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문장 하나가 저자 소개란에 쓰여 있었다. 알래스카 원주민도 아닌 일본인이 수십 년을 북쪽 원시림에 머무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툰드라의 울창한 나무숲과 짙은 안개 속으로 이끌었을까. 물길이 끝나는 숲에서 그는 왜 곰을 피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순간에 그는 죽음을 보았을까, 삶을 보았을까. 복잡한 질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호시노 미치오. 그의 여정을 조금 더 말하자면 이러하다. 그는 고교 시절에 우연히 본 알래스카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쉬스마레프 마을의 에스키모 부족장에게 방문을 희망하는 편지를 썼다. 꿈처럼 이루어진 알래스카의 여름 한 철에서 태곳적 자연과 원시적 풍광에 온 마음을 빼앗긴다. 일본에서 야생동물 사진가의 조수로 일하다가 아예 조국을 떠나 알래스카 대학 야생동물관리학부에 입학했다. 이후 알래스카에서 20여 년을 살아가면서 광활한 대자연과 사람, 곰의 야생적 삶을 기록했다. 43세가 되던 해 곰에게 습격을 당해 생을 마친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청록의 짙은 원시림 사진 커버를 들여다보았다. <숲으로>는 절판된 어린이 도서 시리즈 중 하나였다. 나는 그의 영화 같은 삶에 끌려 그의 책을 모으고 있었고, 언젠가 그의 여정을 따라 알래스카 곰을 보리라는 마음을 품는 중이었다. 몸과 마음을 강렬히 움직이는 어떤 것에 온 삶을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각인되어 있고, 온전한 경험 없이 그것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깊은 호흡을 내쉬며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예상하지 못한 편지 한 장을 마주했다. 그것은 번지는 검은 색 펜으로 써 내려간 것이었는데, 오른쪽 상단 위에 ‘2005. 8. 28’이라 적혀 있었다. 책이 발행된 날짜가 2005년 8월 16일이니 책이 출간된 직후다.
‘이 책은 할아버지가 무척 좋아하는 일본 사람이 찍은 사진과 글인데, 그래서 이 사람의 책을 번역하게 됐을 때 다른 책 때보다 정성을 들였고 또 잘 써보려는 마음은 있었는데 막상 책이 나오고 보니 흠이 자주 눈에 뜨여서 기분이 개운치 않구나. 할아버지 번역 실력이 그정도이니 할 수 없는 노릇이지. (중략) 할아버지는 호시노 미치오(이 작가는 9년 전에 젊어서 죽었어)가 쓴 책을 지금 며칠 새 읽고 있는데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그 글 중의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너희 아빠, 엄마, 그리고 삼춘들과 삼춘 엄마들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너희들이 좀 더 큰 다음에 읽으면 좋을 거야. 그럼 많이 보고 느끼고 바쁘고 즐겁고 그리고 조금은 어려운 일이 있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겨내는 그런 하루하루를 가지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할아버지가 쓴다.’
내용을 보고 짐작하자면, 손 글씨를 쓴 사람은 책의 번역가다. 캐나다에서 방학을 보내러 잠시 한국으로 들어 온 손녀에게 쓴 편지었다. 책은 출판사가 번역가에게 보낸 증정본이었다. 아직 전달되지 못한 책이었을까, 아니면 그 너머의 시간 속에서 책이 주인을 잃어버린 것일까. 나는 호시노 미치오의 삶 만큼이나 번역가 ‘할아버지’의 행적이 궁금했다. 그가 호시노 미치오의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느꼈을 무수한 감정을 상상했다. 할아버지 이름은 김창원이다.
‘아침 바다는 짙은 안개에 싸여 조용했습니다. 들리는 것은 카약의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뿐입니다. 바람이 일고, 하얀 태양이 나타났다가 다시금 가립니다. 천천히 안개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노 젓는 손을 멈추자, 카약은 거울 같은 물 위를 한동안 미끄러지다 우윳빛 세계 속에 멈춥니다. 갈라진 안개 사이로 주위를 둘러싼 산과 숲이 뿌옇게 보입니다. 많은 섬을 지나 어느새 깊숙한 곳까지 와 있습니다. 여기는 남알래스카에서 캐나다에 걸쳐 펼쳐진 원시림의 세계입니다.’_ <숲으로> 2p
출판사에 연락하면 할아버지의 근황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책의 본래 주인에게 책을 돌려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피로 상황에 빠지기 전에 인터넷을 활용해 ‘김창원’ 할아버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일본어 번역가이자 취미로 그린 그림을 판매하는 아마추어 화가이며 예순에 태극권을 수련하기 시작해 그쪽 세계에서 ‘태극권 할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번역가 김창원’과 ‘태극권 할아버지’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혹시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랜 탐색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렵게 발견한 수식어 하나 : 태극권을 배우고 있는 멋진 할아버지. 확실했다. 그때부터는 더욱 광범위한 추적이 가능했다. 김창원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권 할머니는 20여 년간 태극권을 함께 수련하며 동료들을 지원해 왔다. 수련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부지런히 일본어 번역 일도 하였고 언제나 약속 시간을 철저하게 지켰다. 책을 끼고 다니는 다독가이기도 했다.
