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감당할 수 있는 목격자에 한하여 참여 가능합니다.
- 연민을 보이는 눈빛을 삼가 주세요.
- 투어 중단은 ‘뻐끔살무사’의 땅으로 진입하기 전까지만 할 수 있습니다. 암호는 ‘목말라’ 입니다.
- 동굴 인간을 자극하는 질문을 금지합니다. (사전 질문 받습니다)
-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마십시오. 특히 만지고 냄새 맡는 행동은 엄격히 통제되어 있습니다.
경고에 가까운 안내서에 호기심이 났던 것이다. 흔한 여행자 소굴에서 벗어나 누구도 관심 없는 경계의 안쪽으로 가보고 싶었다. 자연재해와 인간의 개입으로 수십 년간 방치된 그곳은 오염된 바다와 이어진 맹그로브 늪이고, 일부는 독사들이 장악한 화산 지역이다. 나는 규칙대로 휴대전화와 전자기기를 반납한 다음 그들이 준 새하얀 보호복을 옷 위에 착용하고, GPS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혹시 내가 혼자 길을 잃으면, 그들은 이 목걸이를 이용해 나를 발견할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라 하면, ‘검은 구멍으로 향하는 다크 투어’를 개발하고 안내하는 가이드 Z.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감싼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좀처럼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등에는 붉은색 흘림체로 ‘지금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한나절 투어 참여자는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전부였다. 모두 깊게 찡그린 표정이었기 때문에 흡사 징벌의 땅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우리는 출입금지 푯말의 안쪽 세상으로 한 발 옮겼다. ‘검은 구멍으로 향하는 다크 투어’ 참여자들에게만 출입이 허가된 구역이다.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피부로 스며들었다.
첫 번째 도착한 곳은 지름이 20m 남짓한 작은 연못이었다. 연못은 썩은 나무뿌리와 낙엽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발로 쓱 건드리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표면이 힘없이 꺼졌다가 다시 부풀었다. 공중을 향해 뻗은 마른 가지를 건드리자, 재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나는 혐오스러운 것을 떨쳐내듯 손을 허벅지에 세게 비볐다.
“한때 이곳은 도롱뇽이 알을 낳는 곳이었습니다. 아낙네들은 이 연못에서 소원을 빌면, 도롱뇽이 꿈을 이루게 해준다고 믿었죠. 지금은 우라늄 파편이 지천으로 깔렸지만… 아,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베타프로테오 박테리아가 그들을 먹어 치우고 있으니까요.”
Z는 우라늄 정수를 위해 환경부가 얼마나 많은 예산을 들이고 있는지 설명했다. Z에 따르면 이곳에 박힌 우라늄을 최소 10년간 빨아들일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베타프로테오 박테리아를 세포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Z는 자기 말이 거짓이 아니라며 모두에게 우라늄 키트를 건넸다. 면봉을 콧속으로 깊게 넣어 유전자를 묻힌 다음, 박테리아를 분쇄한 용액에 충분히 섞어 키트에 떨어뜨리면 1분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두 줄이 표기되면 방사능에 노출된 것이다. 우리중 아무도 키트를 사용하지 않았고, 투어는 플라스틱 카약을 타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Z가 작은 플래시로 물 속을 비추자 밝은 연두색 형광빛이 아른거렸다.
두 번째 목적지인 말레 동굴에서는 판도인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마른 몸피지만, 말 없는 미소에는 품위가 묻어났다. 나는 나약해 보이는 그가 사시나무 꼭대기에서 홀로 살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는 말레 동굴에 들어오기 10년 전까지 판도pando라고 불리는 사시나무 꼭대기에서 8년을 내리 살았다. 판도 군락의 중심부를 굴착기로 밀어버리고 아스팔트로 덮는 폭력을 견딜 수 없던 그는 판도의 권리를 변호하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밤 나무 꼭대기로 올랐다. 사시나무 꼭대기에 이르자 자그마치 13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군집을 내려다보며 스스로 판도의 줄기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그를 따르던 강렬한 시위자들(그 둘 중에는 홀딱 벗고 삼림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벌목 회사에 방화를 저지른 이도 있었다)이 사라진 지 오래 지났을 무렵, 그는 스스로 판도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판도는 ‘나는 퍼져 나간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사라져도 나무가 스스로 퍼져나갈 것이라 믿어요.”
판도인간이 담담히 말했다. 그는 우리를 동굴 안쪽으로 정중히 안내했다. 천장에는 붉은박쥐 한 쌍이 매달려 고요히 잠자고 있었다.
“그들은 잠을 자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동굴에 들어왔을 때부터 매달린 채였으니까요. 아마도 이곳에서 박쥐의 마지막 숨이 흘렀을 겁니다. 나도 비슷한 운명을 지니겠지요.”
그는 스스로 나무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동시에, 박쥐처럼 동굴의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어 도착한 맹그로브 늪에는 녹조류 사체들이 녹색 띠를 만들어 뿌리를 감싸고 있었다. 검은 땅과 대비한 강렬한 보색은 마치 샌디 스코글런드의 사진 시리즈처럼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부서지는 맹그로브 가지들이 녹조가 바다로 흐르는 것을 힘겹게 막고 있어 그나마 안도감이 들었다. 녹조로 뒤덮인 나무줄기에는 흐물거리는 무언가가 흉측하게 달라붙어 있었는데, 언뜻보면 나무가 콧물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글거리는 흰 거품에서 계란 썩은 내가 풍겼다. 나는 코를 잽싸게 틀어막았다.
“헬멧해파리입니다. 심해에 사는 해파리들이 뭍으로 올라온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채굴선이 심해 망간을 채취하기 시작한 5년 전부터 이렇게 수면을 뒤덮기 시작했어요. 인간들은 배터리에 필요한 희귀 금속들을 챙기겠다며 해저 5,000m 아래 열수구까지 구멍을 마구 뚫었죠. 해파리들은 인간이 헤집어 놓은 검은 구멍의 파편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점액으로 온몸을 감쌌어요. 결국 스스로 숨통을 막게 된 해파리들이 물길에 쓸려 이곳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금속 먼지로 뒤덮여 가쁜 호흡을 힘겹게 내쉬는 헬멧해파리의 모습을 떠올리자 숨이 턱 막혔다. 현기증이 몰려와 그대로 주저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 속에서 말레 동굴로 들어간 판도인간의 형체가 보였다. 품위 있는 미소를 띠며 내게 다가와 무어라 말을 건넸지만 입만 벙긋거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 된 소리가 귓속을 맴돌았다.
“이제 뻐끔살무사가 장악한 화산으로 진입합니다. 유독 가스가 난무하므로 모두 방독면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Z가 익숙하게 말했다.
눈을 떴을 땐 판도인간 대신 뻐끔살무사가 혀를 날름거리는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진 푯말이 꽂혀 있었다. Z는 뻐끔살무사가 인간의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특수 제작된 스프레이를 우리 몸에 잔뜩 뿌려댔다. 뻐끔살무사는 갈라진 혀로 허공에 있는 인간 냄새를 채취한 다음 콧속에 있는 야콥슨 기관에 넣어 먹을 만한 맛인지 알아차린다. 위장술의 천재인 데다가 인내심이 탁월한 뻐끔살무사가 내 냄새를 먹이로 인식한다면, 살아날 확률은 희박하다. 갑자기 오한과 함께 목이 따가웠고,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나는 Z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목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