달라고 엄청나게 졸랐어. 당연히 엄마는 피자를 만들 줄 몰랐지. 피곤해하는 엄마 손을 붙잡고 슈퍼로 가서 그 집에서 언뜻 본대로 피자치즈도 사게 하고, 소시지랑 밀가루도 골랐어. 엄마는 대충 물을 부어 밀가루를 반죽해 팬에 넓게 펼치고는 소시지를 올리고 피자 치즈도 듬뿍 뿌렸어. 엄마가 세련돼 보였어. 난 너무 신이 났어. 엄마는 계속 짜증 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하면 되냐고 물었지. 나는 엄마를 안심시켰어.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거든. 세련된 친구 엄마가 피자를 만들 때 쓴 요리 팬과 똑같은 게 우리 집에도 있던 거야. 난 엄마에게 이 팬이면 다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어. 그런데 그게 아닌 거야. 크크. 토핑 재료가 조금 익었을 뿐 밀가루는 시커멓게 타버리고, 아주 엉망진창이었어. 엄마는 멀쩡한 재료만 그냥 버리게 되었다고 갑자기 화를 냈어. 나는 아니라고, 피자가 되었다고, 이거 보라고 하면서 피자를 세모로 잘라서 내 작은 입에 막 넣었어. 엄마, 너무 맛있어, 이거 봐, 진짜. 피자가 너무 맛있어!”
엄마의 노고가, 나의 제안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그 엉망진창 끝난 피자를 꾸역꾸역 먹음으로써 증명하려 했다. 새하얀 밀가루 피자를 먹으며 환희의 콩콩 댄스를 추고, 엄마 얼굴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만들었다. 무표정하던 엄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세련된 미소.
“포카라로 내려가면 양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만들어 먹자. 고춧가루는 충분히 있으니까.” 수니타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은 이미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처럼 침묵이 공간을 잠식했다. 허기의 고통이 뼛속까지 스몄다. 젖은 낙엽처럼 나무 식탁에 달라붙어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아, 이대로 아침까지 잠들어 굶주림을 잊었으면 해!’
천진한 웃음과 조급한 움직임 소리가 들렸다. 친절한 늑대였다. 해맑은 표정으로 우리 앞에 널찍한 그릇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릇 위 볼품없는 작은 크기에 거무튀튀한 색을 띤 그것은 약 2시간 전 수니타가 오늘의 재물로 콕 집은 ‘댓 치킨’이 분명해 보였다. 기름이 쏙 빠진 산닭에서 달큰한 버터 향이 뭉근하게 피어 올랐다. 나는 잠시 당황스럽긴 했지만,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눈에 가장 먼저 든 닭 다리에 손을 뻗어 그대로 입으로 집어넣었다. 아뿔싸. 이게 뭐지. 단단한 하리보 젤리처럼 질기고 퍽퍽한 속은 이빨로 단단히 힘을 주어야 겨우 두 동강이 났다. 두 손으로 닭다리뼈를 세게 붙잡고 이빨과 잇몸 힘을 이용해 힘겹게 고기를 뜯어야 했다. 친절한 늑대는 내가 고기를 잡아 뜯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을 때마다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마차푸차레의 땅에서 자란 산닭은 역시 먹는 게 아니었어. 날렵하고 모두 근육질이니 원 세상에 이런 닭은 처음이야.” 수니타는 투덜거리며 산닭 먹기에 헌신적으로 도전했다.
나는 마른 종이 같았던 엄마의 엉망진창 피자를 떠올렸다. 엄마가 처음으로 만들어 준 피자. 노릇하게 잘 부풀어 오른 반죽에 모차렐라 치즈와 스파이시 살라미, 이국적 모양의 피망과 올리브가 푸짐하게 오른 꼼비네이션 피자. 고급스러운 빨간 요리 팬에서 피자를 우아하게 꺼내 흠집 하나 없는 새하얀 도자기 접시에 한 조각씩 올린 다음 후추를 '톡톡' 뿌리는 능숙한 몸짓.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미소 짓는 엄마의 세련된 프리미엄 핏짜.
“친절한 늑대야, 너무 맛있어. 이거 봐, 진짜. 너무 너무 맛있어!”
난 환희에 찬 표정으로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친절한 늑대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어둠 속에서 소년의 흰자위가 겨울 설산처럼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