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수십 킬로그램이 넘는 등껍질을 메고, 73,000km를 걸었다. 오직 정주할 땅을 찾아서.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까지 다섯 방위로 크게 나눈 후 산과 계곡을 가로질렀고, 평평하거나 혹은 굴곡진 땅을 오르내리며 흙을 핥고 바람에 귀 기울였다. 어떤 곳은 단 한 시간도 머물지 못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고, 최면에 걸린 듯 강렬한 미혹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무력하게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 곳도 있다. 몸과 마음이 다치거나 헛것에 가까운 환영에 시달린 시간들을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흥분에 휩싸인다. 무엇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각의 문이 닫히기도 하고, 기쁨과 환희에 과잉되게 고취된 나머지 장과 뇌가 망가진 나날도 있었다. 그중 몇 가지를 기록한다. 당신은 나와 같은 실수가 없기를 바라며.
1. 깍개도 용바위골
분명 쾌청한 한낮이었는데, 햇살이 사라졌다. 출입구를 알리는 작은 토굴에는 자물쇠가 굳게 닫혀 있는데, 오방색 깃발이 매달려 있는 걸 보면 굿터임이 틀림 없다. 10m가 훌쩍 넘는 삼나무 나무가 빼곡하게 이어지고, 수풀이 무릎 사방을 뒤덮고 있어 걷기가 힘들었다. 숲의 깊은 안쪽 기온은 초겨울처럼 서늘했다. 냉랭하고 축축한 습기가 발가락 사이로 날카롭게 스미고, 등줄기는 땀으로 범벅거렸다. 위치를 알려준 주민 안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아무에게나 허용된 곳이 아니다. 반드시 청정한 마음으로 내디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숲이 지닌, 오래된 시간의 힘이 나를 온전한 상태로 내보내지 않을 거라 경고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은 숲에서 길을 잃다가 병을 얻었거나 진입하기 전 부들거리며 달아나곤 했다고. 삼나무숲을 뚫고 융기한 육중한 용바위, 칼로 여러 번 쓸어낸 듯 반듯하게 층층이 깎인 청록암의 거대한 그림자, 솟아오르는 용이 바위가 된 거대한 북쪽 불기둥... 나는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그러나 내가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광물 사이로 스민 물은 묵직한 쇳소리의 굉음을 내며 귀를 찢고, 새들의 온갖 하울링으로 채워진 거대한 입구멍은 나의 정신을 사로잡았다. 여섯 밤 동안 나는 온갖 소리에 시달렸다. 거미가 먹이를 잡아먹는 진동부터 들쥐 정강이가 잘리는 소리, 소리부엉이가 바위 틈에 내려앉고 지네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고통에 몸부림치는 작은 벌레들과 허공을 휘감는 슬픔의 메아리가 우레와 같은 천둥소리로 귓속을 파고들고 뇌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이곳을 겪어낸 무수한 존재들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곱째 날, 나는 남쪽으로 낸 문을 박차고 나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귀 한쪽을 잘라버린 후였다.
2. 사촉면 구릉의 집
새벽 5시 20분에 해가 뜨고, 저녁 11시까지 밝음이 머물렀다. 십 리 바깥으로 민둥산이 기울어져 있고, 산과 산 사이에 은빛 호수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른 땅이 넓게 펼쳐진 근사한 구릉이었다. 나무가 없는 탓에 새벽부터 해가 뜨겁게 비추고, 미지근한 바람이 솜털처럼 내려앉았다. 나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보이지 않는 소리에 휩싸이진 않을 테니까. 신체는 금방 적응했다. 모공이 커지고, 피부는 말랑거렸으며, 자주 나른한 졸음이 밀려왔다. 동떨어진 외곽인 탓에 이웃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산짐승이나 작은 동물을 목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야수나 도적이 없지만, 친절한 존재와 명랑한 사건도 없다.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명치에서부터 강렬한 환희와 행복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자, 나는 애매모호한 혼침에 자주 빠졌다. 발가벗고 동물을 죽이는 꿈을 꾸다가 식은땀을 쏟으며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간혹 얼굴에 손톱자국이 나 있는데, 스스로 한 짓인지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는지 알아낼 길이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발자국을 찾아 헤맸고, 종일 먼 호수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결국 나는 그곳을 떠났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곳의 경험에 관해 설명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자주 단어를 잃어버리고 안개 속 풍경으로 사라진다.
3. 미혹산 정상 봉우리
산꼭대기였다. 매끈하고 거대한 화강암이 겹겹이 쌓인 형태로, 반짝거리는 지각의 노두가 그대로 솟구쳐 있었다. 나는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만한 것들을 먼저 제거하고 싶었다. 벌레, 개미, 뱀의 집을 먼 땅으로 옮기고, 머리카락과 죽은 짐승들의 뼛조각, 돌뿌리에 엉킨 불순물들을 정리했다. 멀리서 아랫동네의 빼곡한 주택 지붕들이 콩알처럼 보였고, 송전탑 진동도 이곳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난 기쁨의 해방감에 휩싸였다. 비록 먹을거리를 구하려면 먼 여정을 떠나야 하고, 재난에 취약한 데다가 도움을 주고 받는 이웃들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마치 고뇌와 즐거움이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독한 바람에 갇히면서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막힘없는 산꼭대기는 늘 건조한 바람이 불었는데, 바람이 정상에 갇혀 버렸다. 빠져나가지 못한 소용돌이가 수십 일 계속되었다. 바람은 눈의 수분을 빼앗고 침샘을 빼앗고 피를 빼앗고 흐름을 빼앗고 생각을 빼앗고 시간을 빼앗았다. 점점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심장은 쪼그라들었으며, 뼈는 벌집처럼 구멍 나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했다. 기맥 수련을 통해 바람을 뚫고 신속하게 하산할 수 없었다면 내 몸은 풍화되어 그대로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은근한 초록과 암홍색 바람이 발끝에 매달려 나를 데려가려 한다.
4. 삼달동 비자림
10여 년의 멀고 긴 여정을 끝내고 드디어 서늘한 비자나무 숲속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했다. 매일 잘 잤고, 다음 날이면 행복한 감정으로 잠에서 깼다. 사계절이 지난 어느 여름날, 나를 수소문해 방문한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쉽게 형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이미 죽은 몸이라 생각한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고, 남은 친구들은 나를 찾아 밤낮으로 공간을 탐색하고 물질을 관찰했다. 남은 친구들이 바람과 숨 사이에서 춤추는 나를 이윽고 발견했을 때 기뻤다. 나의 심장에서 투명하고 새하얀 빛이 나오고, 얼굴은 어린아이로 변해 있었으며, 눈빛은 영원한 자유를 얻은 듯 깊은 호수 같았다. 내 몸은 시간을 초월해 무엇이든 뛰어넘을 수 있고, 의식은 상대의 흉한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손을 뻗어 친구의 의심 가득한 마음을 만지자, 그것은 투명하고 선한 기쁨으로 대치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은 친구들의 친구들을 데리고 내가 사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아침 햇살과 새의 소리를 듣고, 낮에는 물길 옆에서 보리수 열매를 따 먹으며 서로를 돌보았다. 해 질 무렵이면 일렁이는 빛 아래에서 숨 쉬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으므로 안전했고, 모두 이곳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그것이 내가 다시 홀로 떠나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다음 명당을 찾아서.