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태양이 북반구의 7대륙을 23일간 태우고, 억겁 무게의 비가 49일 동안 멈추지 않았을 때 나는 태어났다. 남태평양의 투명한 라군들은 지도에서 모두 사라지고, 그중에는 인광석으로 미끈거리는 섬도 있었다. 집을 잃어버린 바다새들은 천일을 떠돌다가 돌풍에 맞아 쓰러졌고, 땅에는 무수한 물고기와 새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윽고 비가 멈췄을 때 땅은 검은 재로 뒤덮인 암홍색 안개 속으로 꺼지고, 시속 250km의 바람이 대지에 닿는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뽑아버렸다. 사람들은 바람에 닿기 전에 굶어 죽거나 서로를 죽이거나 고통 속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검은빛이 지구를 잠식할 무렵, 나는 하나의 혈관 조직으로 숨 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 나는 생존 기능을 장착한 구조화된 세포 덩어리다. 사람들은 나를 붉은 장기나 흰 주머니라 불렀고, 종종 땃쥐나 곰벌레 또는 플라나리아 같은 생물체의 일부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 이유는 내가 인간의 유사 장기와 특정 동물의 조직을 섞어 만들어진 ‘키메라 오가노이드’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시각이 없어도 위기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땃쥐의 민첩성, 고대의 기억까지 겹겹이 각인하는 플라나리아의 재생력, 산소가 부족한 혹독한 환경에서 몸의 기능을 통제할 수 있는 곰벌레의 생명력을 비롯해 이미 지구에서 사라진 무수한 동물들의 세밀한 생명 조직과 세포들이 상피와 기질층, 근육층 경계에 두루 분포되어 있다.
나는 죽음의 길에서 다시 돌아온 ‘카말라’라는 인간의 장기로 들어갔다. 카말라는 17살의 아시아계 여성으로 말레이시아 구능물루 동굴 깊은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숨이 끊어진 지 108시간이 지난 후였다. 돌무더기 안에 있던 카말라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청정한 붉은 빛을 쫓아 눈부시게 새하얀 반석 위를 걷는 중이었다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전 생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신체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정상이었다. 또한 불온한 안개 너머의 장애물을 알아차리거나 가까운 미래의 재난을 예측하는 것에 신통했다. 사람들은 카말라를 두려워하면서도 우러러보고, 그의 무릎 아래 가까이 앉아 그의 언어를 세밀하게 들었다. 카말라가 말을 시작할 때마다 사라진 소리가 모여들고,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사방에서 파동이 충돌해 시간이 늘어나고 줄어들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카말라가 마지막 희망이라 믿었다.
재난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기에 나는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잘 축적하지 못했다. 나의 세포 나이는 고작 3년에 불과해 17살 된 카말라의 장기와 발생학적 시계가 달랐다. 숨 쉬고 있지만 갓등 없는 등잔불처럼 나약하여 시공간의 돌봄이 필요했다. 한때 지도자라 불리던 사람들은 카말라의 피부에 지구에 벌어진 일을 세밀하게 새겨 넣었고, 나의 미숙한 조직을 카말라의 뇌와 척수, 근육의 신경계와 연결했다. 그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생존 인간을 구축하기 위한 과감한 실험이자, 인류가 지닌 기술을 총동원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을 때 모두의 염원대로 카말라는 살아남았다. 카말라는 홀로 수만 시간을 견디고, 필요할 경우 몸의 물을 온전하게 제거해 툰 상태로 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음식물을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었고, 급변하는 기온과 날씨의 역변에도 살아 남았다. 카말라는 몸에 새겨진 지구의 옛 시간을 떠올리며 광야를 견디다가 어떤 순간부터 숨 쉬지 않았다. 한때 신으로 불리던 사람은 스스로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했다. 발생학적 시간을 온전하게 쌓은 나는 이제 카말라의 돌봄이 필요 없었다. 독립된 하나의 조직 덩어리로 숨 쉴 수 있었다.
나는 의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