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황금사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자동으로 소리를 좇았다. 나의 의식이 이토록 많은 이와 한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대부분 터번을 쓴 큰 남성이고, 허리띠에 단도가 매달려 있는 자도 보였다. 사원 안과 밖 경계에는 폭이 1m 남짓한 도랑이 있었는데, 사원에 들어가려면 모두 이 물에 발을 깨끗이 닦아야 했다. 마른 모래와 쓰레기가 뒤엉켜 날아다니는 바깥쪽과 달리 안쪽에는 대리석 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고, 사방 황금빛이 반짝거렸다. 짙은 어둠의 밤 한가운데에서도 안쪽 풍경은 온통 발화하는 빛들로 눈부셨다. 신성한 물에 발을 조심스레 담갔다. 따뜻했다.
사원은 전체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 언뜻 하나의 마을처럼 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간 자칫 길을 잃기 쉬웠다. 나는 큰 배낭을 메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 무리를 발견하고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검은 부르카 위로 가는 금발이 흩날리는 걸 보면 서쪽에서 온 여행자가 분명했다. 사실 내가 사원에 들른 진짜 이유는, 이곳이 국경을 넘기 직전의 마지막 도시인 까닭이었다. 이곳에서는 ‘와헤구루’를 옲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공짜로 밥도 주고, 잠을 잘 거처를 마련해 준다고 했다. 부르카 무리가 도착한 곳은 예상대로 여행자를 위한 숙박 공간. 입구 앞 작은 탁자에 앉아 있는 경비원이 내 여권을 확인하고는, 턱 끝을 튕기며 안쪽을 가리켰다. 사원의 일부 공간을 철제 울타리로 구획을 만들어 놓은 구조여서 바깥에서도 안이 고스란히 보였다.
내가 차지할 여유 공간은 없어 보였다. 그저 각자 누울 자리를 찾아 다리를 뻗어야 하는 것이다. 소란스러운 서양 여행자들이 차지한 코너 자리가 탐이 났지만,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원기둥 주변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는 빽빽하게 나란한 침낭 사이를 발 옆으로 슬쩍슬쩍 밀며 비집고 들어갔고, 다행스럽게도 기둥 아래 작은 틈새를 겨우 얻어낼 수 있었다. 양쪽 어깨가 옆 사람과 닿을 정도로 협소했지만, 두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안전한 토굴이었다.
나는 중요한 물건을 침낭 안에 구겨 넣은 다음 텅 빈 배낭을 베개 삼아 잠시 몸을 눕혔다. 국경의 도시로 오기까지 17시간의 버스 이동이 있었다. 철제 바닥에 구멍이 난 낡은 버스의 지독한 흔들림을 견디는 것도 고난이었지만, 나무판자를 대충 걸친 딱딱한 의자가 더 큰 괴로움이었다. 엉덩이를 건드릴 때마다 뻐근한 통증이 길게 이어졌다. ‘그래, 그 엉망진창 버스 좌석에 비하면 침낭 속은 천국이지. 땡큐 와헤구루!’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제야 공간을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몇몇은 알록달록 침낭 안에서 애벌레처럼 몸을 구부린 채 잠을 청하고 있고, 눈동자를 굴리며 나를 기묘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보였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빛의 굴절이 일어났다. 빛이 밀착된 곳에서 검은 물체가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눈을 가늘게 떴다.
벽면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선두에 선 것이 움직이면, 뒤에 있는 무리가 따랐다. 듣고 움직이고, 듣고 머뭇거렸다. 먼지가 부서지는 곳에서 길고 가는 꼬리가 방향을 바꾸는 것을 지켜보았다. 쥐였다. 손바닥만 크기의 쥐 두 마리가 앞장서고, 그들의 반의반만 한 작은 쥐들이 벽에 밀착해 한줄로 이동 중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서서히 눈을 떴다. 쥐들은 거기에 있었다. 줄지어 기어 가다가 몸체를 들어 주변을 살핀 다음, 바닥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어 먹고 다시 동쪽으로 침착하게 기어갔다. 잠시 내 쪽을 바라본 것도 같다. 이 공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듯 능숙해 보였다. 등골이 서늘하고,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몰려왔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비명을 내지르며 쥐의 존재를 모두에게 알릴 것인가, 경비원에게 이를 해결해달라고 조용히 요청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처럼 조용히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할 것인가. 그들은 아직 내 세계에서만 실재한다.
사실 그들은 무수한 세대 동안 황금사원에서 자유를 누려왔다. 그것은 인간들이 그들에게 반복된 고통을 주지 않았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사원을 빙 두르며 흐르는 도랑의 깊이를 잘 알고 있고, 위험에 빠지면 2만 2,000Hz의 소리를 내어 동료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다른 생물들과 우호적으로 접촉할 때는 그보다 두 배의 진동을 내어 벽면의 미세한 황금 입자까지 흔들리게 할 수 있다. 인간이 그들의 소리를 묵살하기 훨씬 전부터 그들은 오랫동안 시공간이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며 생존했다. 그들은 소리로 구축한 고유한 길을 잘 알고 있고, 인간들은 그저 호들갑을 떨 뿐이다. 어쩌면 쥐는 거룩한 상징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사원이 지니고 있는 예언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침낭 속에 몸 전부를 구겨 넣은 다음 숨구멍만 작게 남기고 지퍼를 머리끝까지 올렸다. 내일 아침이면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다. 국경을 건너면 바로 라호르다.
침낭 안으로 푸른 빛줄기가 새어 들어왔다. 몸을 겨우 일으켰을 땐 사람들 대부분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새벽의 짙은 운무 속에서 지난 밤 목격한 쥐가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웠다. 나는 서둘러 토굴에서 나와 동쪽으로 향했다. 나는 이곳의 모든 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일출을 보았다. 황금빛 돔 너머로 차오르는 태양은 말문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검은 골짜기에서 솟구치는 빛은 의심과 경계로 가득하던 마음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불투명한 안개가 걷히고, 선명하고 확실한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함께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거대한 황금빛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땅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오체투지하며 신의 이름을 불렀다. 환희심에 가득 찬 눈빛은 투명했고, 나는 쥐가 땅을 진동하는 힘을 느꼈다. 그것은 아침에 내가 거실 창문을 열었을 때 바위 아래 앉아 쉬고있는 새끼 고라니와 눈이 맞주칠 때 찾아드는 기분과 비슷했다. 나는 국경 넘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