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이었다. 해변에 엎드려 파도가 먼저 다가오길 기다렸다. 축축한 모래밭에서 딴청을 하며 물길이 밀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수평선 안쪽에서 겹겹이 밀려 다가오는 하얀 소리. 마침내 그 너울이 피부에 차례로 닿는 생경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양쪽 팔을 휘저으며 수영하는 시늉을 했다. 파도의 찰나는 13.3초. 다시 쏴악 소리를 내며 보이지 않는 경계로 사라지는 동안 나는 또 딴청을 하며 다음 파도를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두려움이 파고들지 않도록 마음 틈새에 딴청을 집어넣었다. 파도에 쓸려가지 않도록 온몸을 땅에 뿌리 내리면서도 냄새, 소리, 숨에 몸을 맡겼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두 눈을 선명하게 뜨고. 몸의 감각을 울타리 삼아 파도의 속도를 따라 두려움을 그네질했다.
푸른 바다의 동력을 향한 용기는 딱 거기까지. 울타리를 넘어 바다 안쪽으로 헤엄치는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아주 오랫동안 물을 마주하지 않았다.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엮지 않은 채. 원인이 없으니, 결과가 없는 상태로. 오로지 닿지 않는 세계를 향한 그리움만 모래 한 점으로 남았다. 그러다 어떤 순간, 이 모래알이 점점 커져 커다란 바위를 이루고 협곡이 되어 뇌 속에 공포의 길을 만들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 두려움(혹은 무서워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질문이 혈관 구석구석으로 흘러들었다. 더는 모른척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두 발을 움직여 방법을 찾아 나선 이유다.
1. 뇌는 몸의 죽음을 기억한다
뇌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두려움 코드를 입력했다면 그것은 신체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국내 유명하다는 최면 센터를 알아보았지만 딱히 신뢰할 전문가를 찾지 못했다. 방송 출연 문구는 오히려 더 의심을 증폭할 뿐이었다. 마침 프랑크푸르트에서 최면 치료를 받았다는 사호 선배의 도움으로 나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최면심리학자의 진료실 소파에 누울 수 있었다.
“엄마가 울어요, 들쳐업고 뛰어요, 소리질러요, 어디가, 엄마, 아파, 피. 악. 나 죽어!”
피범벅 냄새, 통증의 촉각, 엄마의 속도, 무너지는 풍경, 뻐근한 고통, 뜨거운 발광, 영문 모를 몸부림과 푸른 박동. 파편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짧고 길게 반복되었다. 난 이 시공간이 아주 오래전 살았던 2층 양옥집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길고 좁은 계단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지근한 미풍과 빛바랜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고,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진 몸은 이빨을 돌바닥에 찍어 내린 다음에도 한없이 추락했다. 직각의 모서리에 몸이 걸려 멈출 때까지 느리고 강력한 진동이 있었으며, 나는 오랫동안 아팠다. 머리카락까지 온갖 고통이 이글거렸다. 기억에 대한 저항 때문에 손과 발에 쥐가 났고 등골에서 식은땀 같은 것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아,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매 순간 고통이 겹겹이 쌓이며 떨어지고 있었다.
기억 속 추락은 지극한 통증이고 부서짐이다. 고통 그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다. 죽음에 가까웠던 고통을 기억하는 뇌가 몸에 위협이 되는 모든 조건을 거부하고 있다. 최면을 통해 잊고 있던 고통의 찰나를 기억해 냈지만, 무서워하는 마음은 여전히 더욱 제멋대로 뇌 속에 앉아 심장을 조였다. 하지만 추락은 파도와 대면한 다섯 살로부터 한참 지난 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다섯 살 이전 혹은 내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일까. 무수한 죽음을 거친 마음을 스위치 껐다 켜듯 전변할 수 있는 것일까.
