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억울함을 느끼면, 그건 부당하다고 울부짖고 분노하며 싸운다. 이내 격렬해진 고통이 헤아릴 수 없는 감정으로 치닫을 때에는 결국 말문이 막히고 지난한 고요의 시기가 온다. 고통을 겪은 사람은 말이 없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린다. 실체 없는 루머로 유랑한다. "그 아이가 거기서 죽었대." "목을 멨다지 뭐야." "그럼에도 살아 남았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공중에서 메아리로 흩어진다.
레베카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기 <마음의 발걸음> '걸인의 길' 챕터에서 이야기하는 '침묵'은 대기근 시기 때다. 150년 전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마을에 수많은 시체가 쌓였을 때, 살아남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전해졌다. 이를테면, '죽은 사람들의 침묵, 죽은 사람들 묻고 홀로 살아갈 힘이 없었던 사람들의 침묵,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유령의 몰골로 길 닦기 또는 돌 깨기 같은 구호 사업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침묵' 같은. 레베카 솔닛은 그 지독한 이례적 침묵이 아일랜드가 겪은 불행을 더 깊게 만든다고 말한다.
'트라우마는 침묵의 형태로 대물림된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되기까지 몇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
정혜윤 작가의 <앞으로 올 사랑>에는 아일랜드과 다른 침묵 이야기 있다. 작가는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에 수록된 <바위 아래 개 두 마리>라는 짧은 글을 소개한다. 엘 레켄코 계곡에서 사는 토니오와 안토닌 두 남자에 관한 짤막한 글이다. 안토니는 그곳에서 소를 치며 살았고, 토니오는 3년에 걸쳐 지은 오두막에서 그림을 그리고 산다. 안토니는 아내가 죽었을 때 첫 번째로 울었고, 글은 그가 두 번째 눈물에 관한 것이다. 같은 계곡에 사는 두 남자였지만 가까워질 일이 없었고, 애써 그러지 않았다. 어느 날 토니오가 식사를 준비하는데 안토닌이 우연히 들렀고, 토니오는 별 생각 없이 식사 초대를 한다. 토니오는 와인과 함께 포크와 나이프, 접시를 챙겨 정성스럽게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는 맛있었다. 안토니는 꼬박 십 분을 주머니에 손을 넣어 머뭇거리다가 지폐 한 장을 식탁 위에 올려두려 했지만, 토니오가 소리지르며 거절한다. 안토니는 모자를 벗고 미동 없이 가만히 섰다. 그리고 그의 볼에, 눈물이 타고 내렸다. 안토닌을 마주 보고 선 토니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꽤 긴 시간이 흘렀고, 가만히 선 두 사람은 천천히 팔을 올려 서로를 껴안았다.
작가는 두 사람이 느꼈을 '감정의 승화'에 관해 말한다. '이미 오두막의 침묵 속에서는 수많은 말이 오갔다. 가장 좋은 대화는 말 없이도 수많은 대화가 오가는 대화고, 라디오로 치면 말 없이도 말이 아니라 말의 뉘앙스와 음색, 침묵을 알아듣는 것과 같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헤아리고 상상한다. 연결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많은 말을 하고도 고독한 이유다. 우리는 침묵 속의 상상을 팽개쳤다. 타인을 빠른 속도로 규정하거나 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어깨 한 번 으쓱하고 털어낼 존재처럼.'
소설가 토니 모리슨이 말하는 '침묵'은 읽기의 침묵이다. 그녀는 혼란을 인식한 인간은 두 가지 반응이 보인다고 썼다. 바로 이름 붙이기와 폭력. 그리고 혼란에 대한 다음 반응이 '고요'다. '그런 고요는 수동적인 태도일 수도 있고 어안이 벙벙한 상태이거나 공포에서 비롯된 온몸의 마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일 수도 있습니다.' .... ' 저는 남과 다른 목소리가 지워질까, 쓰이지 않은 소설이 지워질까 두렵습니다. 그릇된 사람들의 귀에 들어갈까 봐 속삭이거나 삼켜야 하는 시들, 지하에서 번성하는 금지된 언어, 권력에 도전하는 수필가들의 묻지 못한 물음, 무대에 올리지 못한 연극, 제작이 취소된 영화 등이 지워지는 데 대한 불안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악몽입니다. 마치 온 우주가 보이지 않는 잉크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침묵의 언어를 듣는 사람이 되어야 겠구나, 숨어 있는 잉크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구나.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묻지 못한 마음을 포옹하는 사람이 되길 바래 본다. 금지된 언어 너머의 침묵을 알아차리는 사람, 타인의 해방을 위해 침묵하지 않는 사람. 행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잉크를 읽는 사람, 보이지 않는 풍경의 안쪽을 여행하는 사람, 그리하여 우리의 사랑이 결코 침묵 속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만드는 사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