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곧 저물테니 서둘러 줄을 서시오.” 나는 뒷 사람 말에 어물쩡 줄을 섰다. 영문을 몰랐지만, 이것이 도시의 일부가 되는 방법일 것이다. 확대경을 차지한 사람들은 오차 없는 움직임으로 각도와 방향을 단숨에 설정했다. 무수히 반복하는 하루를 사는 사람들처럼 거리낌 없었다. 위치가 정해지면 그들은 시간이 봉인된 바위가 되었다. 어떤 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이도 보였으며, 누군가는 확대경과 먼 허공을 번갈아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순서가 왔을 때 나는 앵무새를 힐끗 바라보았다. 단순히 호기심에 확대경을 차지하는 나를 들킨다면, 정수리를 세게 쪼일지 모른다. 앵무새는 작고 까만 눈으로 나를 힐끗 한 번 바라보고는 중얼거리며 산 주위를 맴돌았다. 그 옆에는 오늘이 마지막 생이라 믿을 만큼 쇠약한 노인이 앵무새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확대경은 산과 산 사이 음습한 땅을 향했다. 잿빛 운무가 깔린 아래는 아득해 보였다. 내 두 눈이 확대경 렌즈에 맞도록 초점을 조절하고 까마득한 응시를 쫓았다. 그 너머에는 어떤 풍경 같은 것이 있었는데, 처음엔 투명한 옥빛 물결처럼 보이다가 푸른 이끼가 촘촘하게 뿌리내린 바위 군락으로 변했다. 그것은 거대한 안개 숲이었다. 무수한 시간을 쌓은 수풀이 안개 틈에서 일렁거렸다. 확대경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그것이 저마다 고유한 구조를 지닌 건물 형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과 창 사이를 연결하는 덩굴 줄기에는 옷가지들이 화석이 되어 매달려 있고, 지붕에는 손가락 만한 알록달록한 풀들이 촘촘하게 박힌 상태였다. 땅에서 돌출된 뿌리가 벽과 한몸이 되어 계단을 빙글빙글 휘감았다. 마치 숲이 온 집을 모조리 집어삼킨 것처럼. 바람이 뱀처럼 긴 터널을 뚫고 지나가자 산그림자가 내려 앉았다. 실타래처럼 가는 폭포수가 마을의 경계를 만들고, 건물을 잠식한 잎사귀들이 강렬하게 흔들거렸다. 앵무새가 직박구리 소리를 냈으므로 30초가 지났음을 알아차렸다.
“무엇이 보이나요?” 쇠약한 노인이 말했다. “글쎄요. 아무 것도요. 그건 정글이자 희미한 구멍인데.. 아주 오래동안 방치된 마을처럼 보여요.” 내가 말했다. “그곳은 조상의 집입니다. 내 고향이지요. 나는 오늘 확대경으로 앞마당에 있던 우물이 사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마을 호수는 반쯤 남아 있더군요. 곧 안개로 가득 채워지겠지만…” 노인은 낙담한 표정으로 그 마을은 수백 년간 자신들의 고향이었으며, 땅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의 마지막 풍경을 기억하는 유일한 주민이었다. “아니, 산 아래로 내려가 물건들을 챙겨오지 그래요?” 내가 답답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는 앵무새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테니 말이야.” 노인의 번뜩이던 눈빛은 곧 깊은 주름 속에 가라앉았다. 귓속에서 축축한 미풍이 휘돌았다.
수백 년간 마을에는 세 번의 비극이 있었다. 1823년 9월 아주 보통의 날에 일어난 대형 지진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1856년, 1923년 동일한 9월에 다시 지진이 일어났고 마을은 초토화되었다. 지진이 한 번 찾아올 때마다 땅의 반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큰 바위를 실어와 땅을 메꿔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급기야 제 집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속삭임이 떠다녔고,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여 헛소리를 하거나 작은 소리에도 쉽사리 까무라쳤다. 9월을 앞둔 어느 날 앵무새의 알 수 없는 말 소리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그날 밤 모두 산꼭대기로 도망쳤다. 그건 100년 후 일어날 대재앙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모여 살았다. 산꼭대기에서 확대경으로 자신의 집 지붕이 제대로 있는지 내려다보고, 창 안쪽에 새긴 글귀를 읽고, 서재의 책가지를 둘러보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꼭대기에 올라 확대경으로 조상의 땅을 가장 먼저 보여주었다.
“고작 앵무새가 한 말 때문에요?” 나는 그들의 믿음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집이 땅 속으로 사라진 건 우리가 조상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기 때문이지. 앵무새는 조상의 말이 각인된 유일한 존재일세. 나는 앵무새의 말을 새기고 있다네.”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내년 9월이 오면 앵무새가 예견한 네 번째 대지진이 일어난다. 조상이 쌓아둔 바위가 솟아 오르르고 두 개의 산봉우리가 이어지면 마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속삭임이 될 것이다.
축축한 바람에 실려 앵무새의 노래가 떠다녔다.
우리는 느릅나무를 함께 바라 보았네 /
우물이 마르고 갓난아이는 흙에서 굶어 죽어 /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잣죽 냄새가 나면 /
동굴에서 시를 쓰던 아이가 말의 등으로 돌아가네 /
안개는 동쪽에서 부활할거야 /
땅이 흔들리기 전에 촛불을 옮겨 놓으라 /
말은 바위 틈으로 끝없이 굴러가 /
안개가 걷히고 네가 사라지면 /
모든 진실이 들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