2. 1초에 75번의 찰나를 알아차리기
17세에 새끼손가락을 부처님께 연비하고 출가한 돈오스님은 환속 후 본인을 안 박사라 소개했다. 네팔에서 오랜 수행을 거쳤고, 뜻을 구하는 불자에게 많은 수행적 도움을 주는 존경 받는 스승이다. 사는 데 질문이 생긴 사람들은 으레 안 박사님을 찾아 대화를 청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의구심에 관해 쉽게 질문할 수 없었다. 깊은 괴로움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질문에 비해 나의 두려움은 너무 개인적인 것이고, 다른 세상과 관계하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사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하고 있던 내게, 안 박사님은 평범한 아침에 나누는 날씨 담소처럼 누님이 잃어버린 지갑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누님이 지갑을 찾느라 혼이 나가 있는 거지요. 분명 집 안에 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귀신이 가져간 것 같다고 한탄하며 지갑을 찾느라 온 집안을 헤집고 있었습니다. 3일이 지날 무렵, 내 가만히 앉아서 생각이란 걸 하니 TV 뒤에 검은 형태가 떠오릅니다. 벽 너머로 그게 보입니다. 내 그래서, 누님에게 말했소. 아이고, 티브이 뒤에 있네. 거 있네. 하니, 딱 나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 자빠지는데, 그냥 아는 것입니다. 모르는 걸 어떻게 말합니까. 압니다. 그냥 압니다. 봤으니까요.”
아무리 사물 안에서도 양자를 발견하는 시대라지만, 이토록 허무맹랑한 말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생각 혹은 명상만으로 사물 너머를 볼 수 있는 감각이란 인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연히 보고 지나친 기억을 뇌가 저장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안 박사님의 뇌는 그것의 위치를 정확히 보았고, 망각 속에 있던 정보를 기억 저장고에서 불러들인 것이다. 나는 안 박사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지 능력과 주의력을 높이면 미래 상황을 대비하고, 그로 인해 물리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얼마 전 돌아가신 불교 석학 김성철 교수님이 개발한 사티미터(sati-meter)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사티미터는 ‘촉각자극분배장치’로 불리는 기계로, 몸에 일정 패턴의 촉각 자극을 일으켜 그것의 순차적 인지를 통해 촉각인지 능력과 집중력을 높인다. 윗파사나 명상법의 자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촉각 자극은 피부로, 피부 안쪽 모세혈관으로, 혹은 아주 미세한 근막의 떨림으로 이어졌는데, 점점 속도가 빨라지며 눈꺼풀부터 발뒤꿈치까지 바쁘게 흘렀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몸에 흐르는 촉각 자극을 인지할수록, 대뇌 우측이 관장하는 왼쪽 몸의 움직임이 민감해졌다. 아직은 초기 경험일 뿐이지만, 오랜 시간 반복 수행한다면 순차적 인지 능력을 주관하고 스스로 뇌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인지 능력이 높아지면 두려운 마음이 닥치기 전에, 두려움을 녹이거나 점프하는 것도 가능하다. 본래의 두려움 없는 존재로 뒤바뀌거나, 두려움이 있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거나.
3.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그러나 대부분 산다
무서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무서워하는 마음을 여러 번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떨어지고 떨어졌다. 한 번 시도할 때마다 3m가 넘는 거리를 순간 추락했다. 하네스에 대퇴골이 충격을 받으면 척추를 타고 대뇌피질까지 진동이 이어졌다. 까마득한 허공을 지나 단단한 바위에 추락해 목이 꺾이고, 몸이 두 동강이 나는 상상을 했다. 그렇다면 고통은 없이 죽기를. 나는 악어 우리의 공중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사람처럼 힘껏 소리를 지르고 욕을 곱씹으며 당장이라도 심장마비가 올 것 같은 가슴을 달래고 또 버텼다. 나 자신, 장비, 나를 지지하는 확보자도 믿지 못했지만 나는 살았다. 스스로 살아냈고, 확보자가 살렸다. 반복 추락에서 경험한 것은 무서워하는 마음이 어떻게든 변한다는 명징한 사실이다. 내 마음은 절망이었다가. 희망이었다가. 두려움이었다가. 생존이었다가. 다시 안도와 웃음이 되었고. 온갖 감각이 합심해 나를 조롱하다가 ‘너는 안전해’라고 말했다. 난 여전히 무서웠다.
무서워하는 마음에는 죄가 없다. 그렇다고 뇌 탓을 하거나 무서워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자신을 원망할 것도 없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다. 그 누구도 나의 두려움을 경험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전환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주 두껍게 쌓인 오랜 패턴을 재배열하려면 즉흥춤처럼 무수히 많은 해체의 수고가 필요하다. 원인과 결과 자체가 없는, 한 점 마음이 자유롭게 흐르는 투명하고 청정한 상태.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것을 결정할 시간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