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를 선택했을 때 기뻤다. 카일라스산맥의 검은 협곡 소리를 들으며 아주 오랜 시간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선의 맹렬한 움직임으로 작은 점과 만났을 때 나의 부드러운 척삭은 춤추기 시작했다. 한 줄기 바람이 깊은 우물에서 길을 따라 상승해 목을 가로질러 서서히 일어났다. 7일에 한 번씩 바람이 불 때마다 카일라스산맥이 기억속에서 점점 상실되었지만, 나와 탯줄로 이어진 엄마는 내게 새로운 세상의 아름다움에 관해 쉼 없이 말해주었다. 하지만 곧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엄마가 알려주지 않은 세상이다.
나도 한때의 삶이 있었다. 풍화되는 몸으로 캄차카반도의 개미를 바라보고 있던 작은 소년의 몸에서 갑자기 불어닥친 홍수로 깊은 동굴 속 무수한 구멍에게서 무력하게 잠식당한 노인, 칼의 노래를 부르던 사무라이의 숨겨진 여인. 지렁이와 연체동물이 버글거리는 곳에서 작은 골격의 산호들이 수만 년 근육을 만들던 나선형의 물 한 방울이 되어 표층수의 기묘한 소리를 견디어냈다. 운무 속에서 다리가 수천 개인 거인을 마주하고, 타오르는 불빛에 둘러싸이고, 빙하에 갇혀 영원한 외로움에 휩싸이면서. 그럴 때마다 두려움을 견디고 미세한 빛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길 끝에는 언제나 미묘한 빛이 흘렀다. 빛이 쏟아진 내 몸은 곧 투명한 허공으로 변했다.
먼바다에서 과거를 마주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수평선 앞에서 지구와 달과 태양이 일직선이 되었을 때 꿈을 꾸었다. 오리너구리와 어딘가로 걷는 중이었다. 앞서 말없이 걷던 오리너구리는 갑자기 길을 멈추고 뒤돌아 내게 말했다. “나는 미래의 당신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당신의 어머니가 되어 당신을 위한 잣죽을 끓이고, 정안수를 올리며 건강을 빌 것입니다. 당신이 죽을 때까지 나는 평생 쉬지 않을 것이에요. 그것이 나의 길이죠.” 나는 감히 오리너구리가 내 어머니가 된다는 말에 화가 났고, 발아래 있던 검은 돌을 집어 오리너구리를 향해 힘껏 던졌다. 어머니가 죽었다.
또 다른 꿈은 따뜻한 장작불을 바라보며 럼주를 마시던 별밤에서 시작한다. 나른한 봄볕에 기지개를 켜던 내고양이의 숨과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로 총총거리던 내강아지의 귀여운 발걸음, 미지근한 부엌에서 고구마 맛탕을 졸이던 편안한 움직임과 잣죽 뜸 들이는 소리로 가득찬 작은 집, 길에서 아빠를 기다리며 꼼지락거리던 작은 손바닥과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삼키는 엄마를 바라보는 어린 눈이 낡은 전축 안에서 빙글빙글 돈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그리움을 느끼는 동시에 낯선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처절하게 뼈에 각인된다. 나는 물이 되고, 불이 되고, 바람이 되고, 한 점 의식이 되어 장작불의 반짝임으로 흩어진다.
기억의 중첩으로 미끄러지며 죽음이 더 가까워오는 소리를 듣는다. 심해 압력을 닮은 엄청난 무거움이 나를 사방에서 짓누른다. 파동에 따라 내 몸은 방향을 잃고, 파고드는 회오리 안에서 몸을 웅크려 숨는다.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인 나는 뜨겁게 떨고 있다. 나를 끄집어내는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척삭의 에너지를 쏟는다. 아주 힘차게 축을 회전해 다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 가장 안쪽은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원하는 만큼 춤을 추고, 꿈을 꾸고, 발가락을 빨고, 투명하게 웃던 찰나를 모두 기억한다. 욕심, 판단, 의심 없는 청정하고 오염되지 않은 근원의 상태.
다시 완강한 힘에 이끌려 어두움으로 빨려 들어간다. 금강석처럼 대적할 수 없는 죽음의 에너지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고통이라 소리조차 내뱉지 못한다.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고, 얼음장처럼 세찬 공기가 칼날이 되어 거침없이 경계를 찌른다. 먼 구멍에서 날카로운 섬광이 비친다. 햇빛도 아니고, 달빛과도 다르다. 물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희뿌옇고 모호한 빛의 형태가 내 작은 심장에 총구를 겨눈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생의 마지막이구나.
나는 미끄러운 폭포수와 함께 무력하게 떨어졌다. 떠나지 못하던 호흡이 솟아오르고 한 줄기 격렬한 고통이 숨으로 쏟아졌을 때 나는 그제야 우렁차게 울부짖었다. 식도와 폐를 통과한 숨은 발가락을 넘어 축축한 땅에 이르는 길을 따라 들어오고 나간다. 들어오고 나간다. 들어오고 나간다. 죽음을 감각하는 짐승처럼 온 세포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나는 점점 잊혀졌다. 미묘한 공간 아래 드러난 이 작고 나약한 몸을 나는 모른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가히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봄이다.
- 끝
** 카일라스산맥에서 목격한 남녀 이야기 ;
설국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본 사내는 물고기처럼 눈을 감지 않았다. 열차의 끝과 끝을 떠돌고 돌아왔을 때까지 그는 두 눈을 총명하게 뜨고 있었다. 설산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그는 똑같이 눈을 감지 않는 여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두 눈을 마주 보았다. 두 눈이 오래 머물렀다. 깊고 검은 터널이 지나자, 여자의 배가 카일라스 산처럼 불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