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장착한 원격 로봇 피터가 수심 500m의 깊은 바다를 날아다니는 동안, 나와 헬렌은 연구선에 안락하게 앉아 심해를 바라보는 중이다. 피터는 수심 3000m 이상까지 엄청난 압력과 어둠을 묵묵하게 견딜 수 있는 유연한 몸과 인내를 지녔고, 360도 화각 렌즈는 새우 다리의 미세한 떨림도 캡처할 만큼 뛰어난 관찰 감각을 자랑한다. 그러니 바다 위에 있는 인간들은 그저 피터의 뛰어난 능력에 의지해 미지의 바다 생명체를 쫓고 클릭하면 되는 것이다. 모니터를 응시하던 헬렌이 심해의 고요를 먼저 깼다.
“저건 뭐지? 갑각류인가?”
“모양은 파리 머리를 가진 새우처럼 생겼습니다만, 아무래도 짝눈오징어인 것 같군요.”
“앗 몸이 번쩍거리네요, 워-워! 우리는 해치지 않아. 놀라지 말라고.”
“짝눈을 만만하게 보지 마시죠, 우리가 먹잇감인지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르니.”
“하, 그렇다면 실망을 준 셈인데요. 하하”
나는 피터의 뇌와 눈이 되어 심해 친구들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연구 일과 중 가장 좋아한다.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사처럼 생명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참견하고 말을 건네는 동안 우리만의 작은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피터가 만난 짝눈오징어 크기를 측정하니 손바닥만 했고, 다른 형태의 눈이 양쪽에 달려 있었다. 카메라 조명등에 반사한 노란색 눈이 바다를 거슬러 연구선의 작은 모니터에 선명하게 꽂혔다. 우리는 500m가 훨씬 넘는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지만 초월한 시공간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커다란 노란 빛이 내 눈을 꼿꼿이 응시하고, 빛줄기 하나 없는 암흑 속에서 부유하는 작은 몸이 이따금 번쩍거렸다.
“자, 자, 더 밑으로 가봅시다.”
헬렌은 피터를 더 깊은 곳으로 보냈다. 360도 화각 렌즈에 멀어지는 짝눈오징어가 보였다. 이번에는 작고 파란 반대편 눈으로 피터, 아니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트럭 7대 무게가 짓누르는 심해는 나약한 인간에게 접근 불가한 세계이지만, 사실 몸 안과 밖의 압력이 같은 이들에겐 별 탈 없는 환경이다. 포식자에게서 멀어졌으니, 그들에겐 가장 안전한 어둠일지도 모른다. 수심이 600m를 가리키자, 희미하게나마 비치던 보랏빛 안개도 잠식되었다. 조명등을 끄니 그야말로 암흑이다. 심해는 존재하는 모든 빛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어둠 자체보다 살아 있는 다른 생명과 주고받는 관계의 부재가 더욱 끔찍하게 여겨진다. 혹독하고 외로운 세계다.
“아휴 깜짝이야! 저 친구는 볼 때마다 섬뜩하다니까요.”
“안녕, 배럴아이! 오늘은 초록색 눈을 더 선명하게 뜬 것 같군.”
“자, 자, 눈싸움을 한번 해 볼까요?”
