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동쪽, 사시나무가 수평으로 펼쳐진 작은 개울에 있습니다.
전할 말이 있으면 편지를 남겨 주세요.’
점잖은 손글씨가 붙어 있는 작업실 안은 적막이 가득했다. 이웃에 따르면 아담은 수십 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발 2,620m에 달하는 투올러미 초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웃은 새벽과 아침 사이 그의 인기척을 듣고, 창 너머로 중절모의 그림자를 느끼곤 하지만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꼭 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지. 그러니까 아담은 계속 기다리는 중일 거요.” 이웃은 무덤덤하게 말하며 개울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었다. 느긋한 움직임 때문에 시간이 잠시 멈춘듯 했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오래된 지도에 찍힌 검은 점은 이곳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20년 전 인도 여행 중에 아담을 처음 만났다. 우리는 아잔타 석굴로 향하는 관광객 행렬 앞뒤에 나란히 서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짙은 곱슬머리를 한 마른 청년은 긴장한 눈빛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내내 분주했다. 종종 폴짝거리고 앞 사람들을 밀어버리거나 짧은 탄성을 질렀기 때문에 나는 그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북적거리는 관광객 사이에서 아담을 다시 목격한 건 한나절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땅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거기 무엇이 있나요?”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기,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내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몸은 정지된 것처럼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투명하게 반짝거렸다. “개미예요. 이 산 전체가 개미집이에요.” 마침내 그가 대답했다. 나는 그제야 그가 석굴 아래에서 수천 년을 살고 있는 거대한 개미를 살펴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개미를 밟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땅을 주시했고, 개미를 죽이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으며, 죽어가는 개미의 더듬이를 쓰다듬었다. 석굴의 부처는 말이 없고, 아담은 개미를 구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아담이 사진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기뻤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했다. 그의 몸을 통과해 기록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광활한 초원의 개미인지, 폭포의 물방울인지, 황혼을 부유하는 영혼인지, 마음을 휘감는 바람인지. 개울에 도착했을 때 노을이 나지막이 땅으로 기울고 있었다. 늠름한 사시나무 군락 너머로 뾰족한 검은 봉우리 세 개가 실루엣 속으로 스며들었고, 개울에 비친 노란 노을이 분홍색, 청록색으로 변했다. 능선을 향한 지그재그 개울 끝에 한 사람이 보였다. 턱 아래 긴 흰수염을 달고 넓은 카라의 흰 셔츠에 낡고 어두운 재킷을 걸친 남자가 대형카메라 주름상자에 왼쪽 손가락을 살짝 걸치고 있었다. 아담이었다. 그는 한 곳을 너무나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나머지 내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땅에 박힌 압정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특정 풍경의 막을 포착하려는 듯 요동 없이 한 곳을 응시했다. 카메라에 연결된 긴 릴리즈를 잡고 풍경 사이의 시간을 조율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척. 둔탁한 소리가 나고 다시, 컥. 빛을 받아들이고, 빛을 닫는 시간이 영원한 찰나처럼 느껴졌다. 슈힉. 그제야 아담의 숨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말 없이 깊은 포옹을 나누고,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 보았다. “네가 살아 있어서 기뻐. 못 찾으면 어떡하나 싶었거든. 아직도 개미굴을 찾으러 다니는 줄 알았지.” 내가 명랑하게 말했다. “129일 째야. 여기,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게.” 아담이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그것을 기꺼워하고 있는지, 슬퍼하고 있는지 감정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노을 지는 풍경을 찍는 거야?” 내가 말했다. “어떤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언제나 실패로 끝나지.” 아담이 담담하게 말하며 장비를 챙겼다.
작업실에서도 아담의 몰두는 이어졌다. 흑백 필름을 현상하고, 어두운 붉은 등 아래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인화지에 노광을 줄 때에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손을 휘두르며 빛의 농도를 조절했다. 참기 힘든 화학 약품 냄새가 괴로웠지만, 인화 용액 속에 담긴 종이에 풍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땐 마법처럼 느껴졌다. 무척이나 엄격한 아담은 인상을 찌푸리고, 갸우뚱거렸으며 종종 인화지를 그대로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인화지 수십 장에 각기다른 다른 톤과 질감의 풍경이 탄생하고 변하고 사라지고 새겨졌다. 인화지 한 통이 사라질 무렵 아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풍경이 아니야.”
“그건 말로 묘사할 수 없는 풍경이었어. 달과 해가 하늘에 함께 떠있고, 협곡에 운무가 걷히면서 무수히 많은 나비가 청록빛 날개를 반사하며 무지개를 타고 날아갔어. 하늘에서 크고 굵은 빛줄기가 쏟아졌는데,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눈이 부셨지. 그것이 나를 비추었을 때 어떤 따뜻한 움직임이 온몸의 피부에 닿았어. 그것은 나를 다정하게 쓰다듬었어. 나는 환희에 차올라 눈물을 흘렸어.. 그건 나를 위한 기도였어..” 아담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목격한 기묘한 현상과 경험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몹시 피로해 보였기 때문에, 풍경을 기다리다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할까 걱정 되었다. 며칠간 나는 동행을 자처해 투올러미 초원에서 그의 풍경을 함께 기다렸다. “개미를 기다리는 건 아니지?” 나는 종종 인도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며 농담을 던졌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여전히 농담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머지않아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서로 이 순간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임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포옹했을 때, 아담의 몸은 훨씬 더 얇아져 있었다. 나는 초원에서 풍경을 기다리는 아담의 몸을 떠올렸다. 바람, 습기가 뚫고 지난 피부, 생명들이 내는 소리에 파동하는 달팽이관, 바위를 읽어내는 눈의 망막, 거미의 감각을 닮아가는 신경... 아담은 풍경을 기다리며 서서히 풍화되고 있었다.
눈은 협곡 사이로 날아가고, 골수는 개울의 물방울로 스미고, 근육은 바람 속으로 증발하고, 세포가 상승하고 하강하며, 작은 점으로 모이고 흩어졌다. 그는 모든 것과 관계하느라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조차 잊어버렸다. 그는 풍경을 기다리다 그대로 풍경이 되었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서 쏟아지는 빛이 되었고, 아잔타 석굴 개미의 더듬이로 돌아갔다.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