‘문득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맞은편 바위에서 흑곰 어미와 새끼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겁을 하고 물가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언제 왔는지, 개울 여기저기에 곰들이 모여 있는 거예요. 새끼 곰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자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지금 숲속은 연어를 먹으러 온 곰들로 북적입니다. 일생을 마친 수많은 연어들이 강물에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연어가 숲을 만든다.’ 알래스카 숲에 사는 인디언들의 속담입니다. 알을 낳는 사명을 다하고 죽은 연어들이 떠내려오며 숲에 영양분을 준다는 뜻이지요. 나는 살며시 개울을 떠나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_ <숲으로> 27p
호시노 미치오는 대부분 홀로 자연 사진을 촬영하러 다녔다. 죽은 동물의 뼈 위에 솟아난 새하얀 버섯, 투명하게 잠든 아기 사슴의 숨, 흰머리독수리의 포효와 곰 무리의 번뜩이는 송곳니를 마주한다는 것은 길고 잔인한 외로움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어떤 기다림은 한 달 내내 이어지기도 했다. 칼날 같은 북극 바람을 온 세포로 맞이하고 야생동물의 서늘한 빛을 응시하면서 그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경험한 소중한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의 마지막은 아무도 정확히 목격한 이가 없다. 러시아 캄차카반도의 쿠릴호반에서 잠을 자다가 불곰의 습격을 받았고, 곰과 함께 숲으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나는 조금 다른 상상을 해본다.
호시노 미치오는 자고 있지 않았다. 그는 8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화산과 세르드차 알라이다 바위섬 사이로 몰아치는 차디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꼿꼿이 서 있었다. 모래밭에는 겨울을 나기 전에 영양을 보충하려는 곰 가족들이 어슬렁거리며 연어 사냥에 한창이었다. 호수 깊숙이 이르는 마그마의 뜨거운 열기가 미치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는 조심스레 망원렌즈를 꺼내 바디에 장착하고 상류 근처로 다가갔다. 뷰파인더 속에서 불곰 한 마리가 1m는 족히 될 연어 한 마리를 발톱으로 사정없이 찍어대고 있었다. 곰은 잡은 연어를 모래밭으로 질질 끌고 와 칼날 같은 송곳니로 뼈를 으스러뜨린 다음 무자비하게 찢어 속을 파고들었다. 연어는 작은 숨도 내뿜지 못하고 붉은 알을 쏟아내며 공중에서 흩어졌다. 미치오의 심장은 마치 녹아내릴 듯 뜨겁게 뛰었다. 그는 곰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20여 년간 곰을 기록해 온 그가 예측할 수 없는 곰의 공격성을 모를 리 없었다. 인간은 야생의 삶을 모른다.
그는 캄차카의 뜨거운 여름빛에 홀린 듯 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곰은 실제로 30m 넘는 거리에 있었지만, 뷰파인더로 바라본 곰은 바로 코앞에 서 있는 것처럼 가까웠다. 새끼곰들은 모래밭에 떨어진 토막 난 연어들을 주워 먹었고, 불곰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세찬 물결 속에서 육중한 검은 털이 흔들리고 엄청난 이빨을 드러내며 연어를 낚아챘다. 핏빛 물결이 미치노의 발끝에 닿았다. 그는 뷰파인더 안에서 불곰의 광적인 눈빛과 마주쳤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미치노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불곰을 바라보았다. 셔터를 누르는 것을 멈추었고, 피하지도 않았다. 먼 거리에서 망원렌즈로 오랜 시간 바라보았던 불곰을 그토록 가까이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연어의 피를 뒤집어쓴 붉은 곰 그림자가 그의 바로 눈 앞에 멈췄을 때 그들은 서로를 강렬하게 응시했다. 마침내 호시노 미치노는 곰이 되었다.
192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창원 태극권 할아버지는 2023년 9월에 소천하셨다. 94세 나이였다. 호시노 미치오의 책을 포함해 총 65권의 책을 번역하고, 산문집 <할아버지 아주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가 보내는 편지>를 썼으며, 작고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출간된 저명한 태극권 원서를 오랜 시간 번역 중이었다. 호시노 미치오와 태극권 할아버지는 반대의 시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소중한 인생을 대하는 충실한 영혼은 무척 닮아 있다. 알래스카가 호시노 미치오의 꿈을 받아준 것처럼, 태극권 할아버지가 미치오의 문장을 손녀에게 선물한 것처럼, 두 사람의 편지가 담긴 책이 여러 손을 거쳐 결국 내게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생은 꼭 한 번만 사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