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을 경험하는 건, 죽음과 마주하는 것이죠. 당신은 사흘 밤낮 동안 생사의 경계에 있었고, 이제 사는 세계로 넘어왔습니다. 이그노시아를 만난 건 신의 뜻이겠죠.” 피노가 말했다.
아마존 상류를 거슬러 탐보파타 원주민의 땅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피노의 ‘스릴 넘치는 탐보파타 투어’의 둘째 날, 미니악어라 불리는 카이만의 눈동자와 마주쳐 기절할 뻔했지만 대체로 잘 적응했다. 2m는 족히 넘는 악어에게 ‘미니’라는 수식어는 가당치 않다고 중얼거리면서. 육중한 크기의 아나콘다가 물속에서 튀어 올라 배를 뒤집어버릴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구불구불한 밀림의 물길처럼 아랫배가 내내 울렁거렸다. 피노는 아마존의 대형 민물고기인 파이체를 잡아 여행자 식탁에 올리며 살아가는 어부로, 아마존 밀림을 안내하기도 한다. 피노만큼 조상 대대로 전해 온 밀림의 지도를 온몸으로 감각하는 원주민은 어디에도 없다.
밀림의 그림자로 뒤덮인 선착장에 내리자 야자나무 꼭대기에 앉아 몸을 지그재그로 뻗으며 흔드는 고함원숭이의 하울링이 들렸다. 발끝에는 화려한 옥빛을 뽐내는 버섯 군락이 발광하고, 머리 위에는 남미수리가 슉슉 소리 내며 빛줄기를 가로질렀다. 남미수리가 마음만 먹으면 내 목덜미를 낚아채는 일 따윈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무수한 생명체의 촉수를 느끼다가 질퍽한 흙으로 스러지는 두 발을 바라보던 시선이 마지막 기억이다. 늪으로 스며든 이후로는 전혀 기억이 없다. 꿈의 파편처럼 시공간이 녹아버렸다.
귀의 극심한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나무고사리가 쌓인 폭신거리는 바닥에 누워 미끈거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떼었다. 아, 내가 아마존에서 죽었구나, 이생이 아니구나, 불쌍한 루이,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눈앞에서 열심히 무언가 말하고 있는 루이가 아른거렸다. 꿈인가, 저세상으로 가는 길인가. 루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허공을 휘저었다. 삐- 하는 이명 소리와 함께 귀에서 머물던 작은 진동이 서서히 커졌다. “살았어, 살았어!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맙소사! 나는 당신이 죽은 줄 알았다고!” 깊은 물 속에 빠진 것처럼 소리가 웅웅거렸다. 피노는 원주민 복장을 한 노인과 대화를 나누며 나를 힐끗거렸다. 루이는 의자에 앉아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갑자기 기도가 막혔는지 숨이 돌지 않더니 그대로 뒤로 자빠진거야. 피노가 머리를 받치지 않았다면 크게 다쳤을 거야. 이그노시아가 없었다면 정말이지… 어쨌든 살아줘서 고맙소” 루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이그노시아의 방에서 사흘 만에 깨어났다. 피노는 이그노시아가 탐보파타 마을의 신망 받는 샤먼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깊은 밀림에서 오직 이그노시아만이 나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존경과 감사의 몸짓을 건넨 다음, 귀를 부여잡으며 여전히 아프다는 시늉을 했다. 이그노시아는 나팔꽃처럼 생긴 청명한 푸른색 꽃의 씨앗을 부드럽게 빻아 손바닥에 털어 넣은 뒤 내게 단번에 삼키라고 말했다. 나팔꽃 혹은 알프스 용담처럼 보이는 작은 들꽃의 검은 씨앗이었다.
나는 나팔꽃의 단단하고 각진 씨앗에 LSD와 같은 환각 성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야우아스카를 복용했을 때처럼 정신을 잃진 않을까 두려웠다. 아야우아스카는 영혼의 덩굴이라 불리는 토착 식물들을 수 시간 달여 만드는 아마존의 천연 약제다. 나는 아마존의 젊은 여행자들이 호기심에 아야우아스카를 마시고 짝을 잃은 치타처럼 울부짖거나 3일간 춤추며 온몸의 수분을 모조리 쏟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샤먼들은 은밀한 제조 기법을 후세의 샤먼에게 전달했고, 샤먼들은 아야우아스카를 마시면 신(혹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가장 가깝게 마주한다고 믿는다.
“코아트-소소-우키는 신의 살이자 귀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귓속에 들어 있는 돌이지요. 이 돌을 곱게 빻아 먹으면 청각이 돌아올 겁니다. 만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원주민의 귀가 된 것입니다.” 이그노시아가 부족어로 말하면 피노가 영어로 다시 통역해 주었다. 이그노시아의 방 전체에는 뾰족하고 꼬여있고 빙글빙글하고 물결무늬 치는 다양한 기하학 형태의 식물들이 매달려 있고, 작은 것들은 선반 유리병에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캄사, 세코야, 케에네, 카쿠야, 이하, 마쿠나, 카리호나, 쇼쇼니.. 등 알 수 없는 발음으로 표기한 수백 가지 식물들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생경한 것들이었다.
“이그노시아는 아마존 상류 우림에서 자라는 약효들의 백과사전이죠. 그의 언어에는 샤먼들에 의해 수천 년간 말로 이어진 방대한 약초 지식이 담겨 있어요. 샤먼들은 어떤 식물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는지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로 전달해 왔거든요. 이그노시아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제 그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만…” 피노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그노시아는 부족의 마지막 샤먼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식물 줄기의 유액으로 곰팡이 감염을 치료하고, 나무껍질로 소화불량을 낫게 하며, 식물 열매로 호흡기 질환을 고칠 줄 알았다. 피노의 말에 따르면 이그노시아의 언어에는 약초 3597종과 1만2495가지 약효가 담겨 있다.
사흘 만에 밖으로 나왔을 때 내 몸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푸른 꽃의 씨앗을 먹은 내게 아마존 밀림은 카이만의 눈빛으로 가득 찬 두려움의 땅이 더이상 아니었다. 내 귀는 툴레 나무 기둥에 붙어 잠을 자는 긴코 박쥐의 숨 소리와 진흙으로 나무 둥지를 막고 있는 코뿔새의 경계심을 듣고 있었다. 마코앵무새가 호두 나무 그늘에서 일광을 하고, 거미원숭이가 야생 육두구 씨앗을 주워 먹는 소리가 뇌로 맹렬하게 전해졌다. 나는 내 정강이가 오른쪽으로 뻗을지, 무릎 관절을 왼쪽으로 뒤집을지 듣고 미리 알아차렸다. 원주민의 귀가 되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