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에 출현한 꼽등이 중 가장 큰 녀석이 세제 비누 위에 앉아 있었다. 길고 가늘며 뾰족했다. 몸통은 새끼손가락만 한데, 꼬리에 집게 같은 고리가 달려 있어서 또 하나의 머리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청력 없이 오직 더듬이 감각으로 세상을 인지하기 때문에 더듬이 두 개가 온 세상인 것처럼 현란하게 움직였다. 긴 다리를 굽혔다 펼치며 점프하는 꼽등이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호들갑 떨며 동료들을 부르곤 한다. 이 흉측한 벌레들은 대체로 동료들이 오기 전 모습을 감추니 환장할 노릇이다.
꼽등이는 날개가 없고, 낮고 느리게 점프하기 때문에 잡기 어려운 편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살리는 사람’이고 싶어, 살아있는 것들을 내 의지로 죽이지 않고 경계 너머로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꼽등이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마주하면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하수구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벌써 세 번째다. 나는 탕비실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꼽등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것은 계속 나타나고,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생존을 위해 따뜻한 실내에 머물며 다음 세대를 만들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반복 목격은 일종의 충격 요법과 같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마주치고도 칠색 팔색하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우리집 욕실에 개미들이 줄지어 나타난 적 있다. 개미들은 변기 뒤 벽면 줄을 따라 질서 있게 이동 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나는 살리는 사람이니까. 열심히 제갈길을 가는 개미를 향해 아주 견고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번 눈에 띄면, 너희들은 이 집에서 결코 살아서 나갈 수 없다!”
욕실 문을 아주 세게 닫으며 경고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개미가 사라졌다. 개미들은 이곳이 동족이 살기에 썩 안전한 곳이 아니라 판단했을 수 있고, 혹은 본능적으로 나의 공격성 강한 진동을 위기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난 꼽등이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경고를 보내기로 했다. 마치 즉결심판을 내리는 판사처럼 공격적인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내가 이 문을 다시 열었을 때 다시 네가 나타난다면, 강력한 해충약으로 널 무자비하게 파괴할 것이다. 약의 성능은 무척 강력하고, 고통은 오래가지 않을 거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꼽등이는 길고 긴 더듬이를 쫑긋거리며 깐족거리고 있었다. 나는 꼽등이가 나를 향해 점프할까 두려워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한나절이 흐르고 다시 조심스럽게 탕비실 문을 열었을 때, 꼽등이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 발견했던 비누 위, 거울 주변, 청소 도구함, 후미진 구석에도 없었다. 꼽등이는 더듬이가 제 몸보다 세 배는 길고 움직임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눈에 잘 띈다. 그렇다면 꼽등이는 내 경고를 받아들인 것일까? 나는 정말 살리는 사람인가? 꼽등이만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렴 어떤가. 안도하며 그릇장을 열려는 순간, 손잡이 옆에 붙어 있는 노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귀여운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문을 열 때 꼽등이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마세요. 그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아무도 해치지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