우리는 일주일 내내 같은 해역에 있었으므로, 이미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마주치기도 했다. 배럴아이는 그중 대표적 심해어다. 무언가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면, 그건 언제나 배럴아이 이마에 붙은 녹색 광선 때문이다. 처음 배럴아이를 발견한 연구자들은 튀어나온 작은 입술 위에 달린 푹 팬 점 두 개가 눈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건 후각 기관이므로 코에 가깝다. 그의 눈은 얼굴 뒤에서 머리 꼭대기를 향하고 있는데, 투명한 몸체를 통해 훤히 들여다보인다. 장기가 노출된 외계 생명체 같은 모습은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큰 눈을 미세하게 움직일 땐 좀 귀엽다. 우리는 피터를 수직으로 조종하며 배럴아이 주변을 맴돌았다. 배럴아이는 우리가 귀찮은 듯 무신경하게 갈 길을 가다가 종종 눈을 앞쪽으로 돌려 피터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마도 배럴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유기체, 살파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겼다! 먼저 시선 돌린 거 봤죠? 배럴아이는 눈이 왜 저렇게 클까요? 암흑 속에 사는 동물 대부분 눈이 퇴화했잖아요. 약광층에 사는 작은 새우들 눈도 형태는 각각 개성 넘치지만 거의 쓸모가 없고요…” 헬렌은 본인이 연구 중인 미세 갑각류에 관해 한참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떤 새우는 눈이 하나이고, 배럴아이처럼 머리 전체에 유리 같은 눈알을 꽉 채운 새우도 있다. 포식자를 피하고자 어둠을 선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먹이를 찾기 위해 혹은 포식자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눈을 뜨고 제 몸에 빛을 낸다고. “어두우니까 눈이라도 커야 살파를 찾지, 안 그래? 비처럼 떨어지는 먹이만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잖아.” 나는 피터의 시선에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인간과 달리 시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지 모른다. 진동을 알아차리는 지느러미와 이석, 뇌처럼 발달한 촉수 감각이 조상의 유산으로 남았으니까. 시력을 상실했을 때 가장 나약해지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기 전에 더 내려가 볼까요!” 헬렌이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해 질 무렵이면 심해 생물들이 수면으로 수직 상승하는 파티가 벌어진다. 어마어마한 수의 물고기와 새끼손톱 만한 작은 새우들, 짝눈오징어와 심해 해파리가 어둠을 이용해 먹이를 찾아 1킬로미터 넘게 올라온다. 극렬한 어둠을 뚫고 물기둥을 만들며 직립 상승하는 대형 은빛 파티. 전 세계 바다에서 매일 일어나지만 직접 경험한 적은 없다. 심해에서 별 기능을 하지 못하던 눈들이 별처럼 반짝거리는 순간일 테다. “갑자기 배럴아이가 안쓰러워 지네요.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는 녀석.” 나는 초록 광선을 떠올리며 말했다. 심해에서 그를 끌어올린다면 급격한 수압 변화 때문에 눈은 바로 파열해 버릴 것이다.
우리는 본래 탐사 목적인 철갑 고둥을 찾아 해저 바닥으로 내려갔다. 일주일 전 수심 2400미터 해저 화산에서 철갑을 두른 비늘발고둥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에게 ‘태권’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태권은 뜨거운 물을 뿜는 깊은 열 구멍 근처에 산다. 그러니까 바다 화산 틈새에서 마그마로 데워진 물이 솟아 오르는 것인데, 그 온도가 자그마치 300도를 넘는다. 나는 빛을 잃은 환경에서 사는 배럴아이보다 지옥불처럼 뜨거운 온도와 압력을 견디며 평생 살아가는 태권에게서 생명의 놀라운 기적을 더욱 느낀다.
“저기 같은 틈새에 있네요. 오늘은 철갑 방패가 더 두꺼워진 것 같아요.” 헬렌이 말하는 동시에 피터는 방향을 계속 바꾸며 사진을 찍어댔다. 태권은 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철갑 방패를 두르고, 산소를 저장하기 위한 큰 심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도 이 금속을 탐내고 있다는 것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뜨거운 물에 녹은 퇴적 광물은 첨단 산업에 필요한 유력 자원이 되었다. 채굴이 시작된다면, 더는 태권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태권은 열수 구멍을 떠나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필요한 기록을 마친 피터에게 수고했다고 말한 뒤 수면 위로 불러들였다.
국제해저기구의 심해 채굴 승인을 받았다는 이메일이 도착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보낸 심해 자료가 승인을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는 내용이었다. 멀어지는 모니터 속에서 태권의 갑옷 전체가 나사가 되어 나선형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옆에 고래의 딱딱한 귀 뼈와 상어 이빨을 닮은 흰 조각들이 보였다. 내 눈은 모니터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