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가장 먼저 찾아낸 건 박새였다. 박새는 내가 창문턱에 놓은 말린 밀웜 그릇을 이틀만에 찾았다. 심지어 친구를 부르기까지 했다. 내 그림자가 다가가도 응당 있는 일인지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창을 열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날렵하고 순발력이 상당하다. 엄밀히 말해 내 그림자 때문만은 아니다. 까치 날갯소리가 밤나무의 마지막 잎사귀들을 우수수 떨어뜨릴 만큼 우렁찼으니까. 몸집이 워낙 크고 성격도 괴팍하기 그지없는 까치는 박새를 물리치고 밀웜 사이 몇 개 없는 해바라기씨를 쏙쏙 뽑아 먹었다. 취향이 확실하다.
까치는 먹이를 가장 많이 해치우지만, 늘 2등이다. 가장 먼저 먹이를 알아차리는 건 박새를 따라갈 수 없다. 박새는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둥지에 방충 효과가 있는 허브 식물을 모아둘 만큼 영리하고 부지런하다. 인간을 크게 두려워하지도 않으니, 먹이를 재빠르게 구하는 능력도 탁월하고. 박새와 까치가 식사하는 풍경을 먼발치에서 관찰하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 생명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니 박씨와 비슷한 것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비록 유통기한 지난 밀웜과 해바라기씨였지만. 더는 새가 찾아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쓸데없이 인내심을 발휘하고 새 박사를 흉내 내느라 한나절이 흘렀다니 빈 웃음이 나왔다.
그때 생경한 소리가 들렸다. 분명 새 소리인데 짜증이 엄청나게 섞인 비명처럼 들렸다. 찢어지는 외침이 약 3초간 공중을 가른 다음 무질서한 잡음이 짧게 여러번 반복됐다. 직박구리였다. 볼에 감색 홍조를 띤 잿빛 직박구리 두 마리가 모이 그릇에 부리를 번갈아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훠이, 훠이, 손을 휘저었는데, 직박구리는 뭔가 단단히 화가난 모양이었다. 잎을 찢어 뿌리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경계했다. 퍼드덕거릴 때마다 나뭇잎이 흩날리며 떨어졌고, 모이가 사방 튀고 그릇이 기울어졌다.
빼액 ————-ㄱ! ㄲ ㅐㅐㅐㅐㅐㅐㅐㅐ ㄱㄱㄱ. 빽 ————————-
마치 ‘밥 더 내놔, 밥! 밥!’하고 뻔뻔하게 요구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를 내쫓는 소리같기도 하다. 목청 한번 우렁차다. 밥을 두둑하게 챙겨 주는 사람을 향해 잡아먹을 듯 비명 지르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이토록 양심 없이 배은망덕한 새라면 내가 더는 밥을 챙겨 줄 필요가 없다. 나는 직박구리가 차지하던 그릇을 치우고 창을 대차게 닫았다. 직박구리의 경박한 소리가 잦아들고, 안과 밖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창밖은 청명한 날씨였다. 나는 서둘러 집밖으로 나왔다. 뒷산 어딘가에서 눈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 앞 언덕에서는 감귤색 바탕에 푸른 꽃 무늬가 화려한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평소보다 더 쇠약해진 하얀 길고양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침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나는 연신 뒤돌아 집을 올려다 보았다. 창이 굳게 닫혀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