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겨울날이었다. 수니타와 나는 7일간의 설산 하이킹을 무사히 끝내고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겨울 햇살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지난 여정을 축복하며 서로 볼 키스를 나누었다. 산행을 시작할 때 내 배낭 무게는 14kg였는데,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느껴졌다. 여행의 긴장이 풀린 마음의 변화가 원인일 터였다. 정류장 푯말이 보였을 때 버스는 이미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마을로 내려가는 마지막 산악 버스였다. 다른 하이커들과 행상들, 호기심 많은 아이들까지 합세해 함께 뛰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고, 곰처럼 몸을 크게 휘두르며 버스를 불렀다. 승객들은 창과 열린 뒷문으로 몸을 기울여 우리를 향해 까르륵거리고 버스 옆구리를 세게 두드렸다. 버스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줄기차게 내며 멈췄다.
흙먼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을 때 내 이마는 바닥에 있었다. 내 몸의 반만 한 크기의 배낭을 메고 전력 질주를 하다가 주의력을 잃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발목이 심하게 꺾이면서 내 안에서는 벼락 소리가 진동했다. 그것은 온몸의 뼈가 흔들리는 소리였다. 버스 안의 한 사내가 넘어진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수니타에게 무언가 말하는 것이 보였다. 수니타는 내게 크게 손짓하며 말했다. “어서 일어나! 곧 버스가 떠날 거야!” 차마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땅에 딛고, 발로 먼지를 일으키며 끌고 움직였다. 저릿한 통증이 대퇴골과 척추로 이어졌다. 버스 뒷문 손잡이를 움켜잡았을 때 엄청난 발목 통증과 함께 울음이 터져나왔다. 험준한 산을 오르내리며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자마자 어이없는 사고를 당한 것이 억울했고, 이 고통을 오직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수니타는 마을로 내려가야 빨리 나을 수 있다며 나를 위로했다. 땅에서 이마를 떼고 버스로 향하는 고독한 길을 떠올리며 울음을 삼켰다.
나는 걷지 못했다. 임시방편으로 붕대를 발목에 단단하게 둘러 고정할 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비가 멈추지 않았고, 병원은 너무나 먼 마을에 있었다. 나 때문에 여행 계획이 틀어져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수니타가 주변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종일 발목이 나아지기를 기다렸다. 3일이 지나자 약하게나마 땅을 밟을 수 있었고, 부축 없이 걷는 것도 가능했다. 나약해진 마음은 젖은 깃털처럼 무력했다. 나는 우울했으며, 자주 눈물을 흘렸다. 여행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그치고 발목의 상태가 나아지면 당장 이 여행을 멈추리라.
옆방에는 산악 마을 꾼띵에서 온 샤루카가 머물고 있었다. 샤루카는 수컷 당나귀 판초 등에 짐을 싣고 산에 필요한 생필품을 배달하며 산다. 그는 아침마다 내 방에 들러 발목의 안부를 물었다. 어느 날에는 험준한 바위 절벽에서 채취한 귀한 약초를 자기 입으로 가져가 잘근거리며 침과 고루 섞은 다음 내 발목에 올려 주었다. “비가 그치면 판초가 당신의 다리가 되어 줄 거예요.” 그는 이렇게 친절한 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날에는 놀랄 만큼 붉은 노을이 한밤까지 이어지고, 밤새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판초와 종일 시간을 보냈다. 판초는 조금 고집스러운 기질이 있는데, 이름을 부를 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아주 평범한 순간에 뒤에서 다가와 콧등을 비벼댔다. 비가 내리거나 우중충한 날에는 어두운 곳에 찾아 들어가 곰처럼 긴 잠을 잤다. 그럴 때면 샤루카가 고삐를 잡아끌어도 꿈쩍하지 않았다. 판초는 내가 그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절룩거리면서 안뜰을 가로지르면 휘키키키킼킼키힝- 하고 조롱하듯 크게 비웃고, 간식을 건네는 순간에도 엉덩이를 들이대며 똥방귀를 쏟아부었다. 샤루카에게 판초의 실체를 고자질하면, 그는 그윽하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판초는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영특한 녀석이에요. 이제 산으로 돌아갈 시간이라고 알려 주더군요. 아마 당신에게도 할 말이 있나봅니다.”
샤루카가 산으로 돌아가기 전날 우리는 함께 소풍을 떠났다. 풀밭에 이슬이 잔뜩 맺힌 날이었다. 나는 판초의 머리와 콧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제발 나를 바닥에 팽개치지 말라고 속삭였다. 샤루카와 수니타의 부축을 받으며 판초 등에 앉았을 때 엉덩이 끝에서 축축한 온기가 전해졌다. 판초가 근육을 불끈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내 다리 혈관을 따라 발목까지 판초의 따뜻한 숨이 흘렀다. 내 발목은 무력했지만, 판초 등에서는 자유로웠다. 판초는 샤루카의 소리에 따라 돌담으로 이어진 골목길을 가로질렀다. 담 밖으로 튀어나온 나뭇가지가 종아리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나지막한 강가를 지나 습지와 갈대밭이 펼쳐진 오솔길로 판초의 발길은 계속됐다. 갈대가 무릎 아래에서 찰랑거리고 자갈 굴러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판초는 간간히 속도를 냈지만 단 한 번도 불안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우리는 햇살이 잘 드는 너럭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수니타는 챙겨 온 간식을 꺼내고, 샤루카는 휘파람을 불며 판초에게 마실 물을 따라주었다. 나는 판초의 따뜻한 등을 쓰다듬으며 깊은 눈망울을 한참 바라보았다. 축축한 땀 냄새가 바람에 실려와 갈대 사이에서 풀풀거렸다. 나는 양 손바닥으로 판초 얼굴을 둥글게 감싸고 이마를 맞대었다. 판초는 서쪽으로 꼬리를 흔들며 무슨 말을 할 듯이 입을 씰룩거렸다. 판초의 반짝거리는 검은 눈동자 속에서 내가 말하는 소리가 보였다.
“여행을 다시 떠나기 좋은 날씨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