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기 끝에 얇고 날카로운 칼날이 촘촘하게 박힌 빗이 달려 있다. 거북이 등껍질에 박음질한 칼빗이 내 쇄골 아래를 무참히 때리는 동안 나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투후카, 타타우, 파투티키, 타티투’ 소리가 통렬한 고통을 퍼뜨리며 불처럼 휘감고, 육중한 몸들이 내 사지를 강하게 누른다. 피부를 뚫고 들어간 검은 액체가 온몸에 지도를 만들었을 때, 판다누스 줄기를 머리에 두른 사내가 한 점 구름을 향해 소라고둥을 힘차게 뿜어낸다. 부우우!
꿈은 늘 고둥 소리에서 깼다. 뇌를 진동하는 강력한 떨림과 함께 온 세상이 희미해지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쓸어내리며 검은 액체의 흔적을 찾았다. 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고 아픔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꿈속에서 경험한 감각이 잠시 남아 있다. 그러나 곧 아주 짧은 찰나에 사라지고 말았다. 잡히지 않는 물방울처럼, 생기자마자 흩어지는 연기처럼.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꿈의 한 점 파편조차 머무르지 않았다. 대체로 얕은 잠을 잘 때 패턴은 반복되었고, 약간의 변주가 있지만 환경은 늘 동일했다. 6개월 동안 같은 꿈이 계속 이어질 무렵, 나는 꿈이 내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은 내가 이 꿈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거나. 꿈의 의지가 있지 않고서야, 그토록 반복해서 꿈꿀 리 없다.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를 만난 이유다.
올리버의 제안은 이러하다.
- 똑같은 새벽 시간에 깨어날 것. 4시 30분에서 5시경이 가장 좋고, 알람 설정을 추천.
- 깨어나자마자 꿈을 기록할 것. 단, 완전히 깨어있지 않은 상태로 써야 하고, 집착하지 말 것.
- 꿈의 감각과 환경을 계속 인식하며 다시 잠에 빠지기를 시도할 것.
- 다시 잠드는 시간 간격은 짧아야 하고,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꿈의 환경을 인식할 것.
며칠 간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머리맡에 연필과 노트를 두고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더듬거리며 글을 썼다. 단어 몇 개, 조사가 엉망진창으로 조합되어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쓰면서 잊었다. 쓰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잠이 다시 들기 일쑤였고, 날카로운 돼지 뼈가 피부를 깊숙이 찌르는 고통에 휩싸여 땀을 쏟아냈다. 꿈 속 사내들은 대나무 통에 돌을 부딪쳐 소리를 내고, 빈 코코넛에 잿물을 섞어 얼굴 전체에 발랐다. 반원형으로 웅크려있던 남자들은 묵직한 북소리에 맞춰 히! 하! 히! 하! 소리를 내고, 무릎을 구부렸다가 피며 춤췄다. 소금을 먹으러 내달려오는 산닭처럼 부산스러웠다. 이 모든 것을 이끄는 수장처럼 보이는 늙은 여자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쏟아낸 다음 내 입술 아래에 다시 칼날을 두들겼다. 나는 사무치는 고통에 휩싸여 잠에서 깨어났다.
올리버는 다른 제안을 추가했다.
- 새벽에 깨어나면 꿈의 시공간을 인식하는 동시에 환경을 변화하려는 몸의 의지를 가질 것.
- 예를 들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장면을 명료하게 응시하거나, 원인을 제거하기.
- 무력한 몸을 일으켜 환경을 통제할 것.
- 즉,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할 것.
효과가 있었다. 반쯤 깨어있을 때 나의 뇌는 꿈 한켠에서 유랑했다. 내 몸은 이미 움직임을 통제당한 상태로 칼날에 짓이겨지고 있었다. 이번엔 영롱한 진주 조각으로 만든 바늘이었다. 한 손이 코코넛 잎줄기로 둘러싼 진주 바늘을 허벅지에 들이대는 동안, 다른 한 손은 막대기 망치를 들고 바늘을 두들겼다. 연약한 피부가 들리고, 검은 물이 몸안 깊숙이 스며들며 고유한 길을 만들었다. 길에는 홑선과 겹선, 직선으로 이루어진 깃털이 지그재그로 자리 잡았다. 두껍고 얇은 칸으로 쌓은 집과 물고기 얼굴을 한 동그라미가 겹겹이 새겨지고, 대왕고래의 부드러운 나선과 일정하게 가시가 돋은 장어 일부가 그려졌다.
지독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올리버의 조언을 떠올리며 명료하게 공간을 인식하려 안간힘을 썼다. 진흙에 빠진 것처럼 녹아내리는 몸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동공이었다. ‘그래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야! 꿈이야!’ 나는 모든 집중을 동공으로 보내 수장의 손끝으로 시선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 팔꿈치, 어깨, 목, 턱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마침내 내 두 눈이 수장의 깊은 눈과 마주쳤을 때, 온갖 소리가 회오리치고 사물이 흩어지며 그대로 멈춰버렸다. 내 몸은 '부웅' 하고 공중으로 떠올라 꿈의 시공간을 꿰뚫어 보았다. 나는 어떤 미묘한 경계에서 또 다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꿈속에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키리바시 제도의 바나바 섬사람이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꿈속 사람들은 나를 죽이려던 것이 아니었다. 섬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내 영혼을 위해 온몸에 군함새의 깃털과 바다 안내자를 문신으로 새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반드시 네이 카라마쿠나를 만난다. 섬 서쪽 깊은 호수 가운데에 사는 네이 카라마쿠나는 죽은 사람의 길을 막고 피부에 새겨진 문신을 요구한다. 만타레이와 군함새의 날개, 무수한 마음이 새겨진 몸의 이야기가 그의 먹이다. 줄곧 굶주린 네이 카라마쿠나는 길고 강한 부리로 문신을 연신 쪼아 먹는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죽은 자에게 저승으로 가는 영혼의 눈을 준다. 만약 몸에 문신이 없다면 네이 카라마쿠나는 죽은 자의 눈을 파먹는다. 눈을 잃은 영혼은 영원히 호수를 떠나지 못한다.
바나바 섬의 수장과 눈이 마주친 이후로 나는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나는 원하는 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꿈의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다. 용맹한 나는 꿈속에서 카누를 타고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고, 폭풍 아래에서 만타레이의 뒤를 쫓는다. 환초 안에 들어와 새끼를 돌보는 고래를 보고, 동료들과 바다 언덕에 올라 고대의 춤을 추며 북소리를 낸다. 내 몸에 문신이 새겨지는 동안에 다른 이들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의식이 끝나면 마을 사람 모두가 찾아와 축복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어쩌면 이곳이 나의 먼 고향일지 모른다.
ps 못다 한 이야기 :
나는 가끔 꿈으로 들어가 가상현실을 만든다. 시공간은 깊고 푸른 바다다. 나는 투명한 몸으로 폐를 부풀리고 푸른 우주로 들어가 천천히 눈을 뜬다. 푸르다 못해 암흑에 가까운 한 점을 향해 온몸으로 공포를 대면한다. 그 안에서 심장과 폐가 쪼그라들고, 외계 생명체를 닮은 바다 생물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강한 압력에 의해 몸이 빨려 들어가다가 결국 물속에서 죽어 있는 나의 시체와 대면한다. 깨어 있을 때 경험할 수 없는 물리적 공포를 지속적으로 불러온다. 숨이 막히고, 숨을 내쉬고, 죽고, 죽음을 탈출한다. 꿈속에 있으면 종종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하지만, 노력할수록 인식의 대치가 명확해진다. 그러다 보면, 바다에 이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