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새벽 삼척의 한 군사 해변으로 떠밀려온 향유고래 무리입니다. 새벽 출항을 마치고 돌아오던 오징어잡이 어선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고래 무리가 동해안에서 발견된 사례는 종종 있으나, 이렇게 좌초되어 떼죽음으로 발견된 일은 처음입니다. 해경은 향유고래가 북극 해류를 타고 이동 중 길을 잃고 동해로 떠밀려왔고, 나가는 방향을 찾지 못해 바위 군락에 갇힌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모두 수컷으로 총 24마리로 알려졌습니다.”
육중한 크기의 향유고래가 비좁은 바위 해안에 꼬리를 박은 채 화석처럼 굳어 있는 모습이 뉴스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긴박한 카메라 움직임과 아나운서의 건조한 목소리 때문에 고래의 몸이 검은 비생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다가 그대로 손을 놓고 티브이 앞에 앉았다. 스물네 마리나, 대체 어떤 이유로 그들은 길을 잃고 동해안에 밀려 왔을까, 왜 단 한 마리조차 길 끝에 비극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즈음 ‘철컥’ 도어락이 열리며 루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맞아, 이런 소리였을 거야. 철컥. 철컥.”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갑자기 신호등이 먹통이라 길에서 한참을 있었어. 경찰이 나서지 않았다면 난장판이 되었을걸. 죽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신호등!… 향유고래 말이야. 향유고래에게도 신호등이 고장 났던 걸까?”
나는 루이에게 향유고래가 떼죽음을 당한 뉴스를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향유고래 같은 일등 항해사가 길을 잃은 건 외부의 강력한 방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래는 박쥐, 나방처럼 뛰어난 반향정위 능력을 갖춘 해양 포유류로 유명하다. 고래는 직접 낸 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온 반향음을 분석해 방향과 거리, 크기나 윤곽 등을 파악한다. 나는 대장을 선두로 ‘붕붕’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흐물거리는 오징어 부리에서 튕겨 나온 메아리를 쫓는 향유고래 무리를 떠올렸다.
“고래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대장의 움직임이 중요하지.”
”비밀 잠수정에서 나온 고주파수 때문에 소리 듣는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음파탐지기가 주파수를 교란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아이러니한 건 이런 음파탐지기가 해양 포유류의 반향정위 시스템을 모티브로 개발됐다는 거야. 자연의 이로움은 공짜로 쓰면서, 해로움만 돌려주고 있으니 인간이란 정말 노력할수록 실수하는 존재 같아.”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살길을 찾으러 이동하다가 사고를 당했을지 몰라.”
“고래가 떼죽음을 당한 게 처음이 아니잖아. 타즈매이니아에서는 돌고래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해변으로 떠밀려와 죽었어.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고래를 위협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해.”
“향유고래는 원래 빛줄기 하나 없는 심해에서 먹이 사냥을 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깊고 깊은 지구 지각에서 무언가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각자 다양한 가설을 끄집어냈다. 그러나 해양 포유류 중 가장 시끄럽다는 향유고래는 말이 없다. 어쩌면 향유고래는 이미 오랫동안 입술을 세게 부딪치며 두개골 사이로 경고음을 열심히 쏘아댔을지 모른다. 갑자기 퓨즈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티브이 전원이 꺼졌다. 모든 조명등이 꺼지며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차단기를 올려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스마트폰에서는 통신 장애와 대규모 정전 사태, 태양 폭풍에 관한 알람이 반복해서 울렸다. 정전이 되기 전 저녁 준비가 끝나 다행이었다. 촛불 두 개에 불을 붙이고 루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쿠루는 이미 사료 한 그릇을 해치운 후였다. 쿠루는 터그를 입에 물고 촉촉한 코로 허벅지를 귀엽게 찔러댔다. 나는 침으로 범벅된 터그를 소파 위로 던지며 말했다. “쿠루! 가져와!” “옳지!”
식탁 위 촛대에 핑크빛 그림자가 사선으로 길게 기울어졌다. 녹색과 핑크빛 섬광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켜지고 꺼짐을 반복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낯선 빛줄기였다. 나는 먼 곳의 인공조명등이나 헬기에서 비추는 수색등일 거로 생각했다. 빛은 점점 강렬한 붉은 색으로 일렁거렸고,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이 집 안 전체에 흘렀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밖으로 뛰쳐 나갔다.
바깥에는 빛을 쫓아 밖으로 나온 이웃 사람들이 최면에 걸린 듯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었다. 보라색, 녹색, 분홍색 띠를 만든 거대한 빛의 파도가 무지개처럼 띠를 이루고, 수직의 빛줄기를 가로지르며 산등성이에 끝없이 너울거렸다. 밤하늘에 일렁이는 오로라는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았고, 벌의 날갯짓소리처럼 부웅 거리는 파동이 발끝으로 전해졌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개 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