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준한 산고개를 열 개 넘고, 치솟은 협곡을 기어오르고, 2만km에 달하는 20여 개의 석회동굴을 지나서야 장수마을에 이르렀다. 빛을 뿜는 새하얀 대리석이 잔디처럼 드넓게 펼쳐진 곳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찾아 평생 헤매지만, 아무나 이 땅의 경계로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곳에 이르기 위해 8만 4천 개의 생명을 구하고, 죽어가는 이를 위해 시를 지었으며, 말라비틀어진 원숭이에게 몸의 일부를 내어주었다. 이윽고 장수마을에 도착했을 때 발아래에는 무려 2천 종에 달하는 사시나무와 종려나무가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동굴에서 수직 상승한 수천 마리의 박쥐떼가 울창한 원시림에 거대한 검은띠를 만들며 어둠을 가로질렀다.
“장수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시느라 노고가 참 많았습니다.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세요. 이 마을에는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 도착할 수 있으니까요. 이곳에서는 애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생각과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코끼리를 타고 어슬렁거리다가 꽃으로 만든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천상의 과일을 먹으면 됩니다. 필요한 건 언제든지 생각해요. 아, 참고로 이곳이 장수마을이지만 끝이 영원히 없는 건 아닙니다. 죽을 때가 된 사람이 당신 앞에 나타나 수명을 늘려달라고 애원할 겁니다. 무엇을 듣든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을 거요. 어차피 기억도 못 하겠지만.”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이곳에서의 끝을 떠올렸지만, 금세 눈 앞에 펼쳐진 환상적 세계에 온 감각을 빼앗겨 버렸다.
새하얀 땅은 마을 아래의 세계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따뜻한 빛이 한없이 쏟아지고, 미지근한 온풍이 살랑거리며 순식간에 졸음을 몰고 왔다. 현악기 연주가 종일 아름답게 들리고, 극락조가 사방에서 춤을 추며 무지개를 황홀하게 뿌려댔다. 근심이나 고뇌, 상실의 고통은 사라지고, 맛 좋은 음식들이 넘쳐흘러 그저 앉아 먹고 즐기면 되었다. 이곳은 이름처럼 단순히 오래 사는 사람들의 마을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눈앞으로 데리고 올 수 있고, 한없이 잠에 빠지고 히죽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표정의 이곳 사람들은 종일 기대고 누워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려댔고, 그중에는 1천 년을 산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장수마을에 오고 싶어 평생을 애쓰는지 이곳에 와서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신의 세계에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쫓기거나 정해진 일이 없으니 시계를 볼 필요가 없고, 밤낮의 구별이 희미해 다차원 공간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풍경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질병, 이별의 고난을 경험하지 않고, 모함을 받거나 원한 관계에 얽히지도 않는다. 감각이 원하는대로 살고, 전쟁이나 기아의 고통의 공감은 기억에서 멀어진다. 나는 수년 전 세상을 떠난 고양이를 불러내 종일 부드럽게 쓰다듬고, 이곳저곳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지중해 닮은 몽돌 해변에 앉아 황금빛 노을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반복하던 어떤 날, 드디어 목소리가 예언했던 ‘죽을 때가 된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이보게, 나는 이제 수명이 다 되어 다시 마을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오. 당신이 이 불쌍한 나를 위해 기도를 좀 해줄 수 있겠나? 기도가 깊으면 호흡의 수가 늘어날 수도 있을걸세.” 죽을 때가 된 사람이 말했다. 그는 장수마을에 사는 빛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바짝 마르고 한 곳에 앉아 있지 못해 불안하게 어슬렁거리고, 먼 곳까지 생선 썩은 내가 풀풀거렸다.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커먼 몸에는 구린내 나는 땀이 찐득거렸고, 눈을 잘 뜨지 못해 고꾸라지기 십상이었다. 종종 고통스러운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구부리고 허리를 꺾어댔다.
“다음 세상에서 이곳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혐오감을 억누르며 겨우 말을 건넸다. 죽을 때가 된 사람은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게 뭔지 아시오? 내가 어디로 가게 되는지 미리 안다는 것이오. 당신도 죽을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만, 이곳은 천상의 세계가 아니오. 선한 사람인 것 같으니 내 한 가지만 더 말하리라. 사무치게 기억하시오. 과거를.”
죽을 때가 된 사람은 후미진 바위 틈새로 들어갔다. 그는 소금밭에 떨어진 물고기처럼 고통스럽게 버둥거렸고, 서서히 숨소리가 희미해졌다. 어떤 사람은 그가 일주일간 고통받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350년간 죽어갔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내게 남긴 말에 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과거가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내 이름도, 어머니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신이 되었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