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의 작은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생경한 모양의 벌레들을 맞닥뜨리는 건 놀라울 것이 아니다. 특히 산골의 오래된 목제 숙소들은 언제나 날고 기는 곤충들이 패키지다. 내가 매년 여름을 보내는 쿳사이 숲속의 작은 방갈로들도 마찬가지다. 강렬한 우기를 견뎌 온 나무들 안쪽에는 무수한 계절을 살아 낸 벌레들의 시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테라스에 매달린 해먹에 엉덩이를 걸칠 때마다 나무 기둥 안에서 소스라치는 개미들의 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정도다. 그럼에도 산중턱의 근사한 전망을 지닌 프라이빗 방갈로를 말도 안 되게 저렴한 비용으로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에, 나는 이곳의 벌레를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방갈로에 도착하자마자 침대 위에 매달린 캐노피를 펼쳐 매트리스 안쪽으로 단단히 끼워 넣었다. 벌레들이 겁 없이 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더라도 새하얀 침구에는 얼씬거리지 못하리라.
스윙을 추듯 발로 바닥을 경쾌하게 두드렸다. ‘훠이, 훠이, 사라져라. 사람의 시간이다. 너희가 머무는 시공간의 축으로 사라지렴.’ 생존의 역사를 거쳐 온 그들 역시 공존의 규율을 잘 알고 있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다. 그것은 거미였다. 특히 욕실 후미진 코너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는 거의 미동이 없었다. 바닥의 진동과 빛의 자극에 움찔거리긴 해도, 떠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죽이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 작은 생명도 내 의지로 헤치지 않고 있다. 비겁하게도 칸에게 화장실에 출몰하는 거미에 관해 말했고, 그에게서 곧 처리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칸은 아침마다 빗자루를 어깨에 메고 날선 두 눈으로 방갈로를 돌보는 관리인이다. 방갈로 지붕에서 '우다다'거리는 원숭이를 좇기 위함이지만, 그의 빗자루에는 벌레의 무수한 죽음 역시 박혀 있다. 나는 단지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거미의 파괴를 지시한 것 같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사실 그들은 집 바깥을 벗어난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제 거미 없나요?” 내가 욕실에서 나오는 칸에게 말했다. “네, 하지만 거미가 있는 편이 더 나을지 모릅니다. 파리, 진딧물, 말벌, 딱정벌레, 메뚜기.. 등 거미가 먹지 않는 벌레는 거의 없거든요. 거미 한 마리를 죽인다면 훨씬 더 많은 벌레들이 활기를 칠 수 있다는 겁니다.” 칸이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그는 거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욕실 전등을 켤 때마다 거미 다리가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되어 기뻤다.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 뱀과 거미인 이유에 관해 여러 이야기가 들린다. 인류의 먼 조상 가운데 거미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았거나 혹은 거의 멸종에 이를 뻔했다는 가설이 대표적인데, 거미의 식탐을 보면 수긍이 간다. 그러니까 거미는 늘 굶주려 있고, 전 세계에 서식하는 약 4만5,000종의 거미가 인간이 고기와 생선을 잡아먹는 양의 두 배를 먹어 해치운다고. <워싱턴 포스트>의 크리스토퍼 잉그러햄은 ‘인간 모두를 잡아먹고도 거미는 여전히 배가 고플 것’이라 말했다. 이쯤 하면 거미가 날 먹잇감으로 삼지 않는 것에 대해 땡큐 카드라도 보내야 할 판이다. 실제로 인간이 거미에게 물려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칸의 말이 맞았다. 다음날 똑같은 위치에 거미집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전혀 놀랍지 않았다. 오히려 거미의 파괴로만 끝나지 않아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는 칸을 부르는 대신 주저앉아 거미를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아기 손톱만큼 작은 크기에 몸피가 얇고 다리가 짧아 언뜻 개미처럼 보이는 생김새였다. 거미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거미줄에 닿는 소리의 진동으로 거리와 공간을 감각하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인간의 움직임과 숨을 인지하고 온몸으로 긴장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해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우리는 아주 고요한 상태로 서로 숨 쉬겠지, 조율하겠지.
“이제 네 이름은 훗투투야. 내가 훗투투라고 이름을 부르면, 너는 거미집에만 머물러야 해. 그렇다면 안전할 거야. 내가 널 보호하듯 너도 나를 보호해 주렴, 타란툴라와 개구리처럼 말이야.” 나는 거미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불러주자 거미, 아니 훗투투가 내 삶에 훅 들어왔다. 이제 더는 훗투투의 부재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훗투투의 이름을 부르며 욕실로 향했고, 종종 무엇을 먹었는지 일상을 물었다. 훗투투는 대부분 한 군데에서 오래 머물렀다. 간간이 다리를 움직이며 방향을 탐색할 땐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 번은 칸이 나와 훗투투의 관계를 모르고 거미줄을 쓸어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훗투투는 살아남아 순식간에 다시 거미집을 만들었다.
거미줄은 너무나 강력해서 로프나 그물망, 낙하산 등을 만드는 신소재로 쓰이고, 인공 인대나 힘줄, 뼈 등의 소재로 연구 대상이다. 공기 중에 부유하는 생명들의 유전자가 마치 녹음기처럼 거미줄에 기록되기도 한다. 인류가 멸종한다면 거미줄에 새겨진 유전자 정보로 인간을 다시 불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훗투투가 자신의 끈끈한 일기장에 나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다음 날 새벽, 운무가 내려앉은 산 능선에 새하얀 거미줄이 커튼처럼 긴 장막을 쳤다. 뱀의 허물처럼 길게 이어진 주머니가 파도의 형태로 산 전체를 너울거렸다. 온 지구 세상이 거미줄로 이어져 있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